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장`…전면전 불사 한다

2005-04-09     홍성철 
“밀리면 끝장이다. 전면전도 불사한다.” 4월 임시국회에 임하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군의 양대축인 박근혜-이명박 진영의 출사표다. ‘행정도시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 촉발된 당내 갈등이 서서히 대권주자간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신당창당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고 조기전대론도 4월들어 탄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차기 대선후보 경쟁구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책임당원제를 둘러싼 논란도 가중되고 있다. 당 주변에서는 “이러다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적잖게 나돌고 있다. 이처럼 당 내홍이 심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대권 라이벌 관계인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간의 치열한 대권경쟁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유리한 대권고지 점령을 위한 양측간 서바이벌 게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대선 이후 한나라당 대권구도는 박 대표와 이 시장, 그리고 손학규 경기지사가 이른바 ‘빅3’를 형성하며 물밑 경쟁을 펼쳐왔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후발주자로 대권레이스에 합류했고, 김덕룡 전 원내대표도 잠재적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빅3’의 지지율은 박 대표가 줄곧 1위를 달렸고, 이 시장과 손 지사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 시장의 추격전이 본격화되면서 박 대표와 이 시장간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지난 2월 행정도시법 국회 통과 이후에는 오히려 이 시장의 지지율이 박 대표를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적지 않았다.이 시장의 선전은 ‘빅3’ 구도를 한 순간에 ‘빅2’ 구도로 전환시켰다. 현재 한나라당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빅2’ 구도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추월 위기에 처한 박 대표측과 조금만 탄력을 받으면 수위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이 시장측의 치열한 대권 라이벌 의식이 당 내홍 이면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박 대표와 당 지도부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공격수들 대부분이 친 이명박계 인사들이라는 사실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특히 박 대표 공격수에는 반박(反朴)그룹 3인방이자 이 시장의 핵심 측근인 김문수·홍준표 의원이 선봉을 맡고 있다.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이하 수투위) 소속인 김 의원은 ‘신당창당론’을 공식화하면서 공격수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3월 중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김 의원은 “야당이란 항상 힘들고 절망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희망이 돼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야당인지, 여당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한 뒤 “들러리 정당을 계속하면 선명야당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다”며 ‘신당창당론’에 불을 지폈다.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당 지도부와 전면전을 선포한 수투위는 이명박 사단의 리더격인 이재오 의원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고, 김문수 안상수 전재희 박성범 의원 등 중진급들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김 의원과 함께 수투위 소속이면서 당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의원은 ‘포용’을 통한 당 주류세력 교체론을 주창하고 있다.

홍 의원은 “제2 창당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수구꼴통당’이라는 이미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며 7월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개편론을 제기하고 있다. 당내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도 7월 조기전대론을 주장하면서 박 대표와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박 대표 중심의 1인 지배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만큼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위한 전대를 7월에 개최해야 한다는 게 수요모임의 입장이다.이처럼 반박그룹 대표주자인 김문수·홍준표·이재오 의원 등이 박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명박 시장의 대망론이 자리잡고 있다. ‘박세일 사퇴’ 후폭풍으로 박 대표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박 대표는 여전히 당내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다. 따라서 대주주에 등극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신당론이나 주류교체론은 바로 이러한 승부수와 맞물려 있다.

‘박근혜 흔들기’를 통해 당내 이명박 사단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이명박 대세론을 확대시킨다는 전략인 셈이다.하지만 박 대표측도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박세일 사퇴’에 따른 부메랑을 고스란히 떠 안고 있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박 대표는 박세일 사단을 떠나보낸 대신 무색무취 성향인 ‘국민생각’ 그룹을 당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생각’ 고문과 대표를 맡고 있는 강재섭·맹형규 의원이 각각 새 원내사령탑과 정책위원장에 등극했다. 재선그룹의 임태희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당내 최대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국민생각’을 통해 내분을 수습하는 동시에 당권에 대한 반박세력들의 도전을 방어하겠다는 박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박 대표는 또 한동안 주춤했던 서진정책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9일에는 DJ(김대중 전대통령)와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을 전격 방문했다.

박 대표가 호남을 방문한 것은 대표 취임이후 여섯 번째지만 어려운 시기에 DJ의 고향을 방문한 배경에는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호남 껴안기’ 등 서진정책 플랜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호남의 정치적 지주인 DJ와의 관계복원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신안군은 큰 정치인(DJ 한화갑)이 두 분이나 나온 곳이라 늘 와 보고 싶었고, 여러분의 긍지도 높으실 것으로 안다”고 말하면서 DJ와 한 대표를 간접적으로 추켜 세웠다. 박 대표 신안 방문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한·민 연대론’ ‘박근혜·한화갑 밀월설’ 등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이처럼 당 내홍 와중에 박 대표측과 이 시장측은 공격(이명박계)과 정면돌파(박근혜계) 전선을 구축하며 치열한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양 진영은 일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국보법 등 민감한 3대 법안 처리문제가 남아 있고, 향후 정국주도권 향배를 가늠할 4·30 재보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3대 입법안 처리와 관련해서는 당내 계파별 첨예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지도부와 영남 보수파는 여전히 강경자세를 고수하고 있고, 개혁성향의 수요모임측은 지난해 여야간 합의했던 사안이므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이명박 사단도 법안 처리에 무게를 두고 있어 양 측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또 4·30 재보선 결과는 박 대표의 정치적 명운과 맞물려 양측간 주도권 싸움 향배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거나 선전했을 경우 박 대표는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칠 수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 이명박 사단이 주창하는 신당론이나 주류교체론이 탄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