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히 접근해 ‘애무’ 기습 키스도 ‘다반사’
2006-04-04 정은혜
하지만 남성 간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특별한 처벌규정이 없어 이 ‘엽기적 행위’를 막을 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기업체 부장인 김모(44)씨는 며칠 전 퇴근 후 찜질방에 갔다가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김씨가 수면실에서 잠든 사이 어떤 술에 취한 한 남성이 그에게 접근, 그의 가슴과 성기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날 하루 종일 문제의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려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평소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는 초등학교 5학년인 정모(12)군. 정군은 목욕탕에서 한 아저씨가 때를 밀어주겠다며 접근해 성추행을 당했다. 낯선 남자는 정군을 때밀이 침대에 눕힌 뒤 잠시 잠든 틈을 타 정군의 온몸을 더듬었다.
낯선 아저씨의 갑작스런 행동에 잠에서 깨어난 정군은 소리를 질렀고 이 가운데 목욕탕 직원의 신고에 의해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너무 무섭고 아팠던 순간은 금방 지나갔지만 그러나 정군은 아직 당시 치욕스런 고통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이라고 하면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괴롭힘을 가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남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괴롭혀 충격을 받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우발적 사건이 대부분
그렇다면 남성끼리의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박용천 교수에 따르면 그들은 ‘동성애자’, ‘성적 욕구불만이 많은 사람’ 등 크게 두 부류로 구별된다. 박 교수는 “직위나 계급이 높은 사람이 힘의 우위를 악용해 성추행하는 경우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크고, 또래나 같은 계급 사이의 성추행은 단순한 성적 욕구불만의 발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최근에는 일반 남성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우발적인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성추행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세인들의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주장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3월 2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보석사우나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 조사 시 가해자는 동성애 사실을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갑자기 성욕을 느껴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갸름하고 왜소한 사람이 ‘먹잇감’
피해자는 집단에서 가장 ‘약자’인 경우가 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리고 키가 작고 신체가 왜소한 이가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최근 ‘왕의 남자’ 신드롬에 휩쓸려 예쁜 남자, 소위 말하는 ‘꽃미남’들이 성추행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모(26)씨는 얼마 전 대학후배인 황모(21)씨와 대중사우나에 갔다가 후배가 자고 있는 사이 바지를 들춰보며 입에 뽀뽀까지 하고 있는 한 50대 남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상황’.노씨에 따르면 황씨는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생겼다. 피부도 하얗고 턱선도 갸름해 웬만한 여자보다 예쁘다는 것.
당시 범인은 “황씨가 너무 예쁘게 생겨 남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며 “기습 뽀뽀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라며 말꼬리를 흐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행위들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서적으로 유약한 초등학생들도 너무 쉽게 엽기적인 상황에 노출되고 그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박모(40)씨는 얼마 전 아들 지용(9)군과 찜질방에 갔다가 아들이 다 벗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찜질방 내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 박씨가 지용군을 붙잡고 공중장소에서 왜 옷을 다 벗었냐고 묻자 그는 “나는 죄가 없어서 안 부끄러워”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고 한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지용군이 찜질방 내부를 누비며 돌아다니던 중 ‘나는 목사’라며 한 50대 남성이 그에게 접근했다. 마침 지용군도 크리스천이었다. 독실하진 않았지만 “주의 종인 목사의 말을 안 듣거나 주의 종에게 해코지를 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는 협박성 멘트는 지용군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 파렴치한 목사는 더 나아가 “영적인 사람은 벌거벗고 있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유도하며 그의 성기를 만지고 뽀뽀까지 하는 등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을 이용하는 충격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전문가 “성적 욕구불만자들”
이처럼 남성 간 성추행의 특징은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성적인 암시를 하며 성추행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찜질방, 대중탕 등은 이들에게 더없이 ‘목좋은’ 장소인 셈. 실제로 최근 동성 성추행은 군대나 교도소 등 특수한 조직에서뿐 아니라 찜질방 등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 간 성추행에 대한 법적 규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빠른 시일 내 동성 성추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법률적 뒷받침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또 “이들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와 다른 점은 가해자들이 남자 피해자에게 대개 의도된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는 위험을 느끼면서도 저항을 하지 않아 부지불식간에 당하게 된다. 이런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당당히 거부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