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1] '일요서울'이 뽑은 2012년 경제 키워드5

‘노블리스오블리제’ 그들에겐 찾아볼 수 없었다

2012-12-24     박수진 기자

[일요서울│박수진 기자]다사다난한 2012년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우리나라 산업계를 흔들만한 사건이 많아 충격에 휩싸인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일요서울]은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가장 뜨거웠던 경제 핫 이슈 키워드 5가지를 선정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이슈는 회장님들의 법원행이다. 이들은 형제들 간의 ‘쩐의 전쟁’으로 서로를 고소하는가 하면, 사이좋게 회삿돈을 횡령하다 적발돼 기소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모범을 보여야 할 부모가 횡령죄로 자식과 함께 검찰에 출두하는 등 웃지 못 할 촌극도 벌어졌다. 이밖에 저축은행 회장이 고객돈 200억 원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히기도 했다. 다소 씁쓸하면서도 유치한 올해 이슈들을 경제 키워드를 통해 되짚어 보자.

키워드1. 회장님들의 법원 나들이

삼성가의 재산 상속 분쟁은 지난 2월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삼성가의 장손 이맹희(81)씨가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 “아버지(故 이병철 회장)가 생전에 차명으로 갖고 있던 삼성생명 등 회사 주식을 동생(이건희 회장)이 단독으로 상속했다”며 이 회장을 상대로 주식을 인도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아버지가 생전에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을 그룹 임직원 명의로 차명 소유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뒤늦게 나온 갖가지 증빙 자료에 의하면 이 회장이 그것을 단독 상속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차명 주식 중 일부를 돌려달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씨의 상속 분쟁에 다른 형제들도 함께 참여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차녀인 이숙희씨와 차남인 故 이창희씨의 둘째 며느리인 최선희씨가 이씨의 편에 서면서 유산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이들의 동참으로 청구금액은 4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장녀인 이인희씨가 당시 선대회장이 모든 걸 정리했다며 이건희 회장의 편을 들면서 갈등 구조가 형성됐다.

만약 이씨의 주장대로 차명주식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확인될 경우 국내 최대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뀌는 만큼 사상 초유의 상황이 예측된다.

금호가의 ‘형제의 난’도 삼성 못지않다. 2009년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 회장의 형제 갈등 역시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작년 6월 공정위가 금호석유의 계열 제외 요청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당시 금호산업·타이어가 계열회사 지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나 박삼구 회장의 지배력을 인정했다. 이에 금호석화가 불복해 지난해 7월 서울고법에 소를 제기하자 15개월간 실질적 지배에 대한 공방이 오갔다.

금호석화는 이번 항고를 통해 박삼구 회장의 ‘사실상 지배’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끝까지 따져볼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에서 채권단이 아닌 박삼구 회장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인정될 수 있느냐는 것. 때문에 이번 소송은 사실상 박삼구·찬구 형제간 계열 분리 갈등의 최대 분수령이 되고 있다.

반대로 형제가 사이좋게 회삿돈을 횡령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그룹 수석 부회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최태원 회장에게 계열사 자금 63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의 구형을 내렸다. 최태원 회장이 2008년 선물에 투자하기 위해 SK계열사 자금 497억 원을 빼돌렸고, 2005년부터 5년여 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약 139억 원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해서도 최 회장과 공모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총 1943억 원의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들의 선고공판은 2013년 1월이다.

부자가 동시에 기소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달 15일 사기성 기업 어음을 발행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그의 두 아들이 동시에 기소된 것이다. 검찰은 재산을 지키려고 금융시장에 폭탄을 투척한 셈이라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LIG건설은 2009년부터 1894억 원 상당의 기업어음과 257억 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집중적으로 발행했다. 이에 투자자 1000여 명은 2150억 원 어치의 어음을 구입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재무상황에 이상이 없다던 회사가 갑자기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LIG건설의 기업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손실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부자뿐 아니라 함께 구속된 모자도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어머니인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 이들은 지난 2월 1400억여 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는 각각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 같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상태다. 지난 20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최규홍)는 2심 선고공판에서 1심대로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밖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 계열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징역 4년에 추징금 51억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역시 하이마트 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치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 중에 있다.

키워드2. 부실저축은행 퇴출 사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지난해 발생한 부산저축은행 공포가 채 가시기지도 전인 지난 5월,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고객 돈 200억 원을 횡령하면서 올해 시장에서는 저축은행에 대한 긴장감이 다시 감돌았다. 당시 김 회장은 횡령도 모자라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김 회장이 구속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두 달 후인 지난 7월, 한국거래소가 한국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을 상장폐지 대상에 올리면서 시장은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만큼 저축은행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

그러나 열흘 후, 대형 금융지주들이 두 저축은행의 인수 의사를 잇달아 밝히면서 시장은 안정감을 찾았다. 탈 많았던 미래저축은행 역시 일본계 회사인 J트러스트가 인수했다.

하지만 석 달 후인 지난 10월, 저축은행은 또다시 퇴출위기를 맞았다. 금감원은 형행법에 따라 BIS비율이 1% 미만이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저축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게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저축은행이 무려 12군데였다.

