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새해특집-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까지 훈훈하게 만든 힐링피플 3人

‘오뚝이’ 박주선- ①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2013-02-05     박형남 기자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2013년 계사년 정치권은 날씨만큼 변덕스러울 전망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대선이 끝나 민심은 둘로 갈라섰고 여야는 여전히 사사건건 으르렁거린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빈부 격차는 고희를 넘은 노모를 자살로 내몰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부도덕성’은 여전하고 특별사면은 ‘없는 사람들을 더 없어 보이게’ 만들고 있다. 국가의 첫 명절인 설을 맞이한 서글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을 ‘힐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 치료사 정진 위드하우스 쉼터장부터 ‘7전8기 오뚝이’ 인생을 산 박주선 민주당 의원, 패배의 아픔에 젖은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한 희망 메시지를 주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마저 훈훈하게 만드는 힐링 피플을 만나보자.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면 하늘이 먼저 시험”
옷 로비·현대건설 비자금 사건…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지만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깜깜이 인사’ 끝에 소아마비를 딛고 헌재소장까지 지낸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내세웠지만 각종 의혹에 얼룩져 자진사퇴했다. 깨끗할 것 같았던 김 후보자마저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했다. 국민들에게 힐링이 필요할 때 정치권은 힐링은 커녕 국민들을 더더욱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인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국민들에게 마음의 치유를 해 줄 수 있는 정치인도 있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4번의 구속 4번의 무죄

박 의원은 4번 구속에 4번 무죄라는 진기록을 세운 정치인이다. 그는 4·11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동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등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4번째 구속됐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때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서 사직동팀 내사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2000년 나라종금 사건 때 역시 구속됐다. 2004년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3번 구속, 3번 무죄’라는 국내 사법 사상 초유의 기록을 썼다.

또 박 의원은 대선 과정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만나 ‘국민대통합과 호남의 발전을 위해 박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의견수렴을 하려는 과정에서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고, 급기야 박 의원은 지지자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과거에나 있을 법한 일을 박 의원은 또 다시 겪었다. 그리고 사상 초유의 진기록 뿐 아니라 사상 초유의 일을 당했던 셈.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힘든 삶을 살았던 박 의원. 그는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사실 박 의원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수석 졸업을 놓치지 않아, 사법고시도 수석 합격했다. 지역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검사 임관 후에도 장래 검찰 총장감으로 꼽히면서 검찰 내부의 주목을 받았다.

박 의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소신과 용기를 가지고 지도를 못하는 것 같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명령·지침·지도도 수용하거나 동의를 잘 안하는 게 검찰 분위기”라며 “검사로 근무할 때 후배검사들에게 반드시 조사 받는 사람이 승복하고 납득하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조사받은 사람의 80% 이상이 다시 연락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돼 세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의 수영장까지 불려간 최초의 비서관으로, 보고하겠다고 얘기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일과 중에는 물론이고 일과 후에도 불렀다. 김 전 대통령이 박 의원에게 듣고 싶어한 것은 소관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였다. 국정 전반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는 게 박 의원의 설명.

그러나 총애는 결코 약으로만 작용하지 않았다. 권력 내부의 음험한 질시의 싹을 키웠고, 결국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1999년 ‘옷 로비’ 사건에 연루돼 처음 구속됐다. 당시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의혹이 제기된 것. 박 의원은 29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는 그의 발목을 잡기 충분했다. 장관직을 제의, 총선 출마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옷로비 사건이 다시 회자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역에서 동정여론이 들끓었고, 2000년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박 의원은 “정말로 서민과 함께 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에 입당했지만 또 다시 시련을 겪었다. 참여정부에서 나라종금 퇴출로비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에 구속됐다. 이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 등을 통해 법정구속 되는 등 친정집인 검찰과 일대 혈전을 벌였다.

‘사필귀정’ 늘 되새겨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구속 되어 있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와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검사 생활 4분의 3을 했는데 억울하게 구속시킨 일은 없을까, 내가 너무 사람들을 구속해서 원한을 사서 하늘이 노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며 “저라도 인간이라고 조금도 실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출세를 위해 부당하게 양심을 팔거나 수사권이나 검찰권 행사를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4번의 구속, 4번의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늘 되새겨왔다”며 “주변분들도 진실은 잠시 가려질 수 있지만 영원히 숨겨질 수 없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머릿속에 남는 글귀가 임인대사 천험근골(任人大事 天驗筋骨)”이라며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면 먼저 하늘이 시험한다‘는 뜻으로 그 글귀를 보면서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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