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돈 쏟아부으며 북창동 거리 활보했다

2006-11-09     정은혜 
‘탈주범 이낙성’ 도피생활 비하인드 스토리


청송감호소 탈주범 이낙성(42)씨가 지난 10월 31일 드디어 검거됐다. 탈주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제2의 신창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아 온 이씨는 서울 성수동 영동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신원 확인 과정에서 병원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도피기간 내내 수도권 일대를 전전하며 중국집 주방보조로 일하며 숨어 지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씨가 착실하게 일하며 숨어 지내온 부분에 있어서 연민과 동정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요서울> 취재 결과, 세간에 알려진 이씨의 도주생활은 사실과 큰 차이를 보였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긴 했지만, 그 목적이 여흥과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였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 게다가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수금한 돈을 가로채고 무단결근을 하는가 하면, 배달용 오토바이를 개인 교통수단으로 이용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실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이씨의 탈주 스토리를 현장에서 직접 추적했다.


청송보호감호소에 수감 중이던 이낙성은 지난해 4월 6일 치질수술을 받기 위해 경북 안동의 S병원에 입원했다. 이날 새벽 담당 교도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병원을 탈출, 서울로 도주한 것. 당시 교도관의 잠바와 환자용 바지 차림으로 탈출한 이씨는 감방동기 엄모(39)씨의 도움을 받아 은둔생활을 했다. 19개월에 걸친 도피행각의 시작이다.

자수 아닌 자수로 ‘덜미’
체포 당시 이씨는 경찰의 지시에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새벽 혼자 소주 6병을 마셨다. 숙소인 성수동 여관으로 돌아가다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부상을 입자, 서울 성수동 영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관계자는 “도착 당시 이씨는 앞니 4~5개가 부러졌고, 아랫입술 밑이 6cm가량 가로로 찢어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병원 관계자가 인적사항을 묻자, 이씨는 ‘장상철’이라는 가명을 댔다. 주민등록번호는 “머리를 다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감호소에서 갓 출소해 생각이 안 난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결국에는 “내가 이낙성이다. 경찰에 말하면 나를 알거다”라고 말해 스스로 신원을 밝혔다. 병원 측은 이 사실을 곧바로 경찰에 알렸고, 이씨는 인근에서 순찰 중인 경찰에 검거됐다.

