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인 출신 정치가를 비난하는 이유

2012-12-03     강휘호 기자

2012년형 3S … 영화(screen), 섹스(sex), 그리고 스포츠(sports)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는 전두환 前 대통령의 시구로 한국프로야구의 역사가 시작됐다. 체육계의 입장에서는 기념비적인 날이지만, 이는 결국 군사정권이었던 당시의 정치문제와 사회문제를 국민들에게 감추려 했던 ‘3S 정책’의 일환이었다.

식민지정책으로 알려진 ‘3S 정책’은 영화(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이 정책은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3S로 유도했고 지배자가 대중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지난 과거를 살펴보면 스포츠가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자주 이용됐다. 프로축구, 프로씨름의 태동기가 그랬고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이 당시 정치적 과오를 덮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와 관련해 주인석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시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라며 “대부분의 독재정권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점점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지자 이전 정부가 보였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3S 정책’ 이 펼쳐졌다.

주인석 교수는 “예전과 달리 현 시대에는 홍보대사급의 스포츠 인사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스포츠로 하여금 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이라는 네임밸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삐딱하게만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겠지만 이명박 정권뿐만이 아니라 모든 정권에서 스포츠외교라는 부분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주 교수의 의견처럼 우리나라 월드컵, 올림픽 등의 개최와 성적은 정부의 업적으로 돌아갔고 스포츠계의 한․일전 승리는 대한민국의 우월함을 입증시키는 방법이 됐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남 북의 스포츠 교류마저 정치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과거에는 스포츠가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이용됐다면 현재는 국민들의 관심을 자신들을 향해 ‘몰리게’ 하는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정치사적 우울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스포츠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당연시되는 사회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체육인들이 끊임없이 정치계에 진출을 시도하면서 “체육인들 스스로 스포츠가 정치계에 이용되게끔 만들어 주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배구선수 출신인 임수원 경북대 교수는 “나는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면서도 “아무래도 대중성이 있으니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체육인을 정계로 끌어들이는 정치인들과 정계로 진출하려는 체육인들은 각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이지 않는 체육인의 정치 참여 … 쏟아지는 비난들

문대성(前 태권도국가대표)이 지난 4월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정계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문 위원은 이 과정 중 일어난 논란에 대해서 “논문 표절이 아니다”라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다 보면 인용표기를 하지 못하는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 의원의 변명 역시 선거 기간 내내 그가 주장했던 ‘스포츠 정신은 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도 포함된다’는 주장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일었던 바 있다. 더불어 지난 10월에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주요 관계자들과 친박계 의원, 그리고 문 의원이 가졌던 골프회동이 문제로 붉어지기도 했다. 

비록 이 같은 논란이 문 의원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체육인 출신’ 정치가에게 국민들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이 일으킨 논란에 비해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생활정치’, ‘낡은 정치의 타파’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 의원에 이어 최근에도 정치적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스포츠 스타’가 있었다.

바로 김재범 선수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지난 9월 28일 대구 수성구 새누리당 경북도당에서 열린 ‘대통령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강석호 의원 등 3명과 함께 경북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사흘 만인 10월 1일 “국가대표 선수로서 정치가 아닌 운동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이번 달 열리는 전국체전 준비에 집중 하겠다”며 “스스로 생각이 짧았다”고 밝히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후보 캠프를 떠났다.

유도선수 김재범의 정치적 활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한 상황에서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것이 자칫 선거 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더불어 “선거 운동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왜 캠프에 들어가야 했나”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체육인이 정계에 발을 담그는 일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1월 이종격투기선수 최홍만이 갑작스럽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입당했다.

최 선수는 이날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소 박근혜 후보를 좋아했고 국민 행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며 “믿음을 갖고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는 새누리당만이 아닌 민주당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1991년, 정치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할 당시 한국 프로야구의 신화였던 故 최동원 전 프로야구 선수는 민주당으로부터 광역의원 후보로 추천을 받은 바 있다.

이들 모두 뜻이나 모양새는 좋았다고 평가됐지만 체육계에서는 “체육인이 정치계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아무 의미가 없는 활동이다”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들을 비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뚜렷한 정치적 소신도 없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관련된 정치 활동’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이 정계에 진출한 체육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 정치 관계자도 체육인들의 정계 진출에 관해서 “잘 알려진 인물들인 만큼 홍보의 목적이 강하다”라며 “특별한 정치적 목적으로 스포츠스타를 끌어들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된 사실 외에도 현 대선 주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을 방문하는 모습이나 손연재 선수같은 스포츠스타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행동, 그리고 이것을 일부러 공공연하게 지적하는 행동들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또한 이런 비난을 잠재워 줄 수 있는 뚜렷한 스포츠 정책이나 비전을 보여준 체육계 출신 정치가도 거의 전무하다.

때문에 “한국 스포츠를 독립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킬 인재가 없다”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체육인 출신 정치가들이 ‘홍보용’이 되려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대중의 눈과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더 깊은 문제는 체육단체장 자리를 정치인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선교 KBL프로농구연맹 총재와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새누리당 출신이거나 현 새누리당 소속이다.

비단 여권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정권교체와 함께 ‘체육계 인사 대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변화가 줄을 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 명예회장이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1000여 명이 넘는 체육계 지도자가 정동영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한 바도 있다.

이 같은 인물들은 정치적 세력을 기반으로 체육단체장에 오른 후 ‘체육인’으로 거듭난다. 이에 체육단체들은 정치인을 영입하고 예산 지원이나 스폰서 확보 등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입장이다.

결국 체육계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체육단체들이 정치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국내 체육 정책이나 행정이 체육인의 손을 떠났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 터무니없지 않은 이유다.

정치 경력이 체육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전혀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할 정치와 스포츠가 현실에서는 수단과 목표 사이를 오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권력에 빌붙어 체육인의 긍지를 잊어 버렸다”며 “모양새만 바뀐 것일 뿐, 여전히 스포츠계는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많은 체육인들은 “체육인들이 정계로 진출했을 때 분명한 목적의식과 정책을 보여줘야 한다”며 “스포츠는 비단 프로의 영역만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문화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계도 체육인을 정계로 영입하는 데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직 정계에서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은 바가 없다. 반면 현 대선후보 중 단 한 명도 ‘문화와 스포츠’를 역행하는 공약을 내세우는 주자도 없다.

때문에 정치계에서 체육인들을 맹목적인 홍보에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스포츠가 ‘3S 정책의 연장선’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됐다. 더불어 체육인들이 이와 같은 모양새로 정치계에 입문하고 이득을 보려는 것 역시 스스로 ‘식민지 정책’ 속에 뛰어드는 모습이라는 비판을 일으키고 있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