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세종대왕 익선관 발견

2013-02-28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이상규 경북대 국문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지난 27일 세종대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익선관(왕이 집무할 때 쓰던 모자)을 공개했다. 이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 약탈당한 것이다.

공개된 익선관 안에는 훈민정음 제자해(훈민정음 제작에 대한 풀이) 활자본이 들어 있어 앞으로 훈민정음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는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앞설 수도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확인한 익선관은 주로 흙색 바탕의 천에 금실 등으로 용, 모란꽃과 넝쿨, ‘王’(왕)자와 ‘卍’(만)자 등이 수놓아져 있다.

연구팀이 이를 세종대왕의 유물로 추정하는 근거는 모자에 요 무늬에 사조(4개의 발톱)이 묘사됐기 때문이다.

세조 2년(1456년)의 세종실록 기록에 따르면 세종 26년(1444년)까지는 사조용의(四爪龍衣)를 입었다. 같은 해 3월 26일 명부터 오조용복(五爪龍服)을 하사받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즉 오조용의(五爪龍衣)로 바뀌기 전의 익선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또 연구팀은 익선관 내부 붉은 도류사(桃榴紗) 안에 훈민정음 제자해와 관련된 기록이 활자본 형태로 여러 겹 들어 있다고 밝혔다.

임금의 사조용의 착용 시점만 놓고 봤을 때 내부 훈민정음 자료는 세종 28년(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앞선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유물 훼손을 염려해 아직 해체하지는 않았다. 소장자도 국가 기증 의사를 밝힘에 따라 추후 문화재청 등과 협의, 익선과 내부 자료도 분석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등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진위 여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목재 문화재 연구가 박상진 경북대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소 연대 측정도 ±40~50년의 오차가 있어 실제와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며 “적어도 이 유물이 임진왜란 전의 것인지 후의 것인지는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왕실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탈취해간 왕가 유물 소재 파악 및 국내 송환 촉구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익선관은 지난해 한 국내 수집가가 일본에서 구입해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chocho62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