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놀이… ‘아주 위험한 거래’가 시작된다

2005-06-07     이수향 
최근 일부 여고생들의 ‘자학놀이(사디즘 플레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자학놀이’란 말그대로 스스로 신체에 고통을 가함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놀이를 일컫는 말이다. 자신의 팔이나 다리의 실핏줄을 일부러 터뜨리거나 신체 일부분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이뤄지는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놀이’로 보기에는 너무도 잔인하다. 그러나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몇몇 사진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의 행동이 자학을 넘어 낯선 사람과의 ‘플’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통해서 쾌락을 느끼는 이들과 가학함으로 흥분을 느끼는 이들의 ‘충동’은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져 ‘위험한 거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학성만 존재한다’

최근 모인터넷사이트에 오른 여고생 자학사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굳이 이 사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 신체를 학대하거나 가학적인 행위를 부추기는 카페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모 포털 사이트의 ‘체벌’이라는 단어를 치면 수백개의 카페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SM은 가학적인 행위를 즐기는 사디스트(sadist)와 피학적인 행위를 즐기는 마조히스트(masochist)를 따서 만든 말로 흔히 변태적인 성행위를 수반하는 행위로 통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가학적인 사진을 돌려보는 것을 넘어 회원들끼리 실제로 만나 맞고 때리는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코 ‘놀이’의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포털 사이트의 OOO체벌카페. 온통 체벌과 관련된 내용들로 가득차 있는 이 카페의 회원 수는 무려 5천명에 달해 SM을 즐기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페는 체벌 소설, 체벌 경험담, 만남의 공간, 체벌 자료실, 묻고 답하기 등으로 꾸며져 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카페에는 ‘파트너’를 찾는 이들로부터 ‘성향’을 묻는 메시지가 끝없이 날아들었다. 체벌 당한 사진과 동영상을 모아놓은 자료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그곳에는 매질을 당한 신체 부위별로 자료들이 나뉘어져 보관되어 있는데, 부위가 부어오르고 회초리 자국으로 뒤엉킨 것은 애교수준이다. 신체 일부분에 피멍이 들거나 아예 살갗이 터져 피가 흐르는 사진들도 부지기수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회원들의 반응.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사진에 회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열광한다. 리플들에는 ‘나도 저렇게 맞고싶다’, ‘너무 흥분된다’, ‘저렇게 때려주실 분 구함’과 같이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글 일색이다. ‘플 하실분 구함’, ‘분당 거주 24살 팸섭입니다. 멜돔구함’, ‘하드한 플 즐길 섭구함’ ‘때려줄 주인 구합니다’.

아주 위험한 거래 ‘플’

늦은 시각 카페는 온통 파트너를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이메일 공개는 기본이고 전화번호까지 과감히 공개해놓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설득끝에 인천에 거주한다는 윤진수(27·가명)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윤씨는 “이런 카페는 불건전 모임으로 분류되어 사이트 측으로부터 블라인드가 걸리기 때문에 카페 수명이 무척 짧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성향을 ‘멜돔’이라고 밝힌 윤씨는 경력 4년째로 실제로 ‘플’을 한 경험도 이십여차례 있다고 털어놨다. ‘플’이란 서로 합의하에 실제로 만나 때리고 맞는 행위를 일컫는 그들만의 언어다. 윤씨에 따르면 ‘플’ 상대를 구할 때는 서로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만남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서로의 성향 확인은 물론, 원하는 신체 부위며 때리는 횟수, 체벌도구, 장소에 대한 양자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의하에 만나서 일단 ‘플’이 시작되면 보통 취소는 불가능하다. ‘돔’은 ‘섭’이 고통스러워할수록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섭’역시 맞음으로 흥분을 느끼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잔인한’ 플이 이뤄진다는 것. 윤씨는 “경험정도에 따라 ‘소프트 플’,‘하드 플’과 같이 사전합의를 하지만 보통 ‘플’은 ‘섭’이 견디기에 무척 고통스럽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응한다면 아주 위험한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맞는 것을 좋아하고 심한 체벌로 인해 쾌감을 느끼는 ‘섭’이라 해도 자신과 맞지 않는 ‘돔’을 만나면 플이 끝난 후에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심한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변태성행위로 이어지기도

