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돌이킬 수 없는 비극’ 가해자 ‘나이 믿고 안심’
‘안전판 없는 사회’ 청소년 또래 간 성범죄 늘어간다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한국 영화 최초로 미성년 가해자들을 다룬 영화 ‘돈 크라이 마미’로 인해 ‘청소년 또래 간 성범죄’ 여론이 들끓었다. 이 영화는 성폭행과 협박, 피해자의 자살 등 극단적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줬다. 실제로도 청소년이 또 다른 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은 사례가 10년 새 11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사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해 경각심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청소년의 ‘또래 간 성범죄’ 양상은 악화일로인 셈이다.
영화 역시 사건과 비슷하게 전개된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던 ‘유림(유선)은’ 고 1이 된 외동딸 ‘은아(남보라)’가 같은 학교 남학생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유림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보호처분만 받는다. 딸은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방 밖에 나가려 하지 않고 유림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성폭행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들의 협박에 시달린 은아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이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도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범죄의 구성요건을 다 갖췄지만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는다.
10년 새 11배 늘어 나
최근 청소년 또래 간 성범죄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대응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2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소년재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690명으로 조사됐다. 10대 청소년들 간의 성범죄가 10년 새 11배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돼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간 발생한 성범죄로 처벌받은 청소년의 수는 갈수록 증가폭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소년재판에 회부돼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690명이었다. 2002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10~18세 청소년은 60명이었다. 이후 2003년 62명, 2004년 108명, 2006년 127명, 2008년 189명에서 2010년에 532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성폭렴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등을 포함한 3대 성범죄 관련 특별법 위반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지난해 1836명으로 2002년 600명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었다.
성폭력특별법 위반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지난해 1005명을 기록해 2002년 477명에 비해 2.1배로 늘었다. 성매매특별법을 위반해 보호처분 된 청소년도 141명으로 2002년 63명과 비교할 때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성범죄 증가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선정적 정보, 음란물 등에 여과없이 노출되면서 성적 자극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잘못된 성지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또 인터넷 채팅, 스마트폰 채팅 등 마음만 먹으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고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도 위해 경미한 처벌
갈수록 증가하고 잔혹화 돼가는 청소년 간 성범죄 현실과는 달리 청소년 성범죄 실태는 많이 묻히고 있는 것이 현 주소다. 청소년 성범죄는 정식재판 전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3대 성범죄 관련 특별법 위반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1836명에 달했으나 상당수가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공소권 없음’ ‘기소유예’ 등 가벼운 처벌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또 보호자 위탁 처분, 보호관찰, 수강명령 등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이처럼 가해 청소년들에게 경미한 처벌을 하는 까닭은 ‘사회적 낙인’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처벌 대신 성장기 10대들에게 자숙의 기회를 갖게 하고 기회를 줘 선도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선도 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 오히려 가해 청소년들은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보호관찰처분을 받는 성인은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인데 비해 소년범의 경우 죄질이 나쁘더라도 나이로 인해 보호관찰처분을 받는 데 그쳐 사후관리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 법률에 따라 청소년 보호처분에 대해서는 전과기록을 남길 수 없다. 때문에 해당 청소년에 대한 선도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파악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보호관찰 대상자 재범률 현황(2007~2011년) 및 청소년 보호처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11.4%로 성인(4.1%)의 세 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재범률이 2007년 4.6%에서 소폭 낮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작년 4만7323명(소년보호처분 및 형사처벌자)으로 같은 해 전체 보호관찰 대상자 9만8063명의 절반에 이른다.
한편 ‘돈 크라이 마미’의 경우 피해자의 엄마는 보호해야만 하는 법이 절대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강한 불만을 품고 이유 있는 ‘사적 복수’에 나선다.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두고 많은 논란을 낳았다. 사적 복수와 같은 맞대응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법을 개선해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와 함께 사회적 안전망과 재발방지 대책 등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성범죄에 대한 의미 있는 법률개정안이 나왔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비롯해 진술조력인제도 도입과 법률조력제도의 확대와 같이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과 성교육·성폭력교육을 강화하여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담겨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앞으로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