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니면 ‘도’에 큰 돈 걸린다

2005-01-27     김재윤 
노인들을 상대로 한 ‘윷놀이 도박’ 이 다시 성행하고 있다. 종묘공원, 남산공원 등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전문 도박단이 은밀히 판을 벌이며 ‘영업’을 재개한 것. 그러나 도박단이 자체 ‘감시조’ 를 운영하면서 경찰 수사망을 피하고 있고 피해자들 역시 도박에 참여한 사실을 숨기려 해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노인들을 상대로 도박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와 승리수당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윷놀이 사기 도박단이 재등장 하고 있다.지난 2004년 봄 동일 수법의 사기도박단이 경찰에 검거됐음에도 새로운 조직을 중심으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목격자들에 따르면 윷놀이 도박단은 종묘공원에 놀러온 노인들을 상대로 술을 사주며 환심을 산 뒤 윷놀이 도박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수법으로 도박판을 벌여왔고 심지어 도박 자금까지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종묘공원에 자주 들른다는 한 노인의 진술에 따르면 종묘공원에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도박단원들이 윷을 놀면 노인들이 판돈을 거는 방법으로 도박이 행해지며 조직원들이 판돈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도박에 거는 금액은 1인당 30만~50만원 정도. 한판에 5~6명 정도가 참여해 판당 약 200~300만원 정도의 금액이 오가는 것으로 밝혀졌다.윷놀이에 직접 참여했었다고 밝힌 한 노인은 “보통 한판에 5~6명 정도가 참여해 판돈을 걸었다. 처음엔 몇 번 돈을 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돈을 잃었다. 내가 아는 어떤 노인은 윷놀이 도박으로만 3,000만원 가까이 날리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도박판을 목격했다는 또 다른 노인은 “도박단은 선이자를 10% 떼고, 이길 경우 승리수당 명목으로 판돈 10%를 추가로 떼는 등의 수법으로 현금을 갈취했다”고 언급하며 “특히 이들은 한판에 300만원 이상 넘어가는 큰 판이 벌어질 경우 윷을 고의로 윷 판 밖에 던져 특정인이 게임에 지게하는 등 승부를 조작하기도 했다. 윷을 던지는 권한을 자신들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이라고 주장했다.다시 윷놀이 도박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이들을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도박단이 조직적으로 낯선 사람들의 출입을 체크하는 전문 브로커들을 고용했기 때문이다.관할서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판돈이 오가는 장면을 현장에서 포착해야 하지만 브로커들 때문에 현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판은 깨져버린다. 윷놀던 일당들은 온데간데 없고 도박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없다” 며 “현장을 급습한 경우에도 친목도모를 위해 윷놀이를 하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노인들의 면박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간 경우도 있다” 고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작년 봄 윷놀이 도박단 일당을 검거할 당시 담당 형사들 얼굴이 브로커들에게 알려져 이제는 잠복근무하기도 힘들다. 도박단을 잡기 위해서 새로운 팀을 짜야 할 판”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종묘공원에서 도박판을 벌이는 조직끼리 이권다툼을 벌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리싸움을 위해 상대조직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제보자로 가장해 사전에 정보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익명의 시민 제보로 일당을 검거하고 나면 잠복기를 거쳐 다른 일당이 새로운 도박판을 벌인다” 며 “알고보니 제보자가 다른 도박단의 구성원인 적도 있었다. 영역다툼을 위해 경찰을 이용한 셈” 이라고 언급했다.현재 도박단 검거에 가장 큰 걸림돌은 피해자들의 진술 및 조사 거부. 경찰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피해자들 대부분은 도박에 참가한 자체로도 입건이 가능해 대부분 피해사실을 숨기고 속앓이만 한다. 피해자가 도박단의 인상착의 등 구체적인 진술을 해야 검거가 쉽다” 며 원활한 수사를 위해 피해자가 용기있게 진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경찰단속 나오면 알려달라”
윷놀이 도박단,`‘노인 감시원’ 고용

윷놀이 도박단이 종묘공원을 찾는 일부 노인들을 범죄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종묘공원을 찾는 노인들을 감시 브로커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노인들 대부분은 용돈 명목으로 일당을 받거나 식사와 술대접을 받는 조건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은 “도박단이 은밀히 다가와 거래를 제안한다. 조건이 좋아 흔들린 적이 많았다” 며 “발각될 위험이 거의 없고 발각돼도 도박단과의 연계성을 부인하면 그만이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용돈을 벌려고 종묘공원에 나오는 노인들도 있고 심지어는 도박단을 먼저 찾는 노인들도 꽤 된다”고 귀띔했다.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종묘공원 노인 브로커들은 경찰이 등장하면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거나 ‘봉식아’ 라며 특정인의 이름을 불러 경찰의 등장을 알려준다”고 설명하면서 “노인 브로커들은 다른 노인 무리들 속에 섞여있기 때문에 도박단 보다 더욱 색출하기 힘들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