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이광재 연·고대 대혈투…권력지도 지각변동 예고
2005-04-19 홍성철
이른바 ‘오일게이트’와 관련한 실체적 진실은 아직 미궁에 빠져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야권은 이 사건을 ‘권력형 사건’으로 규정짓고 특검제를 추진하고 있다. 오일게이트와 관련 법조계 주변에선 벌써부터 실체없는 ‘제2의 옷로비 사건’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 사건을 정치쟁점화 시키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오일게이트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야권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게 없다”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이 개입된 단서가 포착될 경우 이 사건은 대형권력형 비리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의원의 결백이 밝혀진다 해도 현 정부 실세가 정부기관이 개입된 사기극에 놀아났다는 오명을 덮어쓸 가능성은 크다. 이 경우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다시한번 ‘도덕 불감증’이라는 유탄을 피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권이 한 목소리로 특검법안에 찬성한 이면에도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물론 야권의 특검카드 이면에는 ‘열린우리당 과반의석 저지’라는 4·30 재보선 공동 전략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여야의 4·30 재보선과 맞물린 ‘오일게이트’의 정치공세는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오일게이트’ 후폭풍은 향후 여권 내 권력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초 안희정씨의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권력을 독점해 온 이광재 의원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오일게이트’ 유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이 유탄은 자칫 이 의원뿐 아니라 연대인맥 전체의 권력내 지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인 것이다. 반면 이 이원의 화려한 행보에 가려졌던 안희정씨를 정점으로 한 고대인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활’의 날갯짓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부분은 이번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졌다는 의문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핵심 연루자의 한 사람인 권광진 코리아크루드오일 사장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잘 나가던 사업이 10월 중순 누군가에 의해 사업이 끝장났다”고 밝혔다.참여정부 출범 후 안씨는 불법 대선자금의 ‘짐’을 홀로 지고 1년간 옥살이를 하는 등 음지에서 생활한 반면 이 의원은 초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입각한 후 자신의 인맥(연대 출신)을 청와대 등 권력핵심부에 두루 포진시켰다. 또 지난해 4·15총선 때는 고향인 강원도에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실세 정치인으로 거듭났다.참여정부 출범 2년만에 극명히 갈린 두 사람의 엇갈린 명암을 잘 대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엇갈린 명암은 곧바로 연대와 고대 인맥의 부침(浮沈)과 연결됐다. 김우식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한 연대 인맥은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며 권력 이너서클을 장악한 반면 고대 인맥은 안씨의 몰락과 함께 동반 추락했다.
청와대 총무팀이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에게 제출한 ‘대통령비서실 3급이상 공무원 현황(3월말 기준)’에 따르면 연대 출신은 19명(24.6%)인 반면 고대 출신은 9명(11.6%)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역할과 비중면에서도 두 대학의 명암은 엇갈리고 있다. 연대 출신은 김우식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포스트에 자리잡고 있다. 윤태영 제1부속실장,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윤후덕 업무조정 비서관, 김만수 대변인, 문용욱 수행비서 등이 대표적인 연대 출신이다.이에 반해 고대 출신은 인원은 물론 비교적 낮은 역할에 포진해 있다. 전해철 민정비서관과 조재희 경제기획비서관이 그나마 요직이다. 고대 인맥의 중심축이었던 박정규 전 민정수석, 이병완 전 홍보수석, 정순균 전 국정홍보처장도 잇달아 낙마하고 말았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만해도 ‘나는 호랑이, 뛰는 독수리’라는 말이 나돌정도로 막강 파워를 과시했던 고대 인맥이 권력 이너서클에서 점차적으로 멀어져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고대 인맥의 핵심이었던 안희정씨의 구속에 따른 연대 인맥의 부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작금의 청와대 권력구도에 대해 안씨를 비롯한 고대 인맥들이 적잖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와관련, 고대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고대 출신들은 운동권 경험이 많아 조직과 보스를 위해 ‘올인’하다 희생당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대 출신들은 이미지 관리와 입신을 위해 눈치보기에 급급한 면이 없지 않다”며 청와대 요직을 연대 인맥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실제로 안희정씨를 비롯해 이상수·이재정 전의원, 여택수 전 수행비서 등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거나 검찰 수사를 받은 인사들 대부분이 고대 출신들이다. ‘오일게이트’를 촉발시킨 ‘철도공사 유전개발 의혹’ 사건을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연고대간 대혈투설을 부추기고 있다. 이 사건의 투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년 11월 초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정규 수석이었다.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한 연대 인맥이 청와대 요직을 독점하자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민정실이 이 사건을 오픈 시켰을 것이란 게 일각의 추정이다.하지만 ‘오일게이트’ 배경에 연고대 인맥간의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번 ‘오일게이트’를 계기로 연대와 고대 인맥간의 권력암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14일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복권론을 제기한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안 의원을 사면 대상으로 거명한 정치인 중에 안희정씨와 이상수·이재정 전 의원 등 고대 출신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정치권 주변에선 광복 60주년을 맞는 오는 8·15 사면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안씨와 이 전의원 등이 사면복권돼 정치를 재개한다면 고대 인맥은 다시 황금기를 맞이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 모두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인 만큼 보은 차원에서도 요직에 등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권 주변에선 벌써부터 이 전의원은 차기 비서실장 후보로, 안씨는 10월 재보선 출마로 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등장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분석과 소문이 현실화 될 경우 연대와 고대 인맥간의 권력투쟁은 노 대통령의 집권중후반 국정운영 및 권력구도 재편 구상과 맞물려 더욱 첨예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