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으로 만나 오누이처럼 지내다 ‘성폭행’… 추락사 ‘불행’

2006-07-05     정은혜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30분경. 전남 목포시 상동에 위치한 한 모텔 주인(55)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장대비로 누수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건물 주변 곳곳을 둘러보았다. 굵은 빗줄기와 안개로 가려진 골목길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인은 건물과 건물 사이 땅바닥에 한 여성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 여성을 확인한 주인은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머리가 크게 함몰된 데다 상의와 속옷 일부가 벗겨진 채 숨져 있었기 때문. 게다가 이 변사체는 홀몸이 아닌 만삭의 몸으로 싸늘히 식어있어 더욱 충격을 주었다. 도대체 이 여성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왜 만삭의 몸으로 추락해 사망한 것일까. 사건을 담당한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이 임산부의 ‘비참한’ 사망사건 전말은 이렇다.




경찰 조사결과 시신의 주인공은 임신 9개월째인 20대 임산부 A(25)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전에 숨진 것으로 보이는 A씨는 추락으로 인한 사망으로 판명됐으며, 발견 당시 누군가에 의해 심한 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눈을 비롯한 온몸 구석구석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던 것. 성폭행 여부 또한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이 염두에 둔 용의자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정모(22)씨. 정씨는 사건 당일을 포함, A씨와 세 번째 만남이었으며 A씨가 추락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장본인이다. 경찰은 “정씨는 사망한 A씨와 오후 4시께 만나 낮술을 먹고 모텔에 가 또 한 차례 술을 먹은 뒤 성폭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며 “온갖 폭행과 수모를 겪은 A씨는 이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세 번의 만남 가져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작년 9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원인 정씨는 평소 심심할 때마다 즐겨 찾던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다. 몇몇 사람들과 채팅을 하던 중 그는 유난히 대화가 잘 통하는 A씨와 급속히 친해져 일대일 대화를 나누게 됐다. A씨는 재미있고 유쾌한 주제들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갔고 정씨는 그런 A씨에게 푹 빠졌다. 약 1주일간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두 사람은 급기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처음 만나 어색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모든 것이 잘 통했던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연인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지난 1월까지 단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세 번째 만남이 문제였다. 지난 6월 23일, 여느 때보다 일찍 만난 이들은 낮부터 술을 마신 뒤 밤 11시께 모텔로 직행했다. A씨는 늦은 밤 남녀가 모텔에 가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술에 취한 정씨를 감당하기 힘들뿐 아니라, 자신의 몸도 힘든 터라 ‘모텔에서 쉬었다 가자’는 정씨의 의견을 순순히 따랐다.

이를 두고 경찰은 A씨가 모텔에 따라 들어온 것은 정씨를 그저 ‘편한 남동생’으로만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나를 잘 챙겨주는 A씨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A씨는 나를 동생으로만 생각했다”며 “그래서 술에 취해 모텔에 가자고 하는 나의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A씨가 정씨와 모텔에 간 것은 ‘술 취한 동생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만취 후 야수로 돌변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었다. 만취 상태인 정씨가 결국 이성을 잃고 A씨를 덮쳤던 것. A씨는 자신의 몸을 거칠게 만지는 정씨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과정에서 심한 폭언도 오갔다. 이후 이어지는 정씨의 폭행은 가히 막무가내였다. 그는 A씨의 얼굴, 배 등 온몸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심지어 속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했는가 하면 온갖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A씨가 안정을 취하고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할 만삭의 임산부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부검결과 A씨는 눈이 멍들고 많은 양의 코피를 흘렸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게다가 복부에도 시퍼런 멍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 부위에 대고 일부러 심한 가격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참담한 수모를 당한 A씨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화장실로 도피, 창문에서 뛰어내렸던 것. 5층 높이에서, 게다가 홀몸이 아닌 상태에서 A씨가 추락까지 감행했다는 것은 당시 A씨가 당한 수모와 경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 “엄중처벌할 것”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조사에서 “단순한 말다툼을 벌이다 A씨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면서 자신이 사망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또 “성폭행을 하려고 위협만 했을 뿐 미수에 그쳤다”며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씨가 숨진 것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점, 말다툼이든 성폭행이든 간에 그로 하여금 A씨가 자살했다는 점 등으로 보아 정씨가 직접 살인은 하지 않았더라도 살인을 부른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정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지난달 27일 구속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영표 경장은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성폭행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발견 당시 A씨의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인 데다가 최선의 해결책으로 추락을 감행한 것으로 보아 상황은 상당히 급박하고 처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게다가 단순 성추행 정도로 자살까지 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보여진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강간치상 혐의로 정씨를 구속했지만 만약 부검 결과 성폭행 여부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는 보다 엄중한 처벌에 처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