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금고털이 공모, 검·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검·경 수사 미흡 논란 증폭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경찰관을 낀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현직 경찰관과 금고털이범이 공모한 것으로 보이는 복수의 절도 사건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죄 유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년 전 검찰이 조사한 고소사건에서도 이들의 금고털이 공모 의혹이 제기됐으나 당시 수사에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의문점을 낳고 있다. 경찰 역시 지난해 7월 공범 의혹을 인지했으나 금고털이범이 전면 부인하자 수사를 종결했다. 이에 당시 검·경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이 터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여수에서 발생한 금고털이 미제사건에 이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범행수법이 비슷해 경찰이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사건만 모두 5건이다. 미제사건은 ▲2004년 우두리 새마을금고 현금지급기털이(1700만 원) ▲2005년 선원동 BB마트 철재금고털이(840만 원) ▲2005년 소호동 BB마트 금고털이(645만 원) ▲2005년 둔덕동 성심병원 금고털이(4500만 원) ▲2006년 안산동 축협 현금지급기털이(992만 원) 등이다. 경찰은 암벽등반에 상당한 실력을 갖춘 박씨가 이를 금고털이 수법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2005년 5월 발생한 순천법원 집행관실 방화사건도 김 경사의 지시로 한 것이라고 지인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범행 시간대, 방화 수법 등을 확인한 결과 박씨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의혹제기 증언 묵살
여수 금고털이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김 경사가 다른 금고털이 사건에도 공모한 의혹이 5년 전 사건에서 이미 드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2007년 5월 여수 지역 폐기물 처리업체 대표 김모씨가 회사 경리여직원 P씨의 횡령의혹을 밝혀 달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고소한 사건의 조사과정과 사건 관련 재판 서류 등에서 박씨와 김 경사의 범죄 공모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P씨가 자신을 뇌물 제공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자 P씨를 횡령 혐의로 맞고소했다. 김씨는 당시 검찰조사 과정에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금고털이범 박씨·P씨와 유착관계인 여수서 경찰관 박모 경위 등이 공모해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6월 광주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의 증인심문과정에서 김씨 측 증인으로 나온 J씨는 “박씨와 김 경사가 여수 은행 절도 사건의 공범이고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 증언내용은 당시 증인신문조서에 그대로 수록돼 있다.
또 김씨는 최초 검찰 조사에서 금고털이범 박씨가 여수 안산동 축협 현금지급기 털이 사건, 우두리 새마을금고 현금지급기털이 등 추가 범행 의혹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사건은 수사 중인 5건의 미제사건에 포함돼 있으나 검찰은 당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김 대표는 대법에서 뇌물공여, 횡령, 무고 등의 죄목으로 5년형의 실형을 확정 받고 복역, 지난해 1월 출소했다. 이에 김 대표 사건에 대한 부실조사 논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경찰도 2007년 5월경 박씨로부터 P씨와 박 경위 간 유착관계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고 박 경위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으나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에 당시 박씨 등에 대한 검·경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후 범행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수사미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과 경찰 모두 부실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증폭하는 의혹
의문점은 이 뿐 아니다. 지난해 7월 박 경위는 중학생 추락사 수사과정에서 중학생의 과외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경찰은 박 경위의 여죄를 캐기 위해 김 대표에게 박 경위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해 받아 박씨와 김 경사 간 공모 의혹 등의 내용에 대해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 역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5개월 후 김 경사와 박씨가 공모한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이 발생해 경찰 신뢰를 추락시켰다.
또 김 대표를 검찰에 맞고소했던 경리직원 P씨가 동거남의 사망보험금 절반인 1억 원을 박 경위의 차명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P씨의 동거남은 2006년 9월 여수 신항에서 익사체로 발견돼 P씨가 사망보험금 2억 원을 수령했다. 박 경위가 P씨로부터 돈을 전달받은 시점은 김 대표의 요구에 따라 공금 의혹 조사를 위해 P씨를 수사 중이었던 때라 돈거래 배경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 외에도 두 사람 사이에 십수억 원의 돈이 오간 사실도 드러나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두 사람은 부동산 투자 등을 위한 거래라고 진술했지만 P씨의 횡령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경찰관이 피조사자와 거액의 돈거래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자 경찰은 앞서 검찰에서 종결된 고소사건 재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증인신문조서 외에 금고털이범 박씨가 5년여 전 자신의 여러 범행을 실토했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검찰 직원의 경위서와 문답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다시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시간이 흐른데다 박씨와 김 경사, 박 경위는 모두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김 경사와 박씨가 공모해 은행 금고털이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인지하고도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현재 검사 3명을 포함한 별도의 수사팀을 꾸려 당시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