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장자로서 아버지 챙기기
현대차, ‘아산정주영닷컴’ 새 단장
현대차, 현대건설 인후로 정통성 확보 자신감 찾아
[일요서울|강길홍 기자]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이 최근 그룹의 창업주인 아산 故 정주영 명예회장을 기리는 사이버 기념관 ‘아산정주영닷컴’을 새 단장하고 일반에 선보였다. 현대그룹 경영권을 동생에게 넘겨줘야 했던 정몽구 회장은 그동안 ‘적통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동안 아산을 기리는 특별한 행사를 주관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번 사이버 기념관 오픈과 관련해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장자로서의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아산이 일으킨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으로 핵분열 됐다. 19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이 시작됐다. 석달여에 걸쳐 전개됐던 이들의 분쟁은 그룹의 후계자로 고 정몽헌 회장을 지목하는 아산의 육성이 공개되면서 끝이났다. 정 회장은 자동차 계열사만 물려받아 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후 정 회장은 현대차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세계 5위권의 자동차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정 회장은 현대그룹의 정통성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한발짝 물러서 있었다. “집안의 승계는 몽구가, 기업의 승계는 몽헌이 하라”는 아산의 유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괜히 그룹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나섰다가 선친의 유지를 위배하고 집안의 분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선영 관리 이외에는 아산과 관련해 특별한 기념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아산 생전에 개설된 사이트인 ‘아산뮤지엄닷컴’을 관리하기는 했지만 2001년 이후 단 한 번도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아 부실관리라는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현대그룹은 그룹의 정통성을 강조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03년 남편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이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후에도 아산과 고 정몽헌 회장의 사진을 기업광고로 내보내기도 한다. 범현대가와 잦은 분쟁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를 겪으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현대그룹의 전통성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도 내비친다. 특히 아산의 유지가 깃든 대북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도 아산에 대한 별다른 사업이 없다. 그룹 사정상 기념사업을 진행할 만한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통성 잇는 현대그룹 내홍
현대차와 현대그룹이 각각의 사정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인 아산에 대한 자료와 업적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형들 대신 동생인 정몽준(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새누리당 의원이 나서야 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아산을 기념하는 활동에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기념관을 건립하고 아산 추모 행사를 서울과 울산 등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또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아산나눔재단(명예이사장 정몽준) 등의 각종 재단 운영을 비롯해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아산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5일 현대차가 아산정주영닷컴을 오픈하자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이 본격적으로 장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10년 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한 것도 정 회장이 그룹의 정통성을 회복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현정은 회장과 관련해 최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현대차에 시선이 쏠리게 만들고 있다. 현대증권 노조는 현대그룹에 현정은 회장 이외의 ‘사실상의 지배자’가 따로 있다고 폭로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의 기업이미지와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아산정주영닷컴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재벌총수의 업적을 강조하는 것이 대선정국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창업주의 공적을 강조해서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 측은 “창업주의 업적의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한편 아산정주영닷컴은 아산의 창조적 기업가정신과 도전적인 일생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세계적 기업가로서의 모험과 성취, 인간적인 면모 등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사이트는 아산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스토리텔링 무비 형식으로 재구성한 ‘아산 정주영이 말한다’,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회고담을 소개하는 ‘아산 정주영을 말한다’, 생전 모습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아산기념관’으로 구성됐다.
특히 ‘아산 정주영이 말한다’는 도전·창의·희망을 주제로 아산이 현 세대에게 직접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의 스토리텔링 무비로 제작됐다. ▲현대의 탄생과 자동차 산업 ▲해외 건설시장 개척 ▲대를 이은 제철의 꿈 ▲서산간척지와 국토 확장 ▲중공업 입국 ▲국토 대동맥 건설 ▲올림픽 유치와 소떼 방북 ▲공익 활동 ▲희망의 생활철학 등 고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사진·영상·육성·어록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산기념관’에서는 아산의 생전 모습을 기록한 200여장의 다양한 사진을 비롯해 약식 전기, 연보, 어록, 자서전 및 연설문집, 강연 및 대담 영상 등을 제공한다.
아산정주영닷컴은 태플릿PC와 스마트폰 등 모바일 환경에서도 이용할 수 있으며, 이메일과 SNS로 아산의 명언과 스토리텔링 무비를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 기능도 갖췄다. 또 연말에는 영문 사이트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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