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재림, 김연아의 2013년은?

2012-12-17     강휘호 기자

결점 찾을 수 없었던 복귀전, 빙판 위를 수놓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피겨여왕’ 김연아(22·고려대)의 연기는 완벽, 그 자체였다.

김연아는 지난 10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도르트문트 아이스스포르트젠트룸에서 개최된 ‘NRW 트로피 시니어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통해 129.34점을 획득, 전날 열렸던 쇼트프로그램(72.27점)과 총 합산된 점수 201.61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김연아는 한동안 자신이 자리를 비워 하향평준화 됐었던 피겨 수준을 단신의 힘만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높은 수준의 기술, 세심한 표현, 연기력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김연아의 연기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0.82점, 예술점수(PCS) 69.52점을 기록했다. 비록 감점 1점을 당하긴 했지만 2012~2013 시즌 처음으로 총점 200점을 넘었다.

앞선 시즌 최고점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22·일본)가 기록한 196.80점이었다.

사실상 이번 대회는 소규모 대회로 경쟁 자체가 무의미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조건인 최소 기술점수(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28점, 프리스케이팅 48점)를 만족시키기 위해 출전한 대회였다.

하지만 김연아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여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대회 2위 제니아 마카로바(러시아․159.01점)와의 격차는 42.6점이나 났다.

이로써 경기를 마친 김연아는 키스&크라이 존에서 보여준 환한 웃음과 함께 다시 한 번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했다.

감점 ‘1점’을 대하는 여왕의 태도

김연아는 대회를 모두 마친 후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김연아는 “오랜만의 무대를 무리 없이 잘 마쳤고, 최소 기술점수를 넘기겠다는 목표를 이뤄서 좋았다”며 “오래 쉬었던 만큼 실전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잘해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랜만에 부담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탔다. 훈련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실전에서도 무리 없이 잘해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기에 있어 완벽만을 추구하는 김연아는 시즌 최고 점수를 받은 무대에서도 자신의 실수를 지적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점프도중 실수한 것에 대해 김연아는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로 체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면서 “첫 점프 실수 때는 균형이 흔들렸고, 두 번째는 방심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스핀의 회전 수 부족과 관련해서도 “레벨 4를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실전에서 수행을 잘하지 못했다”며 “변경된 스핀 규정에 신경 쓰면서 실전에서 완벽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작은 부분도 점검 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연아는 플라잉 카멜 스핀을 통해 레벨3를 받았다. 레이백 스핀,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도 모두 레벨3에 머물렀다.

이에 신혜숙 코치 역시 “카멜에서는 엣지 사용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체인지 풋에서도 발을 바꾸는 과정에서 축이 흔들리면서 점프가 인정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앞으로 기술을 더욱 보완할 것임을 암시했다.

2013년, 김연아의 목표와 일정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최종 목표로 설정해놓은 김연아의 본격적인 첫 무대는 내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가 될 전망이다.

이 ‘2013 세계선수권대회’ 에 출전하기 위해서 김연아는 먼저 2013년 1월 개최되는 ‘전국남녀피겨종합선수권대회’ 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면 한국에 배당된 1장의 세계선수권대회 진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김연아는 자신의 실력과 상당한 격차가 있는 국내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무난하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확보할 전망이다.

이후 김연아의 목표는 올림픽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세계선수권대회는 24위 안에 오른 선수의 국가에 1장, 10위 이내 성적을 낸 선수 국가에 2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한다. 우승 또는 준우승 시에는 3장까지 확보가 가능하다.

올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우승자들이 170~190점대 사이의 점수를 기록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김연아의 세계선수권 상위 입상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연아는 11일 오후 인천 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2010 밴쿠버 올림픽 때는 티켓(출전권)을 두 장 따서 (곽)민정이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며 “다음 목표는 올림픽 티켓을 두 장 이상 확보해 후배와 함께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선수에 신경 쓰기보다 내 자신에게 집중 하겠다"고 덧붙였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삼고 있는 그가 말한 목표를 통해 마지막까지 한국 피겨계를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왕’ 김연아, ‘적수’ 있을까?

사실상 20개월이 넘는 공백에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선보인 김연아가 훈련을 더 거친 뒤 나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겁을 낼 정도의 ‘호적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많은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만큼 세계적 실력의 선수들마저 간과할 수는 없다. 일단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까지 김연아와 ‘라이벌’구도를 형성했던 아사다 마오(22·일본)가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가 마지막 ‘진검 승부’를 펼친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김연아가 완승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아사다는 김연아와 달리 시즌을 쉬지 않았고 서서히 기량을 회복 중이라는 점에서 한번 정도는 눈길을 줄만하다.

이 외에는 올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애슐리 와그너(21·미국)도 경계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와그너는 그랑프리 1차, 5차 대회에서 우승했고, 파이널에서는 준우승 차지했다.

키이라 코르피(24·핀란드), 스즈키 아키코(27·일본)도 올 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한창 성장 중인 러시아의 유망주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16)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4·이상 러시아)가 있다.

그러나 모두 ‘경계’의 수준이지 겁을 낼만한 경기력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아사다가 출전한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과 김연아가 출전한 NRW 트로피 대회 기간이 겹쳐 간접 비교가 가능했다.

두 대회에서 김연아는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아사다보다 점수가 높았다. 다만 신경 쓸 부분은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차례 점프 실수를 한 탓에 129.34점을 받은 반면 아사다의 프리스케이팅 점수(129.84점)가 조금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연아가 스스로의 실수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전제조건만 붙는다면 현 피겨계에서 김연아를 위협할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목표를 모두 달성한 후 오랜 시간을 기로에 서있었던 김연아는 지난 7월, 선수로서의 새 출발을 알린 바 있다.

이어 그가 선택한 무대는 주니어 시절 이후 출전해본 적 없었던 소규모 대회, 독일 도르트문트 ‘NRW트로피’가 됐다. 김연아가 직접 선택한 피겨 인생 ‘제2막’의 출발점이었다.

대회에서 김연아는 열악한 환경 속에도 희망과 목표를 좇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의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의욕은 앞으로의 성적을 떠나 또 어떤 감동을 선물할지 기대를 모았다.

때문에 2013년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수많은 무대에서 김연아가 보여줄 연기는 단순한 점수로 평가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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