한편 “솔직히 플을 하다보면 성적 흥분을 억누르기가 힘이 든다”는 윤씨의 얘기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체벌을 통해 성적 흥분을 느끼는 SM적 성향이 본인도 모르게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 윤씨는 “간혹 플만 하기로 약속해놓고도 행위를 하다보면 조절이 쉽지 않아 성관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며 “고정적인 플 상대를 두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신체적인 가학으로 느끼는 쾌감은 거의 중독이다. 군 제대후 심각한 사디스트가 되어버렸다는 윤씨는 “여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맞으면서도 내게 복종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 깊은 희열과 지배욕을 느꼈는데, 이는 당시 사랑하던 여자친구에게까지 이어져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윤씨에 따르면 ‘플’을 즐기는 이들중에는 미성년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부터 성적인 관계를 합의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과정에서 가혹한 체벌이 수반된 성행위나 SM적인 행위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윤씨의 말이다. 무엇보다 맞는 고통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섭’이 의외로 많다는 윤씨의 주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윤씨는 “SM을 즐기는 이들에게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며 즐기는 커플은 부러움의 대상”이라며 “나도 일회용 플 상대가 아닌 연인과 지속적으로 즐겨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윤씨에 따르면 보통 ‘섭’들은 자학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게된다. 따라서 ‘섭’들은 스스로 신체를 때리고 학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버리는 행위로까지 발전한다는 것. 자학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타인에 의한 점점 강도 높은 체벌과 고통을 먼저 요구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심하게 학대하는 ‘돔’에게 오히려 애정을 표현하고 매달리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특히 대체적으로 돔보다 섭이 많다는 윤씨의 말은 의외였다.

그는 “체벌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줄 돔을 구하는 섭들의 비중이 훨씬 높다”며 자신을 학대해줄 돔을 수소문하는 섭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주인’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윤씨는 자신이 원할 때마다 원하는 방식으로 플을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돈주고 구하는 ‘유료플’도 간간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윤씨는 “SM에 맛을 들인 이들 중에는 심지어 체벌이나 가혹한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성관계로는 좀처럼 흥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들 카페에서 성향이 정립되지 않은 초중고 학생들까지도 호기심으로 온라인 플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변태로 몰아붙이는 것은 속상하지만 호기심 왕성한 미성년을 꼬셔 가혹한 플을 행하거나 성관계를 수반한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SM’은 취향이 아니라 ‘병’이다

박용천 교수는 “사디즘은 성행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지만 상대를 가학함으로써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과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SM을 단순히 취향으로 볼 수 있는가.▲절대 취향이라 할 수 없다. 가학성애는 변태성욕으로 봐야한다.

-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상당수인데.▲사람이라면 누구나 약간씩의 성도착증세는 갖고 있다. 즉 정상적인 사람도 간혹 SM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정도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뉜다.

- 그렇다면 정신병인가.▲SM을 즐기는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알고있기 때문에 정신병이라기보다는 일종의’노이로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 환경의 영향을 받는가.▲물론이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생활했는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평범한 여성이 변태적 성행위에 길들여지는 경우는.▲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본인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습성이 드러나는 경우와 상대방의 강요에 의해 ‘노예화’되는 경우가 있다.

- 중독성이 있나.▲이러한 행위들에 대한 욕구를 절제하기 어려운 탓에 습관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 점차 강하고 위험한 자극을 찾게 된다.- 치료는 가능한가.▲약물치료와 행동치료, 상담치료를 병행함으로써 치료는 가능하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해 절대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 가학용어 아십니까?

‘성향’이란 일종의 주종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돔’은 ‘dominant’에서 따온 말로 ‘권력을 장악한’,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주인을 뜻한다. ‘섭’은 ‘submissive’에서 따온 말로 ‘복종하는’ 노예의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에 성을 나타내는 ‘male’의 멜과 ‘female’의 팸이 결합하여 ‘멜돔’ 혹은 ‘팸섭’처럼 성향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즉, ‘멜돔’은 상대를 때리거나 학대함으로 흥분을 얻는 남성을, ‘팸섭’은 맞는 고통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여성을 의미한다. 또 ‘멜섭’이나 ‘팸돔’ 커플도 당연히 존재하며 양쪽 모두 가능한 이들은 ‘스위치’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