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지금 ‘멘붕스쿨’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죽겠다”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여의도는 지금 말 그대로 ‘멘붕’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장관 인선을 서둘렀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례 없이 야당 보좌관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는 등 원칙조차 없는 대통령이라는 불편한 시선도 받고있다. 동시에 박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려주길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의도 주변에서 무수히 “박 대통령이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대선 기간부터 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인수위원회 구성과 장관 인선 과정에서 여의도를 철저히 배제했다. 이로 인해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뒷받침해주려는 여당 내에서조차 ‘아군끼리 총질’을 해대는 상황까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의도에서는 박 대통령이 변화할 지 여부에 대해선 ‘미지수’라는 입장이다. 그들은 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무시하지 않길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과연 여의도에서는 지금 박 대통령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국회 朴에 의해 흔들리고 朴에 의해 뒤집혔다
독재 후폭풍…여당 내부 ‘아군끼리 총질’ 중
황우여 리더십 결여…“박근혜에 직언 좀 해라” 불만
요즘 정치권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죽겠다’는 극단적 말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 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장관 내정자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박근혜 독재스타일을 덮을 카드가 안 보이고, 도저히 막을 방법도 없다는 평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연일 내부 총질로 여의도는 여야 구분이 안되고 있는 현실이다.
친이 불만 표출 친박 폭발직전
“‘나 홀로 인사'로 당을 흔들어 놓더니 이번에는 장관 인선으로 당을 뒤집어놨다. 뭐가 그리 급한 지 모르겠다. 새로 신설되거나 부활하는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발표의 경우 조금 ‘보류’해놔도 된다.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된 뒤 발표해도 늦지 않았다. 여의도 정치를 무시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여의도를 휘젓고 있는 것 아니냐. 독재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대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나 홀로 인선을 하니 당 역시 우왕좌왕하며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여당 한 관계자의 토로다. 당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독식하려고 한다. 여당과 야당도 없고, 오로지 ‘정치권은 날 따르라’는 식이다. 황우여 대표는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고, 이한구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워낙 스피드하게 가다 보니 의원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쳤다. 여의도에 출근하더라도 별다른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보좌진들도 역시 손 놓고 있다. 아무런 일을 할 수 없게 박 대통령이 밀어붙이니 무슨 일을 하느냐. 말 그대로 ‘멘붕'이다.”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손을 놓고 있다. 어차피 박 대통령은 당에 ‘오더’만 내리고, 따라오라는 상황이니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일부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여당 의원들의 무력감은 갈수록 더 해가고 있다고 한다. 동력이 없다는 것.
이렇다보니 여권 내에서부터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친이계 심재철 최고위원은 “김병관 후보자는 무슨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자고 나면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새 정부에 부담 주지 말고 하루빨리 자진사퇴하라”고 말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즉각 “당 일부에서 야당과 비슷한 목소리와 주장이 나와 안타깝다. 새 정부를 출범시킨 여당의 일원으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합당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친박계 안에서도 ‘박근혜 비토론’이 불거지고 있다. 친박계 핵심 당직자는 “‘어떻게 무기중개 브로커를 국방장관에 임명할 수 있냐’는 얘기까지 한다. 다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해 말을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관계로 인해 불만은 많지만 말은 못한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당의 비판 여론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요구가 빗발쳤지만 황 대표는 침묵하고, 이 원내대표는 ‘낙마 전술’이라고 엉뚱한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고, 야당에게 독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당 지도부가 만들었다는 게 당내 지배적인 평이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문제까지도 박 대통령은 여의도를 무시하고 있다고 본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달 25일, 국무사무처와 취임준비위원회간의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취임식과 관련해 국회사무처와 취임준비위원회 간 협의 끝에 국회 직원들의 출근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취임준비위원회가 취임식날 아침, 직원들의 출근 문제를 놓고 협의했던 내용을 모두 백지화하고, 일방적으로 취임준비위원회가 다 결정해 국회 사무처가 곤욕을 치렀다. 이에 국회 사무처 한 직원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비꼬기도 했고, 일부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여의도를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보좌진 뿔났다...“우리가 야당입니까?”
이밖에도 이정현 정무수석의 파워가 여의도를 멘붕 상태로 만들었다. 이 수석은 김종효 광주시 창조기획관이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청와대 행정관은 대부분 중앙부처에서 파견되며, 지방자치단체에 간부가 전출되는 경우 드문 일이다. 여기에다 이 수석은 광주지역 민주통합당 A의원실 Y보좌관까지 불러들였다. 여당 내에선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정무수석 역할보다는 차기 총선을 대비한 작업을 미리 하고 있다”는 쓴소리까지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다 박근혜 캠프에서 일등공신들은 외면당하고 있다. 새누리당 경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일부 인사들은 청와대 입성이 좌절됐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에 합류한 보좌진 추신 10여 명에 대해 ‘당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은 인수위에 파견된 보좌진을 자기 식구로 인식하지 않고, 보좌관직을 사임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보좌진은 청와대 입성이 좌절되면서 한순간에 백수신세로 전락됐다. 당 안팎에서는 “여당 보좌진 중에 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야당 보좌진을 쓰냐”며 이 수석의 행동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박 당선인 주변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여의도를 멘붕에 빠뜨린 한 단면이다. 일등공신들은 모두 배제하고, 당선 지분 몫으로 챙기려 박 대통령에게 일부 인사를 건의했던 의원들은 사망선고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박근혜, 여의도 무시 정치권 대책 세워야
이런 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은 여의도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앞으로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면서도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여당과 소통하며 손발을 맞춰가는 것보다 나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이상 국회에서도 암묵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 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끌려가는 황우여 대표를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황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과거 박 대통령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011년 박 대통령과 회동에서 수첩을 꺼내들어 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적어 기자들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또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박 대통령으로 언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황 대표가 ‘침묵’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사가 당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에는 이춘호 여성부,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각종 의혹에 휩싸이며 여론이 악화되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직접 청와대를 찾아가 이들의 교체를 건의했고, 이들은 정부 출범을 전후해 청문회를 열기 전에 자진사퇴한 사례가 있다”며 “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무시하기보다는 여의도 정치를 무시할 수 없는 인사를 당대표로 앉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인사를 선출, 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래야만 여의도 정치가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한편, 비박-친이계-야당에서는 개헌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밀실정치, 여의도 무시에 대한 불만을 품고 개헌을 매개로 박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개헌 논의는 필연적으로 권력구조 개편 논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정치권은 갈등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