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야권 뭉쳐 박근혜 ‘군기잡기’ 돌입
여도 야도 개헌론 ‘솔솔’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한동안 잠잠하던 ‘개헌론’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론화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학계까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생정부를 앞세운 상황에서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이 본격 등장한 셈이다. 개헌에 적극적인 쪽은 야당이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당 존재감 상실’을 상쇄시키기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개헌론’카드를 적극 꺼내들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개헌 ‘멍석깔기’에 적극적이다. 이에 ‘박근혜 밀실정치’에 불만을 가진 친이계가 개헌을 매개로 박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개헌 논의는 필연적으로 권력구조 개편 논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가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제’가 주요 이슈 부각으로 이어지면서 정국을 뒤흔드는 ‘뇌관’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이재오, 개헌 ‘바람몰이’
MB 정부 시절 개헌 전도사를 자처했던 친이계인 좌장격인 이 의원은 대선 이후 분권형 개헌 추진 모임을 주도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지난 2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야 대선 후보들이 당선되면 개헌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19대 국회에서 개헌을 꼭 해야 한다”며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임기 초반에 논의와 개헌을 끝내는 것이 옳다. 2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금년 상반기에 개헌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글을 올려 조속한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지난 1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개헌 추진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는 현역의원 37명이 참석했다. 이 모임에는 새누리당 정몽준 이재오 정의화 정갑윤 정병국 김정훈 이군현 주호영 권성동 김영우 김용태 신성범 안효대 조해진 의원(이상 14명)이 참여했다. 민주당에선 이미경 김성곤 원혜영 이낙연 강기정 강창일 박지원 우윤근 유인태 설훈 전병헌 문병호 유성엽 이목희 김광진 김윤덕 부좌현 유대운 이원욱 임수경 정호준 최민희 황주홍 의원(이상 23명)이 이름을 올렸다.
정갑균 의원만 친박 성향으로 분류될 뿐 나머지 13명은 모두 친이로 분류된다.
민주통합당 출신 의원들의 경우 당내에 거론되는 전 계파가 두루 참여하는 양상이다. 이들은 개헌특위를 하루빨리 구성해 개헌을 논의하고 올해 또는 늦어도 지방선거가 열리는 내년 6월 전 개헌을 마무리 짓자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은 친이의 얼굴격인 이재오 정몽준 의원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친이가 개헌 총대를 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에 개헌 논쟁이 새누리당 내에서는 당권 주도권 경쟁의 시발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지난 7일 국회 연설에서 개헌 카드를 꺼냈다. 박 원내대표는 “국회개헌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며 “이 자리에서 모든 문제를 열어놓고 논의를 시작하자”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 혁신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다. 국회도 특권을 내려놓고, 대통령도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자”고 주장했다.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2/3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정파가 개헌에 적극 나서야한다. 하지만 ‘개헌 추진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 여당은 친이계 의원 일색일 뿐 친박계 의원들은 참여하지 않아 개헌 논의가 얼마나 힘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흔들기’
박 대통령 측은 개헌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4년 중임제 개헌 추진을 발표 했지만 현재 개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민생을 최우선으로 살피겠다고 약속한 상황인데다 경제적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정권 초기 개헌에 적극적일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개헌카드는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포함돼 있어 임기 초반부터 권력 기반이 크게 흔들릴 공산이 높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개헌의 핵심의제인 권력구조 개편 논의로 나아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차기 권력으로 눈이 쏠리게 돼 청와대의 국정주도권을 잃을 수 있게 된다. 친이와 야권이 개헌 카드를 임기 초부터 꺼낸 이유와 박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개헌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4년 중임제 개헌은 20대 총선 일정에 맞추기 위해 박 대통령의 임기를 1년8개월 단축시키자는 주장을 동반하게 된다.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개헌이 실제 논의 테이블에 올리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모든 이슈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친이와 야권이 개헌을 명분으로 ‘박근혜 흔들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여당과 불통’ ‘밀실정치’ 논란이 계속되고 ‘개헌’에 대해 함구할 경우 여권 일부가 반발, 탈당할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또 국회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첫 번재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8일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을) 정확하고 바르게 ‘보필’하는 게 책임 총리”라며 소신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국무총리를 하겠다는 것인지 비서실장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이 터져나왔다. 역대 정부에서도 총리가 헌법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 사례는 거의 없었고 대다수가 의전 총리, 대독 총리로 전락한 사례로 미뤄볼 때 책임총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의견이다. 따라서 총리역할이 ‘의전 총리’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통령 권력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친이와 야권에서는 ‘개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권의 한 인사는 “박근혜 정부와 친박계 쪽에서는 개헌에 대해 정치적으로만 생각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며 “개헌은 정치 쇄신 쪽으로 해석해야하는데 정치적 논리만 앞서 있는 것 같다. 이를 바꿔 말하면 개헌을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헌론이 급물살을 탈 것인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미 개헌에 대해서는 여야와 청와 대 모두 발을 내딛은 상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첫해부터 개헌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