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해명 ‘글쎄’…“죽는게 낫겠다 싶어 도망쳤다”
성폭행 탈주범 신출귀몰한 닷새간의 도주행각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에서 달아난 노영대(32)씨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수도권 일대에 출몰하다 탈주 닷새 만에 붙잡혔다. 노씨는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6층에 침입해 20대 자매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과 9범이다. 경찰에 따르면 노씨는 수갑에서 손을 빼내고 미용실에서 위장용 삭발을 했다. 또 도주 첫날 추위 속에 밤새 걸어서 인천 지역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허를 찌른 노씨의 탈주 행적과 탈주 동기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하다.
수갑 ‘미스터리’ 여전
노씨는 지난 20일 오후 7시40분께 일산경찰서 1층 진술녹화실에서 조사를 받고 지하 1층 강력팀 사무실로 이동하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맨발로 경찰서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경찰서를 빠져나온 노씨는 일산호수공원을 거쳐 서울외곽 순환도로로 김포대교를 건넜다. 그는 이후 도로변이나 농로 등을 따라 인천 남동구 구월동까지 약 32㎞를 밤새 맨발로 걸어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탈주 직후 경찰은 3000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일산을 둘러싸다시피 했지만 노씨는 이미 32㎞를 이동한 뒤였던 것이다. 하지만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 맨발로 수십여 ㎞ 거리를 걸어 이동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려워 경찰은 노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노씨는 도보 도주로 발에 심한 동상을 입었다”며 진물이 날 정도로 심한 동상을 입은 노씨의 양 발 사진을 공개했다.
노씨는 경찰서 담장을 넘은 뒤 오른손을 억지로 힘을 가해 수갑에서 빼내면서 엄지손가락에 2~3㎝의 찰과상이 생겼다. 하지만 골절이나 탈골 등의 부상은 입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노씨는 “왼손으로 수갑을 잡고 힘껏 잡아당겨 수갑에서 손을 뺐다”며 “이때 오른손 엄지손가락 윗부분에 상처가 났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아픈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갑을 뺄 때 너무 아파 왼손까지는 빼지 못했다. 오른쪽 수갑이 계속 걸리적거려 왼쪽 손에 오른쪽 수갑 부분을 채웠다”고 진술했다.
노씨는 이후 수갑을 풀기위해 실핀을 사서 나머지 왼쪽 수갑도 풀려고 시도했다. 모텔에서 ‘열쇠 없이 수갑 여는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자 오른쪽 수갑 고리를 왼손에 마저 채운 상태에서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하지만 상처가 크지 않은데다 노씨가 끝내 왼쪽 수갑은 열지 못한 것으로 미뤄 경찰이 도주 전 조사 당시 오른손 수갑을 처음부터 헐겁게 채웠거나 처음부터 한쪽에만 수갑을 채운게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하다. 경찰은 이에 대해 “노영대가 양 손의 수갑이 꽉 채워졌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공식입장만 되풀이할 뿐 논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허술한 경찰 수사망
노씨는 도주 다음날인 21일 오전 10시께 택시를 이용해 부천 상동으로 이동해 지인 박모(32)씨로부터 20만 원을 건네받고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한 모텔에 묵었다. 22일 오전 1시께 모텔을 나와 박씨에게 30만 원을 더 받은 뒤 부평역 근처 모텔에서 투숙했다.
이 사이 인근 대형마트에서 등산화와 체육복 1벌, 장갑 등을 마련하고 위장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도 삭발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다음날인 23일 낮 12시께 다시 안산으로 가 안모(54)씨의 오피스텔에서 지내다 지난 25일 이곳에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박씨는 1년6개월 전 알게 된 동갑 친구고, 노씨가 숨어들었던 오피스텔의 안씨는 안양교도소에 함께 복역했던 사이다.
이처럼 노씨는 도피생활 동안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을 비웃듯 택시와 모텔, PC방 등 대중에 노출된 장소를 활보했다. 당초 경찰은 노씨 도주 첫날 노씨가 맨발인데다 수중에 돈이 없어 경찰서가 있는 경기도 고양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밝혔지만 이미 노씨는 일산을 벗어난 뒤였다. 노씨가 30여㎞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검문을 당하지 않았다.
이처럼 노씨는 검문과 CCTV를 피하고 인천과 안산을 오가며 옷을 새로 사입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수배망을 피했다. 경찰은 노씨를 닷새 만에 검거하는데 성공했지만 허술했던 수사망에 대해서는 석연찮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추적을 따돌리며 노씨가 도보와 택시로 이동한 거리는 최소 100㎞ 이상이나 됐고 노씨가 수도권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동안 경찰은 번번이 허탕을 쳐 경찰은 수사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졌다. 또 애초에 안일한 대응으로 경찰 인력을 낭비하고 국민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경찰에 다시 붙잡힌 노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도소 장기복역이 두려워 차라리 도망가서 죽는게 낫겠다고 생각돼 우발적으로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그는 성폭행과 절도 등으로 10년6개월간 안양교도소 등에서 복역했다가 지난 3월 출소했다.
하지만 노씨가 밝힌 도주 이유와는 달리 도피기간동안 자살이나 자해를 기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그토록 갇히기 싫었던 감옥을 피하기 위해 전대미문의 탈주극을 감행했지만 이번에 다시 경찰에 붙잡히면서 더 오랜 기간 복역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