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엽연초 구매한다 던 계획 어디로…” 힐난
2005-06-14 박유제
‘던힐’로 유명한 다국적 담배회사인 BAT코리아(British American Tobacco Korea)가 한국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산 엽연초 구매의사를 공식화해 놓고도 2년이 넘도록 엽연초를 전량 수입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BAT코리아는 특히 한국산 엽연초에 대한 품질검사 결과 적합판정을 받고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앞으로도 구매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고 나서 엽연초 생산농가의 항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BAT사는 세계 67개국에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180여개국에 해외지사를 둔 굴지의 담배회사로, 세계 시장점유율 2위(15.4%)를 기록하고 있다. 1억달러(1,300억원)를 들여 지난 2001년 경남 사천에 있는 진사지방산업단지 10만여㎡ 규모의 땅을 사들여 공장을 짓기 시작한 BAT코리아는 당시 김혁규 경남지사와의 투자양해각서에 국산 엽연초 구매의사를 밝힌 바 있다.특히 공장가동이 시작된 2003년에는 존 테일러 당시 사장이 서울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기적으로는 한국에서 (엽연초를 포함해)다양한 원자재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직접 강조했다. 존 테일러 사장은 이어 “철저한 한국 현지화 방식을 통해 한국 전체에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장 가동되자 각종 명분 내세워 “불가방침” 말바꿔
그러나 BAT코리아가 이 ‘약속’을 지킨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가장 중요한 원자재인 국산 엽연초 구매부터 외면하고 있는 상태. 한국공장 가동을 전후해 BAT코리아 영국본사가 처음 국산 엽연초에 대한 품질검사를 실시한 결과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짐바브웨 국적의 ‘헨리 미치(Henry Meech)’라는 BAT코리아 엽연초 매니저가 KT&G(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완제품 10갑으로 재검사를 의뢰,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자 구매 불가 방침으로 돌아섰다. 이 같은 사실이 엽연초 생산농가들에 알려지자 BAT코리아가 국산 엽연초 구매를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분을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적합판정” 받은 뒤 “부적합판정” 각종 의혹
실제로 BAT코리아의 국산 엽연초 품질검사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로부터 받은 국산 엽연초에 대한 품질검사를 한국이나 제3자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영국본사 연구소에서 직접 시행했고, 그 결과 적합판정을 받았는데도 굳이 재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제공한 엽연초가 순수 국산이라는 점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국산 엽연초 구매를 거부할 명분을 갖추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는 엽연초 생산농가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결국 BAT코리아 스스로가 영국 본사의 품질검사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BAT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산 엽연초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제품만을 샘플로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검사를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불투명하다. 이미 검사가 끝난 상황에서 ‘헨리 미치’라는 제3국의 한 매니저가 본사 연구소의 적합판정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는 이 회사 관계자의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이 매니저가 재검사 샘플로 제공한 것이 국산 엽연초가 아니라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출시한 시중 담배였다는 것이다. BAT코리아 관계자는 “헨리 미치가 한국산 담배 10갑을 구입해 재검을 의뢰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부적합 판정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결국 원자재인 엽연초가 아니라 한국의 경쟁사가 제조한 완성품으로 재검사를 의뢰해 부적합 판정을 받아냈다는 결론이다.이 밖에도 BAT코리아가 국산 엽연초 생산농가를 직접 방문해 샘플을 채취한 사실이 없다는 점, 그 후 단 한 차례도 재검사를 계획하거나 시도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은 공장 설립 이전부터 국산 엽연초 구매계획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엽연초 생산농가 항의 불보듯
BAT코리아의 국산 엽연초 구매불가 방침이 알려지자 지난해 1월에는 전국엽연초생산자회 소속 회원농민 40여명이 경남 사천시 사남면 유천리에 있는 BAT코리아 공장 앞에서 국산엽연초 구매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엽연초생산자회는 이어 지난 4월 21일 BAT코리아 주최로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사회와의 대화’에도 참석, “시장 점유율이 13%를 넘은 만큼 전체 물량의 13%를 국산 엽연초로 충당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BAT코리아가 한국공장 설립 후 시장점유율이 13% 이상으로 급성장하면서 세계시장점유율인 15%에 근접한 만큼, 한국산 엽연초를 구매하는 것이 기업윤리상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BAT코리아측이 “오는 9월 한국산 엽연초 구매와 관련한 회사의 최종 입장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밝혀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품질 재검사 계획 없다” 구매 가능성 완전 배제
그러나 <일요서울> 취재 결과 BAT코리아측은 공식발표 이전까지 국산 엽연초에 대한 품질검사 계획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BAT코리아 관계자도 “영국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겠지만, 현재의 상황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BAT코리아가 생산한 담배 원자재 구매현황을 보면 엽연초를 비롯해 필터, 종이갑, 은박지, 비닐 등을 전량 수입하거나 외국기업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다만 1천갑이 들어가는 대형 종이박스만 지역 중소기업체에서 공급하는 것으로 밝혀져 존 테일러 초대 사장의 ‘철저한 한국현지화 방식’ 발언을 무색케 하고 있다. BAT코리아는 현재 연간 120억개비의 담배를 생산해 생산량의 대부분을 한국시장에 공급하고 있으며, 2006년까지 시장점유율을 20%로 확대한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