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동 거쳐간 박정희 여자 200명”
2005-11-01 이수향
그는 “재판에 관여한 변호인으로 법정 안팎의 소리를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며 어떤 정치적인 의도로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크게 세가지 정도. 첫째는 10·26에 대한 재조명 부분이다. 안변호사는 그간 사건이 수사기록에만 의존해 세상에 알려진 것에 문제를 제기, 사건 당사자들에 관한 공판조서와 생생한 법정진술 메모를 토대로 책을 기술했다. 또 알려지지 않은 비공개 사실을 공개하는 한편, 한 인간으로서 김재규의 성품에 주목, 김재규에 대한 새로운 평가 및 재조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둘째는 김재규가 10·26 혁명의 추가동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박 전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사항이 언급되어 있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김재규가 안변호사에게 털어놓은 박 전대통령의 여성편력 부분이다. 안 변호사는 이러한 것이 박 전대통령의 사생활을 끄집어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10·26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에 간단히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법정에서 밝힐 수 없었던 뒷 얘기들
10·26의 감춰진 진실과 김재규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김재규의 항소이유보충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 1월 28일, 계엄고등군법회 재판부에 제출된 항소이유보충서는 크게 세단락으로 나뉜다.첫째 단락에서 김재규는 10·26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혁명인 점을 강조했다. 즉 유신체제의 철폐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자유민주주의와 박 대통령을 숙명적인 관계로 보고 박 대통령을 사살하는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단락에서 그는 재산 강제헌납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김씨는 수사과정에서 모든 재산을 헌납한다는 문서에 서명날인했으나 이는 구타와 전기고문 등으로 강요당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 김씨는 10·26의 동기에 대해 보충하면서 박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사항에 대해 언급했다. 김씨는 우선 큰 영애 박근혜양의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 등 민감한 현안들을 털어놨다.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들의 원성이 대단했지만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것까지 하느냐”면서 불쾌해했고 오히려 총재에 박근혜, 명예총재에 최태민으로 개악시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지만씨의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육사에 입학한 지만군은 2년때부터 여의도 반도호텔 등지에서 육사생도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자식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못 붙이게 싸고돌았다고 한다. 자식들의 문제에 냉정하지 못한 박 전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김씨가 10·26을 단행하는데 간접적인 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안 변호사가 전해들은 김재규의 충격폭로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박 전대통령의 여자문제에 대한 부분이다. 안변호사는 김재규가 보충서에서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1980년 2월 19일 이뤄진 자신과의 접견에서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내 입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가는 것은 싫습니다. 안변호사에게만 진실을 말해주겠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어렵게 털어놓은 것은 궁정동 얘기. 그간 박 대통령의 여성 편력에 관해 김재규는 ‘남자의 벨트 아래 얘기는 하지말자’며 굳게 함구해온 상태였기에 안 변호사는 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는 대통령의 여성편력에 대한 폭로성 발언과 다름없었다.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을 거쳐 간 여성은 무려 200명 가량 된다는 것이다. 당시 웬만한 일류 연예인은 대통령에게 다 불려갔으며, 항간에 나돌던 간호장교 이야기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도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이 때문에 당시 중정 의전과장인 박선호가 무척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사실 박 전대통령의 여자문제에 대한 루머들은 그동안 수없이 나돌았다. “박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를 만들기 전에는 위장번호를 단 승용차로 밤나들이를 하곤 하였다. 당시에는 박종규만이 야행시간과 장소를 아는 ‘천기’에 속했다. 육여사는 별도의 정보망으로 야행을 감시, 꼬투리가 잡히면 박경호 실장에게 따지고 심한 부부싸움을 하곤 했다. 그러나 모두가 못 본 체 모른 체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박대통령은 스태미너가 절륜했고 상대는 두세 차례 만난 뒤 꼭 바뀌었다. 그래서 교류 여배우 숫자가 많아지고…” 10·26 당시 박선호의 법정 최후 진술… 중 일부분이다. 이 책에서도 박선호가 언급한 부분이 나와 있다. 박선호는 “궁정동이 사람 죽이는 곳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 이곳은 각하전용 연회장으로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여러 수십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각하가 평균 한 달에 열 번씩 오는데…”안변호사는 상대 여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이나 박 전 대통령의 궁정동 생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안 변호사는 “책에 적나라하게 옮기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 많다고 판단했다”며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그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박선호의 말처럼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국민의 몫”
안동일 변호사 인터뷰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안동일 변호사는 제 1회 군법무관 시험을 거쳐 국방부 법무관으로 근무했다. 1978년부터 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그는 79년 김재규의 담당 변호인을 맡아 역사적 재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후 KAL기 폭파 사건의 김현희, 대도 조세형, <야생초 편지>의 주인공 황대권 등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굵직한 사건들을 맡으며 ‘스타급’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안 변호사는 이 책이 “사건의 주요 인물들을 변론하면서 치밀하게 작성한 재판 기록과 당사자 및 주변인물들을 직접 만나 확인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물”이라며 “사건의 진상을 국민들이 판단토록 하는 과제를 던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 아주 오래전부터 ‘꼭 해야지’하고 마음먹었던 일이다. 10·26의 진실은 김재규의 변호인으로서 역사적인 법정 상황을 직접 체험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 출간에 어려움은 없었나.
▲ ‘출판하기에 적절한 때인가’라는 자문을 많이 했다. 야당의 대표가 박근혜인데다가, 아직도 유신의 잔재가 여기저기 남아있어 박정희 찬양가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또 5.6공의 부라퀴들이 이제 와서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인양 떠들어대고 있는 상황 아닌가.
- 내용 중 박 전대통령의 사생활 문제와 관련,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 박 전대통령의 숨겨진 사생활을 끄집어내거나 특정 관계자들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다. 목적은 10·26의 숨겨진 진실을 밝힘과 동시에 김재규 재평가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여자에 관한 얘기는 김재규의 부탁대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
- 박 전대통령 측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책의 모든 내용은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정확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작성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사과궤짝 2짝에 달하는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다.
- 10·26에 대한 생각은.
▲ 분명한 것은 묻혀진 진실이 많다는 사실이다. 김재규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박정희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국민이 환영하는 것은 물론 미국도 자신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재규의 ‘착각’이었지만… 그가 유신체제 붕괴를 10~20년 앞서 단절시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몫이 아니겠나.
- 김재규를 첫 접견했을 때의 느낌은.
▲ 접견전까지 그를 최고권력을 탐해 주군을 살해한 배은망덕한 패륜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유신독재체제의 주구노릇을 하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의 장이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간경변으로 얼마 살지 못할만큼 악화된 상태였던 그가 정권욕 때문에 대통령을 살해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 이번이 여덟 번째 책 출간인데 심정은.
▲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10·26 사건의 1심을 끝으로 총살당한 박홍주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두 번이나 외쳤고, 김재규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지만, 광복 60주년 경축행사에선 대한민국 국기를 휘날릴 수 없었고 ‘아~ 대한민국’도 부르지 못했음이다. 이 책을 10·26 사건 현장에서 숨진 분들과 사형당한 영혼들, 유족들에게 바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