당시 안종식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감독국장은 “올 6월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 미만인 저축은행이 12곳”이라면서 “이 가운데 6곳은 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고 있고 3곳은 증자를 마쳐 (6월 이후) BIS 비율이 5%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때문에 현재로써는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실제 저축은행업계 총자산은 지난해 말 59조4282억 원에서 올 9월말 52조4908억 원으로 급감했다. 연체율은 같은 기간 20.3%에서 23.3%로,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1%에서 22.5%로 상승했다.

키워드3. 상생

지난해 이어 올해 역시 골목상권과의 상생은 재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재벌가의 빵집 철수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지난 2월 전북 전주에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조례가 만들어 지면서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전국적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이 확대됐으나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송파구와 강동구의 영업제한 처분이 사전 통지와 의견제출 절차를 무시해 절차상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법원은 조례가 지자체장이 의무적으로 영업 제한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점도 지자체장의 영업 제한 재량권을 명시한 상위법인 유통산업발전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대부분의 대형마트들이 휴일 영업을 다시 재개했고,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영업 제한을 위해 조례 개정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자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달 15일 유통산업발전협의회의를 통해 자율휴무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자율휴무를 실시하는 지역은 현재 지자체가 영업규제를 하고 있는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다.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계 유통업체인 코스트코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채 휴일에 영업을 강행해 논란이 일었지만 지난달 여론에 못 이긴 코스트코는 국내법을 준수해 의무휴업일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골목상권의 대표 침해로 불렸던 재벌가의 빵집 사업 진출도 잇단 철수로 눈길을 끌었다. 올해 초 호텔신라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운영 중인 커피·베이커리 전문점인 ‘아티제’를 철수했다. 이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도 베이커리 사업을 접는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역시 운영 중이던 베이커리 ‘오젠’을 중소협력업체에 넘겼고, 두산그룹도 베이커리 ‘페스티라렌테’에서 손을 뗐다. 지난 8일엔 현대백화점그룹이 자체 베이커리 브랜드인 ‘베즐리’ 사업을 접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매각한 대상이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보기 어려운 곳이어서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키워드4. 특허전쟁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뜨거웠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그동안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특허 침해 여부를 둘러싸고 글로벌 소송전을 벌였다. 양사는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호주·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세계 10여 개국에서 30여건에 걸친 전방위 소송전을 전개했다.

애플은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북부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에서 삼성이 10억50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배심원 평결을 얻어냈지만, 한국 법원은 같은 달 1심판결에서 애플이 삼성의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양측은 세계 각국 법정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한편 삼성의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애플의 아이폰5 등으로 소송 대상을 확대하고 있어 양측 간 법정 전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애플과의 특허전쟁이 해외판이라면 LG와의 특허전쟁은 국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국내 최고 라이벌로 꼽히는 LG와도 특허전쟁으로 치열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포문은 지난 9월 LG가 열었다. 갤럭시 S3의 ‘OLED'를 화면에 사용, 테두리인 베젤을 얇게 한 것과 빛으로 표시하는 유기발광 기법, 화면의 전원을 배선한 방법 등 모두 7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이에 삼성은 이달 초 맞소송을 냈다. ‘옵티머스G’의 LCD 액정을 문제로 삼았다. 화면 전극을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배치한 것과 빛 왜곡을 최소화한 기법, 패널의 회로를 단순화하는 방법 등을 이유로 특허 7건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키워드5. 3세 경영권 승계

국내 주요그룹의 3세 경영 승계로 인해 재계에서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특히 올 기업 인사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인사는 삼성그룹 오너 3세인 이재용 사장의 부회장 승진이다. 애초 경제민주화 역풍 우려로 승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예상을 깨고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얼굴로 경영 일선에서 나서게 됐다.

지금까지 이 부회장은 COO (최고고객총괄책임자)로서 CEO(최고경영자)를 보좌하고 있었다면, 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최고경영진으로서 깊고 폭넓게 삼성전자의 사업을 지휘하게 될 전망이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 임세령 씨도 그룹 경영에 참여에 시동을 걸었다. 대상그룹은 지난 3일 임세령 씨를 대상(주) 식품사업총괄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급 상무)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임 상무는 대상(주) 식품사업총괄 부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으로 식품 부문 브랜드 매니지먼트, 기획, 마케팅, 디자인 등을 총괄하게 된다.

LS그룹은 구자홍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내년 1월 1일부터 구자열 LS전선 회장에게 이양키로 하면서 그룹 주력 계열사인 LS전선 회장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구태회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자엽 LS산전 회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GS그룹 역시 주요 계열사에서 오너 일가의 승진이 이어졌다.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GS건설 허윤홍 상무보를 상무로, 사촌동생인 허연수 GS리테일 부사장은 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했다. 허용수 GS에너지 전무는 부사장으로, 5촌 조카인 허준홍 GS칼텍스 부문장은 상무로 뛰어올랐다.

soojina6026@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