긴급조치 위헌 판결, 피해자 명예회복 길 열린다

2013-03-22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21일 유신체제하 긴급조치 1·2·9호에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1천여명의 피해자들이 명예 회복과 배상 받을 길이 열렸다. 
 
이날 결정은 1974년 최초 긴급조치 발동 이후 39년 만이다. 이 결정으로 그동안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아낼 근거가 생겼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명예회복·보상 권고 및 대법원의 긴급조치 위헌 판결 등으로 재심 판결과 배상을 받은 피해자도 포함이다. 
 
헌재는 이날 오종상씨 등 6명이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긴급조치가 기본도 갖추지 않은 법률이라 판단했다. 또 긴급조치로 침해된 권리로 죄형법정주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사실상 헌법상의 모든 권리를 열거했다.
 
헌재는 우선 유신헌법에 포함된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위헌심사를 할 수 없다’는 조항과 관련해 “이런 조항은 헌법의 기본권 보장 규정과 정면 충돌한다”고 밝혔다. 
 
이어 “긴급조치 1·2호가 처벌하는 ‘유신 헌법을 비방하는 행위’는 적용범위가 너무 넓고 포괄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면서 “유신헌법에 대한 견해를 밝힌 행위까지 중형에 처할 수 있게 한 것은 국가 형벌권을 멋대로 행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긴급조치 9호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 헌법상 보장된 영장주의의 본질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심판대상이 된 긴급조치에 대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비춰 입법목적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률의 목적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헌재 위헌심사에서 드문 일이다.
 
헌재는 유신헌법의 합헌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 해석은 원칙적으로 헌법재판을 할 당시에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헌법에 기초해야 한다”면서 “긴급조치 위헌성을 심사하는 준거규범은 유신헌법이 아니라 현행헌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한편 과거사정리위원회 2006년 하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총 589건, 피해자는 11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282건(48%)가 음주 대화나 수업 중 박정희 정권·유신체제를 비판한 사례다. 
 
이어 유신반대·긴급조치 해제 촉구시위·유인물 제작과 같은 학생운동 관련사건(32%), 반 유신 재야운동·정치활동 (14.5%), 국내재산 해외반출·공무원범죄(5%),간첩사건(0.5%) 순이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피해자들은 사실상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보장받게 됐다.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내면 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가능하게 됐다. 
 
당초 헌재는 ‘긴급조치가 이미 폐지돼 심사의 실익이 없다’는 정부 측 입장과 맞서면서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위헌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더 이상 결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뒤늦게 위헌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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