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그리면 음란물이고 작게 그리면 예술인가”
2005-09-26 이석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상황에서 한 남성이 비를 맞으며 정문을 막고 서있는 것. 그것도 상의 모두 벗은 상태에서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등에 ‘대법원 만세’라는 글을 적어놓고 즉석에서 만세를 외쳤다. 간간이 “예술은 왜 음란하면 안되느냐”고 외치기도 했다. 잠시 후에는 울분에 복받쳐서인지 자신의 배위에 매직으로 이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계획인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기획한 작가 김윤환씨. 대법원이 최근 원심을 뒤집어 ‘인터넷 알몸사진은 음란물’이라고 판결을 내린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이날 발족식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김인규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씨는 <일요서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수업 일정 때문에 공대위 발족식에는 참여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생각은 공대위가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자신의 누드사진에 대해 유죄를 내린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법원이 과연 이번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성기를 얼마나 크게 그렸느냐까지 걸고 넘어졌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향후 법정 투쟁을 전개할 뜻을 명확히 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공대위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의견”이라면서 “대법원을 규탄하는 공대위 행사에 참여할 뜻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인규 교사와의 일문일답.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 예측밖의 상황이라 무척 당황스럽다. 이번 판결로 인해 또다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생각하나. ▲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작품에는 음란성이 없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대법원이 이같은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 유감스러울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법원이 과연 이 사건을 제대로 판단했는지 의문이 든다. 재판에서 성기를 얼마나 크게 그렸느냐를 걸고 넘어졌다. 크게 그리면 음란물이고 작게 그리면 예술이란 말인가.
향후 일정은. ▲ 일단 법원에 출두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김 교사와의 인터뷰가 있었던 다음날 23일 그는 대법원에 출두해 재판을 받았다). 재판을 받는 일 자체가 힘든 것 아니냐. 혼자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이번 판결로 또다시 몸과 마음이 위축되는 것 같아 더 힘들다.
최근 공대위가 발족됐다. ▲ 수업 일정 때문에 발족식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생각은 같다. 필요하다면 공대위와 행동을 같이할 뜻도 있다. 최근 충남 애니메이션 고교로 옮겼다.
어려운 점은 없나. ▲ 학생들과 부딪히는 것은 전혀 없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도 나를 이해해주는 편이다. 단, 우리 사회가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 김인규 그는 누구인가?
충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미술교사 김인규(43)씨가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84년 태안여중에서였다. 부임당시 23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대학 4학년 때 급진적인 미술운동그룹 <두렁>을 만난 것이 초기 미술교사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84년 3월부터 군 입대 전인 85년 5월까지 태안여중에서 근무하던 그는 군복무를 마친 후 86년 만리포중학교를 거쳐 88년부터 89년 8월까지 해미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전교조와 관련해 해직됐다. 네 번째 학교인 서천중학교는 그가 5년간의 해직을 마치고 복직했던 학교로 같은 학교에서 가장 긴 시간(5년)을 보냈다.
그는 이 시기가 80년대와의 괴리감과 건강악화 등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이 즈음에 그는 미술수업보다는 개인전을 두차례 치르는 등 개인작품활동에 전념했다. 1999년부터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인 2001년 6월까지 그는 6학급짜리 소규모 학교인 비인중학교, 서면중학교에서 겸임근무했다. 안면중학교는 그가 이 사건으로 정직 처분을 받는 등 한차례 격랑을 겪고 복직한 학교다. 어느때보다 힘겨웠던 시간이었지만 그는 이 시기를 미술교사로서 그 어느 때보다 미술교육을 위해 열정을 불살랐던 때라고 한다. 6개월 정도 쉬면서 공공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인규 사건 일지
2001. 5. 26 김인규 교사 긴급체포
2001. 6. 11 김인규 교사 구속영장 청구
2002. 12. 27 1심 무죄 선고
2003. 5. 2 2심 무죄선고
2005. 7. 22 대법원 일부 유죄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