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은 애초에 사지도 않은 것으로 결론”
2004-11-29 윤지환
울산지방검찰청 형사 2부는 지난 17일 조모씨가 동갑내기 동거녀 최모씨를 상대로 고소한 로또 복권 1등 당첨금 34억원 횡령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조씨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씨는 일정부분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결과를 인정하면서도 “최씨에 대해 횡령 혐의가 없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다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번에 혐의를 벗게 된 최씨는 자신의 무죄가 밝혀진 이상 그간 조씨 측의 말만 듣고 일방적인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는 그동안 언론사들의 흥미위주식 의 일방적인 보도 때문에 주변에서 사랑을 배신하고 돈을 횡령한 파렴치범으로 몰려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최씨가 당첨금 34억원에 대한 횡령혐의를 벗음에 따라 사건은 ‘당첨금 쟁취’에서 ‘진실 밝히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사건을 요약해 보면 지난 4월, 조씨가 메모장에 적어둔 6개의 번호를 최씨에게 건네며 “이 번호로 로또복권을 사라”며 5만원을 준 데서 비롯됐다. 조씨가 건넨 번호가 로또 1등 번호에 당첨된 것이다. 당첨금은 52억8,000여만원으로, 세금을 빼도 무려 34억원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신이 최씨에게 메모해 준 번호가 1등 당첨 번호인 사실을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뻤던 조씨는 최씨에게“복권을 샀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최씨는 “안 샀다”는 말을 전했고 이 말을 들은 조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 조씨는 친구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을 접하게 된다. 조씨의 주장에 따르면 진해에 있는 조씨의 단골 복권판매점에서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들은 것이다.
조씨는 이를 듣고 최씨에게 사실을 추궁한 끝에 “사실 구입했는데, 당신이 소문낼까봐 일부러 숨겼다. 로또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놓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그러나 최초로 사건을 접수한 양산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여기서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경찰서 관계자는 “조씨는 분명 최씨로부터 복권을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조씨는 복권을 안 샀다고 했는데 무섭게 자꾸 다그쳐서 하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진술했다” 며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우리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또 이 사건을 수사했던 울산지방검찰청 형사 2부에서는 “이번 사건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라 수사력을 집중해 세밀하게 조사했으나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다”면서 “조씨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최씨는 당첨 복권을 구입했다는 시기에 어머니가 아파서 부산에 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는 최씨와 가족들의 통장도 모두 살폈고 실제 당첨자로 알려진 진해의 공무원이라는 사람과 최씨와의 연계성에 대해도 호적등본을 맞춰 보는 등 충분히 조사했다”면서 “방송과 신문에 나온 바와 같이 여자가 돈을 헤프게 쓰고 다닌 흔적이 있는가도 조사했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또 최씨는 자기 어머니에게 맡겨둔 당첨금을 찾아오겠다며 옷가지와 화장품 등을 놓아둔 채 나간 뒤 그 길로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에 대한 의혹도 강하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최씨 측은 경찰 진술에서 “예전부터 조씨와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고 친정에 가니 조씨가 무서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또 조씨가 돈에 대해 무섭게 집착을 보이며 돈을 내 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정이 뚝 떨어졌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거남 변호사 “횡령 단정 힘든 상태”
조씨의 변호를 맡았던 모 변호사는 “솔직히 나는 이 사건에서 사임한 상태다. 그리고 의뢰인과의 신뢰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사건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제 3자가 당첨금을 가져간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그 사람과 최씨의 관계를 규명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검찰이 최씨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해도 조씨가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의심을 지우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최씨가 횡령했다고 단정하기도 힘든 그런 상태다.
-당사자들이 이 사건을 쉽게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일단 돈의 액수가 34억원이라는 큰 돈인데다가 로또 숫자를 맞춘 것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겠나. 또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사건을 풀 생각을 안한다. 특히 조씨는 대화보다는 돈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서 애초 사실여부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최씨측을 만나보니 조씨보고 미쳤다면서 무조건 법대로 하라고 했다.
-최씨가 돈을 가져갔다는 조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나는 사건을 맡은 뒤 조사를 통해 최씨가 돈을 가져갔다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판단, 애초 조씨에게 “최씨가 거액의 돈을 쓰는 등 당첨금을 가져갔다는 흔적이 포착되면 그때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자”고 충고했지만 조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최씨 측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어 최씨의 어머니와 최씨가 직접 변론을 했다. 누가 보더라도 최씨가 돈을 가져갔다는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