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외인이 무슨…”VS “남성 독식은 불법”
2006-03-28 이범희
“죽어서도 문중 지켜야”
용인(龍仁) 이(李)씨 사맹공(司猛公)파 종중측은 “시집 간 딸들은 시집을 간 집에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친정에서 권리를 찾으려면 사회적 모순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용인 이씨 사맹공파는 종중재산을 처분한 돈을 남자 중심으로 분배했다는 이유로 출가한 딸들로부터 제소된 문중이다. 종중측은 “이번에 처분한 재산은 친정의 재산이 아닌 몇백년 가꿔온 문중의 재산인데, 남자들과 같이 배분해달라는 요구는 부당하다”고 말한다. 시집을 가면 시댁 일에 바뻐 문중 일을 등한시하는 출가외인들이 문중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남자들만을 종친회 회원으로 인정해온 사회적 관례가 중요하다”며 관례를 깨고 출가한 딸들도 종친회 회원임을 인정하면 이미 돌아가신 고모나 대고모들의 후손도 돈 달라고 아우성일 것. 실제로 얼마전 돌아가신 고모 한 분의 후손이 나타나 ‘우리 어머니도 용인 이씨 사맹공파 후손이다.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어머니도 돈을 받았을 것’이라며 돈을 달라고 나선 사례도 있다고 한다. 줄 수도 있었던 문제지만 거기서 끝이 난다고 볼 수 없어 못 준 것이 문제로 나타나기도 했다.종중측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 때부터 출가한 딸들의 자손들도 문중재산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한 번의 판단으로 수백 년 내려온 사회적 관례가 뒤집어지는 게 사회적 모순이지 않냐”고 반박했다.
종중측 “돈 놔눠준 것이 화근”
문중측은 “출가한 딸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말 것을…”이라며 말을 흐렸다. 문중 임야가 아파트부지로 팔린 곳은 용인에만 15곳이다. 그 중 출가한 딸들에게 돈을 준 곳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 뿐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주자, 말자’등의 의견이 많았지만, “결혼했어도 용인 이씨”라는 주장이 많이 나와 나눠준 것. 다른 문중처럼 호주에게 돈을 주고 호주의 뜻에 따라 딸들에게 주든지 말든지 하는 형식을 취했으면 종친회가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종중도 있다. 종중측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만약 이번 재산이 친정의 상속재산이라면 오빠나 삼촌들에게 나눠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처분한 재산은 문중의 재산이다. 문중의 재산은 그 문중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집간 딸들에게 이 재산을 나눠주는 게 우리문중을 위해 도움이 되겠는가. 예를 들어 타지로 시집간 딸들이 있다고 하자. 그 딸이 받은 돈은 결국 타지에서 사용될 것 아닌가. 그럼에도 딸들에게 분배한 것은 배려한 것이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며느리들에게 돈을 더 준 것은 우리 집안으로 시집와 우리 식구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봐야한다.
“똑같이 물려줘라” 집단반발
용인 이씨 사맹공파 문중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지난 해 4월 종친회가 문중임야 3만여 평을 모 건설업체에 아파트부지로 매각했다. 그 후 대금을 남자 중심으로 나눈 것이 화근이 됐다. 종친회는 매각대금 300억 원 중 일부는 문중위토를 다시 사는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후손들에게 나눠줬다. 20세 이상 남자에게는 1억5,000만원, 10세 이상 19세까지 남자에게는 5,000만원, 시집간 딸들에게는 2,000만원, 10세 이상 미혼여성에게는 3,000만원, 1세 이상 9세까지는 남녀구별 없이 1,500만원씩이었다. 또 얼마 후에는 문중으로 시집온 사람들(며느리)에게도 3,000만원씩 나눠줬다. 매각대금을 이렇게 나누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출가한 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발하고 나선 딸들의 대표는 이원재씨(李源在·59)로 재산분배를 결정했을 당시 종친회장의 동생이다. 이씨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딸들이 오빠나 남동생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자 중심으로 재산을 분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종친회와 협상이 결렬되자 4월초 수원지법에 종친회를 상대로 ‘종회회원 자격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 ‘회원은 20세 이상 성인에 한한다’는 종친회 규약에 따라 시집간 여성도 회원임이 당연하다. 종친회가 20세 이상 남자들을 회원으로 인정해 1억5,000만원씩 분배한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그 정도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1라운드는 딸들 ‘완승’
‘딸들의 반란’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당시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47년만에 뒤집고 ‘딸들의 반란’을 일으킨 여성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세 이상 성인 여성에게도 종중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용인 이씨 사맹공파,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기혼 여성 8명이 각각 자신의 종회를 상대로 낸 종원확인 청구소송에서 전원일치로 원고패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인 남성으로 제한한 종래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환경과 국민 의식의 변화로 그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으며, 개인 존엄과 양성 평등을 기초로 한 전체 법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동 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한 종중의 본질에 비춰 공동 선조의 성과 본이 같으면 성별과 무관하게 종원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이날 선고 이전에 있었던 종중의 재산분배, 대표자 선출 등 각종 법률행위는 그대로 인정된다고 밝혔다.이날 대법관 13명 중 7명은 여성이 성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종원이 된다는 의견을, 최종영 대법원장 등 6명은 종원이 되고자 하는 여성에게만 자격을 부여하자는 별개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