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위드하우스 쉼터장③ “회복의 열쇠는 가족…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2013 새해특집]대한민국 힐링피플 3人 “전두환·삼성을 울리다”

2013-02-05     최은서 기자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마음 쉼터 ‘위드하우스’는 서울 연희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위드하우스는 자살시도자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자살자 유가족들을 위한 ‘힐링존’이다.

이곳의 쉼터장 정진(57)씨는 2010년 8월 소나무 숲 옆 하얀색 3층집인 자신의 집에 위드하우스라는 이름을 달고 자살예방쉼터를 열었다. 그녀는 1층은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고 2층과 3층은 쉼터로 꾸려 자살자 유가족과 시도자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쉼터가 생긴지 3년차, 지금까지 50여 명의 자살시도자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고위험군의 사람들, 자살자 유가족들이 이 곳을 다녀갔다.

위드하우스를 찾은 기자에게 그녀는 “그들이 왜 삶을 놓으려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마음과 뜻, 힘, 목숨을 다해 나와 이웃, 다른 생명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가 만난 이들의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그녀에게 ‘나눔’과 ‘사랑’은 익숙한 명제다. 정 쉼터장은 남편과 결혼할 때부터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살아가자’고 약속했고 30여 년간 이혼 위기 가정과 자살시도자, 자살자 유가족들을 꾸준히 도우며 살아왔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해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일상의 시작과 끝을 ‘함께’

위드하우스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린 것은 한 30대 아가씨 A씨였다. 정 쉼터장은 “A씨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채 성장하면서 힘든 고비들을 많이 겪어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 쉼터장은 A씨와 ‘사소하지만 따뜻하고 분주한 일상 보내기’를 계획했다. 모든 일상을 ‘함께’했다. 일상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우울’을 떨치기 위해서 잠에서 깨어나면 하루 1시간 이상을 누워 있지 않도록 약속하고 하루 종일 몸을 분주히 움직이게 했다.

하루의 시작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도와 명상이었다. 또 집 앞의 텃밭을 함께 가꾸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거닐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해가 지면 그날 하루에 있었던 감사한 일 3가지씩을 서로에게 들려줬다. 정 쉼터장은 “감사인사를 시작하면서 A씨는 서서히 달라졌다.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소소한 일들도 점차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며 “A씨는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 나에게 아픔을 줬지만 날 낳아준 부모가 있다는 것, 부모의 간섭도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는 쪽으로 사고가 전환됐다”고 빙그레 웃었다.

정 쉼터장은 쉼터에 머물다간 모든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녀는 쉼터를 두드리는 모든 사람들의 가족도 쉼터로 부르는 것이 철칙이다.

회복의 열쇠는 ‘가족’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가족을 쉼터로 불러 이 사람이 왜 힘들었는지, 성장환경에서 어떤 두려움을 갖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A씨는 가족과 함께 3주간 머물다 갔는데 본인이 바뀌니 가족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며 “최근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갔다고 환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우리사회는 힐링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지나칠 만큼 연예인 및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같은 오명은 우리 사회 이 곳 저 곳에 ‘힐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지만 자살시도자나 자살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과 치유시설은 미비하다. 그녀는 “자살자 가족들이 겪는 상처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놓았다. 그녀는 기자에게 위드하우스를 찾은 한 50대 남성 B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2월부터 전화로만 상담을 해온 50대 남성은 성장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잃었다. 자괴감에 빠진 B씨는 방황하게 됐고 본인 역시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우울증에 깊어진 그는 알콜 중독에 빠지게 돼 가족들과 잦은 갈등을 겪게 됐고 여러 차례 자살시도도 했다.

전화로만 상담을 해오던 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가족과 함께 위드하우스를 찾아왔다. B씨는 이 곳에서 분주히 몸을 움직였고, 가족에게 자신이 왜 쉽게 좌절하고 우울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해 털어놨다.

아버지가 마음의 문을 여니 아들이 눈물을 쏟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던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담담하게 털어놓은 성장사를 듣고는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B씨를 꼭 끌어안았다고 한다.

위드하우스를 찾은 뒤 B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확연하게 바뀌었다. 남의 시선과 잣대로 자신의 삶을 판단했던 B씨는 “남의 눈에 번듯한 직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일도 시작 못했었는데 이제는 남을 해치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새벽부터 밤까지 ‘쓰리잡’을 하기까지 했다.

삶에 대해 적극성을 가지게 된 B씨는 지금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가정의 든든한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B씨는 지금도 종종 정 쉼터장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해 자신의 근황을 들려준다. 정 센터장은 “가정의 막혀있는 곳을 뚫는 것이 ‘회복’의 첫 단추다. 가족관계 속에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모두’를 향해 활짝 열린 곳

위드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정 센터장의 사고도 전환을 맞이했다. 그녀는 “지난해 11월부터 확연히 바뀐 생각이 있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라며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삶에 대해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사랑받아야한다는 것이 명제가 되면 사랑받지 못하면 자신을 학대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고 남에게 상처를 줘 부메랑처럼 독화살이 돼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음과 뜻, 힘,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며 “사랑하는 행위란 대충 사는 것이 아닌 사력을 다해 사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 남도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사랑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질 일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쉼터에는 오늘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녀의 쉼터는 ‘모두’를 향해 활짝 열려있다. 정 센터장은 “자살 시도자들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자살자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와서 편히 쉴 곳을 내어줄 쉼터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돼 그들이 혼자 고민하다 생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입버릇처럼 하는 ‘힘들다’는 목소리를 지나치지 않고 귀 기울여주고 기댈 수 있는 곳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