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억원 나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돈
2005-04-09 이혜숙
이씨는 그러나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새롭게 밝혀진 73억원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돈으로 나도 모르는 돈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노태우 비자금외에 별도의 비자금이 조성·관리돼 왔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140여평의 고급 빌라 A동. ‘노태우 1급 참모’로 6공 당시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이현우씨의 자택이다.기자는 여러 차례의 자택방문과 전화통화 시도 끝에 4월 1일, 외출했다 돌아온 이 전실장과 어렵사리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이씨는 최근 검찰이 노태우 비자금 73억원을 추가로 밝혀내면서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곤혹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당할 만큼 당했다.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며 부담스러워 했다.
이씨는 88년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육본인사참모부장에서 곧바로 예편, 노 전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경호실장(7대)에 발탁돼 20여년을 근접거리에서 보필해 온 노 전대통령의 ‘분신’같은 인물이다. 6공 권력이양기때는 9대 안기부장으로 옮겨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까지 노 대통령과 5년내내 임기를 같이했다.이씨가 경호실장 시절 6공의 ‘통치자금’을 총 관리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노 전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이 찾아낸 상업은행 효자동 지점의 400억원대 괴자금은 청와대 경호실을 뜻하는 ‘청우회’ ‘KHS(경호실의 영문약정)’로 예치된 것으로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수사의 발단이 됐다. 이 계좌의 관리책임자가 바로 이씨였다.노 전대통령과 이씨의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관리를 총괄하는데도 정작 노 전대통령은 이씨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했던 것. 이씨가 노태우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검찰에 소환되자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경위 및 관리 과정 등을 상세히 진술한 것도 이러한 섭섭함이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이씨의 결정적인 진술로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았고, 결국 전직 대통령이 뇌물죄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씨 또한 이 과정에서 특가법상 뇌물수수혐의로 4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 노태우 비자금이 추가로 발견될 때마다 이씨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이씨가 노태우 비자금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자금 조성과 관련, “국회의원 선거지원등에 사용하고 남은 비자금은 모두 추징됐다”는 노 전대통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태우 비자금 수사는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이씨는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노태우 비자금 73억원에 대해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다”고 시인하면서도 조사 일시나 내용 등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씨는 그동안 73억원의 비자금을 직접 관리해 왔느냐는 질문에는 “그 돈은 나와는 상관없는 별도의 돈으로, 나도 모르는 돈이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씨가 관리해 온 비자금이 아닌 별도의 돈이라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중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별도 비자금이 존재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침묵을 지켜 사실상 또 다른 비자금 계좌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에대해 검찰은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이 더 있을 수 있어 계속 추적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비자금이 은밀하게 감춰져 있어 구체적인 제보가 없으면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는 여러차례 이씨 집을 방문,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밝혀지지 않은 김옥숙 여사의 비자금 계좌 소유여부 및 노 전대통령이 보관하고 있던 비자금 장부의 폐기 여부 등에 대해 밝혀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씨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며 끝내 응하지 않았다. 한편, 노 전대통령은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2,629억원의 추징액 중 이번에 새로 발견된 73억원 가운데 16억4,000만원을 포함, 총 2,097억원을 추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