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혀에 6억 날린 사나이`설마 하다가‘억’
2005-03-10 이수향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이내 사실로 판명됐다. 김씨가 상당한 재력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이씨는 김씨를 상대로 크게 한탕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씨는 김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된다.그는 김씨와 쉽게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않은 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유한 형편의 자신에게 동질감을 느낀 김씨가 쉽게 의심을 풀고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였다.따라서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속이기로 마음 먹는다. 웬만한 재산을 지닌 부자정도로는 김씨의 환심을 사기에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그는 “사실 나는 알만한 재벌가문의 장손”이라는 말로 김씨의 관심을 끌었다. 이씨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많은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재벌가문 출신이라는 이씨의 말에 김씨는 호감을 보이게 된다.이씨의 거짓말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어느 순간 경주에 엄청난 양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땅부자일뿐 아니라 현재 큰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유망한 사업가로 포장됐다. 매사에 신중한 김씨가 처음부터 이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오랜 친분도 없이 측근을 통해 우연찮게 알게된 사이인 탓에 김씨는 이씨를 은근히 경계했다. 그러나 평소 돈도 잘쓰고 싹싹한 태도를 보이는 이씨에게 그는 점차 호감을 느끼며 경계를 풀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김씨와 돈독한 신뢰와 친분을 쌓는데 성공한 이씨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씨는 본래의 목적대로 김씨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현재 신용금고를 인수할 예정인데 커다란 골프장을 함께 인수하려다보니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부딪혔다는 핑계였다.그러나 아무리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김씨라해도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선뜻 빌려줄리 없었다.이씨는 김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꾸몄다. “이번 금고 인수만 성공적으로 되면 자금난은 금세 풀린다”는 것이었다.
또 그의 거짓말을 숨길 수 있는 구체적인 문서를 위조했다. 앞으로 인수하게될 신용금고 이사회의 명의로 돈을 갚겠다는 조건과 함께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관련 서류들을 허위로 조작하여 김씨에게 보여준 것이다. 당장 눈앞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자료와 문서를 본 김씨는 이씨의 제안에 흔들리게 된다.특히 이사회 명의로 발부한 차용증은 김씨의 의심을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씨를 솔깃하게 한 것은 이씨가 제시한 엄청난 이자였다. 이씨는 “6억원을 빌려주면 인수직후 엄청난 이자를 쳐서 갚겠다”는 말로 현혹했다. 인수자금 6억원을 몇 달만 빌려주면 원금을 제외하고도 엄청난 금액을 손에 쥐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씨의 말에 결국 김씨는 넘어가게 된다.이씨가 약속한 이자는 시중에서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거액이었다. 만약 이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최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최상의 투자였던 것. 김씨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챈 이씨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김씨를 안심시켜 확실히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일명 ‘바람잡이’들을 끌어들였다.그는 제 3자들로 하여금 이씨의 신상에 대한 소문을 흘려 김씨의 귀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또 이씨의 사주를 받은 이들은 직접 김씨에게 이씨에 대한 좋은 말을 함으로써 신뢰를 갖도록 바람을 잡았다.내용은 주로 ‘이씨가 대단한 집안의 장손이다’, ‘좋은 가문에서 자라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이씨가 현재 큰 사업을 추진중’이라며 이씨의 사업수완이나 능력부분을 과대포장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김씨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월 이씨에게 6억원을 빌려주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김씨에게 돌아온 것은 이씨가 약속한 엄청난 수익대신 믿었던 한 인간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과 분노뿐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검 조사4계 담당자는 “이씨는 이사회 명의로 차용증을 쓰고 믿음직스러운 문서들을 제공하는 수법으로 김씨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어 “그는 자신의 거짓 신상이 탄로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명 바람잡이들까지 끌어들였다”며 그의 치밀한 범행수법에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