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싸움 동호회’`실태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
2005-03-24 김재윤
‘싸움짱’을 만들어준다는 모 동호회 운영진인 이 모(19·고등학생)군은 “회원들 연령층은 10대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중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20대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의 가입도 늘었다”고 동호회 현황을 설명했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동호회 게시판에서 각종 무술과 이종격투기 경기 등의 동영상을 관람하고 싸움 기술에 대한 정보나 의견을 교환하는 것.‘요령있게 발차기 하는 방법’, ‘한 방에 상대 녹다운 시키는 법’, ‘상대 급소 공략하기’등 게시판 내의 싸움 기술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인 편이었다. 이들은 한 달에 1~2차례 정도 ‘정모’를 통해 회원들간의 교류도 이뤄진다. 이 자리에서는 동영상으로만 봐왔던 각종 기술들을 실전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이군은 “정모는 보통 강의, 실습, 실전적용의 세 단계로 나눠 진행한다. 강의 시간에는 동영상물 분석이나 소위 ‘싸움짱’들이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들을 소개해 회원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가르친다”며 “강의가 끝나면 개인별로 혹은 2인 1조로 짝을 이뤄 강의 내용을 복습하며 싸움 기술을 숙달한다”고 밝혔다. 이군은 “강의와 실습이 끝나면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회원들간의 실전 싸움이 이뤄지며, 실전 싸움은 상당히 격렬해 멍이 들거나 골절상을 입는 등 큰 부상을 입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그런데 놀랍게도 회원들 간에 감정이 상하거나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다고 했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하자 이 군은 “복싱경기를 연상하면 된다. 경기 중 상대 선수를 난타하지만 감정이 실려 때리지는 않지 않느냐”며 “복싱경기에서처럼 싸우기 전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싸움이 끝나면 서로 등을 토닥거리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세 단계의 과정을 통해 ‘싸움짱’으로 변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에 따라 6개월에서 1년 정도.이처럼 사람들이 싸움 동호회에 가입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동호회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른바 ‘목표 설정’을 통해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사람을 마음속에 새겨 넣는다. 중학교 1학년인 K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찌질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했다”며 “그동안 수없이 폭력을 당하고 금품을 갈취당했는데, 마음속으로는 싸우고 싶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나를 놀리는 친구들에 대항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직장인 L씨도 “회사 동료들이 온갖 궂은 일은 나에게 떠넘기면서 정작 고마워하는 기색은커녕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있다. 내가 싫은 소리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밥도 혼자 먹고 면전에서 비난을 듣는 등 인격무시 행위가 지나쳐 본때를 보여주려고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털어놨다.
K군과 L씨의 경우에서 보듯 동호회 회원들 대부분은 학교나 직장 내에서 ‘왕따’를 당했거나 상대방의 ‘주먹’에 눌려 인간관계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특정인에 대한 적개심은 또 다른 폭력을 낳기도 한다.싸움에 대한 자신이 붙게 되면 동호회 회원들은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불특정 다수와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싸움 동호회 회원들은 폭력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지만 동호회 회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동호회 운영진인 이 모군은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맞대응하지 못하거나 비폭력적으로 대하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항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폭력을 합리화 하기도 했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다는 이들의 논리는 빈약해 보이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원한의 대상에게 복수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확신하고 있어 이들의 싸움 교육과 연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사이트 운영진 이 모군 “돈 뺏는 친구 두렵지 않아”
인터넷 싸움 동호회 A사이트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이 모(19)군. 그는 가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동호회 활동을 통해 완벽한 싸움꾼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얼굴과 팔에 가득한 흉터가 그간의 활동을 대변하고 있었다.
- 싸움 동호회 활동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 고 1때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년째 활동중이다.
- 활동하면서 싸움실력은 늘었나.▲ 많이 늘었다. 돈 뺏고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대항할 엄두도 못 내었었는데 지금은 누가 덤벼도 자신있다. 고 1때만해도 불안했었는데 이제는 함부로 덤비는 애들도 없다.
-기억에 남는 일은.▲ 첫 ‘정모’에 나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그 때 숫기가 없어서 상대방을 제대로 때리지 못했었다. 그 때 일방적으로 맞은 뒤 오기가 생겼다.
-싸울 때 기분은 어떤가.▲ 마치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특히 예전에 괴롭히던 애들을 때릴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찌질이(상습 폭력, 금품 갈취 당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들도 나를 영웅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싸움은 계속할 생각인가.▲ 그렇다. 동호회를 알게 돼 내 생활도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폭력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관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먼저 시비를 걸진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