중국집서 ‘싸완’, ‘라면’ 별칭
이씨는 수도권 일대 중국음식점과 여인숙을 옮겨 다니며 생활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탈주 직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 북창동 인력소개업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이씨는 경기 구리시에 있는 한 중국집을 소개받은 뒤 주방 일을 하며 3개월 간 일했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신분이 탄로날 것을 우려한 그는 서울 서대문구 일대로 무대를 옮겼다.
대현동에 있는 H중국집. 이곳에서 이씨는 주방 일을 했다. 주인 오모(여·44)씨는 ‘프라이팬도 잘 돌리고 일도 잘했던 종업원’이라고 했다. 그는 종업원 중에서도 특히 배달 종업원과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 종업원이 수금관리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후 이씨는 수금한 돈을 갖고 달아나려다 적발되는가 하면, 새벽에 몰래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 걸려 2개월 만에 해고됐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D중국집에서는 ‘장상철’이라는 가명을 대고 올해 6~7월 두 달간 일했다. 이씨는 “고향이 전라도고, 젊을 때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다녀왔다”고 소개, 주방에서 면 뽑는 일을 맡았다.
이곳에서 이씨는 이름 대신 ‘싸완’과 ‘라면’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싸완’은 설거지 및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라면’은 면을 뽑고, 사리를 말고, 주방장 일을 보조하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로, 중식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 하루 13시간씩 일하며 월급 190만원을 받았다. 주인 전모(남·49)씨는 “이씨는 면 뽑는 재주가 뛰어났으며, 얼굴도 평범하고 성격도 모나지 않아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주방일은 돈을 다루지 않아 특별히 주민등록증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창동 룸살롱 ‘단골 손님’
이씨는 돈이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 북창동 일대 룸살롱을 찾곤 했다. 돈이 없으면 월급 일부를 가불받아 룸살롱에서 하루 만에 ‘탕진’하기도 했다.
전씨는 “이씨가 돈을 벌어도 마땅히 다른 곳에 쓸 데도 없고, 또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실제로 이 건물 지하 노래방에도 자주 가고, 도우미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전했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씨는 “이씨는 숙식을 모두 나와 함께 했다”며 “일과 후 가끔 술을 마시고 도우미들과 놀긴 했으나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닌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하지만 이씨의 술버릇은 좋지 않았다”며 “술을 절제하지 않아 필름이 끊기기 일쑤고, 다음날 힘들다고 무단결근해서 중국집 영업에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돈이 바닥나면 다시 북창동 인력시장을 찾았다. 그는 서울시청, 신촌 등지의 음식점에서 일당 3만원을 받으며 일하기도 했으며, 일자리가 없을 경우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인상’ 덕분에 장기도피 가능
이씨는 세인들의 눈을 피해 음식점 인근에 위치한 여관이나 여인숙을 전전하며 기거해왔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현재까지 조사결과, 추가범죄나 내연녀, 도주 조력자 여부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가 장기간 도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수사 관계자들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이씨의 인상이 지극히 평범할 뿐 아니라, 범죄자로서 특별한 범죄기술 하나 없다는 점이 바로 그의 은신을 가능케 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오랜 도피생활을 단순히 ‘평범한 캐릭터’ 덕으로만 돌리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이씨는 항상 말이 없고 조용했으며, 중국집에서 숙식할 때도 혼자 저만치서 돗자리를 깔고 지냈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또 운동을 좋아해 아무리 만취상태에서라도 꼭 동네를 뛰는 등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씨가 체력을 단련한 것은 검거반이 들이닥칠 것을 대비해 동네 지리를 익히고 탈주하려는 ‘사전작업’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게다가 이씨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찬물로 샤워하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조사됐으며, 같이 일했던 직원 및 식당주인들은 그가 치질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는 이씨가 4기의 중증 치질에 시달렸다는 부분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보통 치질환자들은 뜨거운 물로 좌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치질 4기’ 진단 정도면 걸음걸이부터 어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4기의 중증 치질환자로 알려진 이씨의 진단은 신뢰할 수 없다”며 “어쩌면 교활하게 탈주하기 위한 꾀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개방성 골절을 비롯, 인중 쪽의 뼈가 부러져 치과 전문대학병원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제2의 신창원’ 이낙성은 누구인가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2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가면서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져 형제 중 이씨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또, 중학생 때 어머니마저 사망해 사실상 고아로 자란 셈이다.
절도와 강도 등 전과 5범인 그는 이 중 4차례 범행을 인천에서 저질렀다. 인천 동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6년 인천에서 중국집 배달원 생활을 하다 한 가정집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 카세트를 훔친 것이 이씨의 첫 범행이었다.
그 후 두 차례 범죄를 더 저질렀던 이씨는 지난 88년 다시 인천에서 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붙잡혀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인천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씨를 검거한 경찰들은 그를 ‘범행에 특징이 없는 단순절도범’ 또는 ‘잡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당시 사건으로 장기간 교도소 신세를 지다가 2001년 출소했다. 그 후 그는 서울 수유동의 한 여인숙에 머물다가 다시 강도행각을 벌였다. 여인숙 인근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 7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었다가 피해자의 신고로 현장 인근에서 바로 붙잡힌 것이다. 이때 징역 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고, 형기를 마친 뒤 2004년 1월부터 청송감호소에 서 보호감호를 받던 중 치질 수술을 위해 지난해 경북안동의 한병원에 입원했다.
한편, 이씨의 도피기간 1년 7개월은 신창원(2년6개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탈주기간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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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원 vs 이낙성

“그들은 탈주부터 검거까지, 180도 달랐다”

이낙성이 검거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인들은 그를 지난 97년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신창원과 비교하며 ‘제2의 신창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씨가 검거되고 탈주 이후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자, 두 탈주범은 완전 딴판임이 증명됐다. 두 사람은 ‘질’이 다른 범죄자라는 이유 때문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실제 그들의 외모, 체형 그리고 도피생활 등또한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신창원 수사전담반에서 활동했던 한 형사는 “신창원은 괴력이라고 불릴 만큼 힘이 세고 민첩했다”며 “또 수완이 좋아 그를 도와주거나 동거한 여자가 14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들 관리’도 철저했다고 한다. 이 형사는 “신창원은 동거하는 여자들의 화장대 서랍 안에 항상 수백만 원을 고정적으로 채워 놓기도 했다”면서 “생활비를 꼬박꼬박 대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그를 어떤 여성이 경찰에 신고하겠느냐”며 신창원이 장기간 도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비하면, 이낙성은 나이도 많고 체력도 떨어지는, 단순 잡범 수준이라는 견해다. 또 술집에서 여성들과 어울리긴 했으나, 그 외엔 늘 혼자 다녔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신창원은 검거되기까지 2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누비며 5억원 이상을 훔치는 등 대담한 모습이었지만, 이낙성은 기껏해야 빈집을 털거나 흉기로 위협해 약간의 금품을 뺏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범죄자로서의 이 같은 평범함이 오히려 쉽게 드러나지 않게 한 요인이었던 셈”이라고 전했다.
두 탈주범의 차이는 또 있다. 신창원은 탈옥을 위해 3년간 치밀하게 준비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하루 20분씩 3개월 동안 쇠톱으로 환풍구 쇠창살을 잘랐고, 식사량을 줄여가며 체중을 조절한 끝에 15kg을 감량, 화장실환풍구를 빠져나갔다. 이에 반해 이낙성의 탈주는 우발적인 것이었다. 치질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교도관이 잠든 틈을 타 몰래 빠져나온 것. 즉, 두 사람의 탈주는 질적으로 달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있는 한 수사관계자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범죄(강도, 절도 등)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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