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살인의 추억’ 재연되나?

2007-01-16     배수호 
화성 연쇄 실종 사건 현장추적

경기도 화성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일까. 1986년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서 하의가 벗겨진 71세 노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 1991년까지 총 10회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여성 10명이 차례로 강간 살해되었는데 모든 사건이 화성시 태안읍 반경 2㎞이내에서 일어났다. 지난 2006년 4월, 살인공소시효인 15년이 지났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91년 10차 사건을 끝으로 잠잠했던 화성이 2007년 다시 술렁이고 있다.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잇따라 실종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취재진은 3차례에 걸친 사건 현장과 수사팀의 진행상황을 총체적으로 추적, 보도한다.


지난 10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일대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한 현장 곳곳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건 현장 주변에는 사람들의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함이 느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박(52)씨, 배(45)씨, 박(37)씨 등 연쇄 실종 사건이 불거져 비봉파출소에 수색팀을 설치했고 금정파출소에는 별도의 수사팀을 운영, 이들의 행적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600여명 투입 깜둥산 수색
이번 사건은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달리, 동일인의 범행이 아니라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이 각기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동일인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수사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일 오후 1시, 주민이 6,100명인 비봉면에 투입된 경찰은 600여명. 마을 상공에는 헬기까지 투입되어 긴장감이 더해졌다. 이날 오후 양노리 비봉고등학교 앞 깜둥산(해발 100m)에서 수색작업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실종사실이 확인된 여성은 경기도 화성시 신남면 소재 M기업의 경리계장으로 일하는 박모(52)씨였다. 경기도 군포시 단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박씨는 사건 당일 오전 7시 10분에 집을 나와 회사 동료의 차를 타고 화성의 직장으로 출근했다. 박씨는 오후 5시 30분 퇴근을 했고 그 후로 박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씨의 남편 명모(54)씨는 “아내의 회사가 외진 곳에 있어 마을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데, 아내는 전에도 5시 30분에 오는 마을버스를 놓쳐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었다. 아내는 전에도 오후 7시 예배시간을 맞추려고 차를 얻어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딸(25)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집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출근 준비를 했고,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저녁 예배를 보러 다녔다”고 말했다.

박씨가 실종된 날은 수요예배가 있던 날로, 가족들은 당일 밤까지는 교회에 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돌아오던 시각이었던 밤 11시를 넘겨도 박씨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주변 친인척들에게 연락했다. 가족들은 주변 친인척들 역시 박씨의 행방을 모르고 다음날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의 평소 이동경로는 5시 40분 쯤 마을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인근 N초등학교에서 하차. 330번 버스로 갈아타고 귀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회사를 수소문해 보았지만 사건당일 박씨의 얼굴을 본 버스기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모두 비봉면 반경 5km이내 실종
두 번째 실종 사실이 확인된 여성은 경기도 안양에 사는 배모(45)씨. 노래방도우미 생활을 하는 배씨는 전애인 A씨와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3시 55분께 통화를 했다. A씨는 현재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앞둔 배씨와 금전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되었고 배씨의 딸이 일주일 후인 지난해 12월21일 경찰에 신고했다.

세 번째 실종사실이 확인된 여성은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모(37)씨.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박씨는 실종 2시간 전인 오전 2시 30분쯤 친구와의 통화에서 “남자친구와 제부도로 갈 예정”이라고 전화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박씨는 그 후 소식이 없었다.

10일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4일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박모(37)씨가 수원시 권선구의 집을 나선 후 귀가하지 않아 박씨의 가족들은 실종 4일 뒤인 지난해 12월 28일 실종신고를 했다. 박씨의 가족은 “경찰에 신고한 후 이동통신사의 친구 찾기 서비스로 위치추적을 한 결과 최종위치는 24일 오전 4시 30분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IC인근이었고 이후 휴대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다” 고 말했다.

경찰은 두 번째 실종사실이 확인되었던 지난 9일 수사본부를 세우긴 했지만 단순 실종에 무게를 두었다. 경찰은 지난 4일 회사원 박씨의 실종사실이 접수되었을 당시만 해도 박씨의 실종을 단순 가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가 실종 전, 주변정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한 세 번째 실종자 박씨와 두 번째 실종자 배씨가
동일한 직업(노래방 도우미)이었고 특히 화성시 비봉면 비봉나들목 인근에서 휴대전화가 끊긴 점 등으로 미뤄 동일범 소행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노래방도우미 배씨의 실종에 전애인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따라서 A씨의 차량 등의 정밀감식을 벌였지만 배씨와 관련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A씨는 배씨 실종당일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고 알리바이를 대는 등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는 있다.


화성사건과 연관 지어 “밤길 다니기 무서워”
다른 도우미 박씨의 경우에도 경찰은 처음 그녀의 남자친구 B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러나 B씨는 “(박씨 실종당일) 집에서 자고 있었다”며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금품피해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별개 사건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실종여성 대부분이 신용카드를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것은 최초 실종자인 회사원 박씨의 휴대폰 전원이 꺼진 곳이 지난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던 화성이었다는 것이 컸다.

회사원 박씨의 경우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에서 휴대폰 전원이 꺼진 것으로 확인되었고 노래방 도우미 배씨와 박씨는 각각 비봉면 자안리와 비봉면 비봉 IC지점에서 휴대폰 전원이 꺼지는 등 모두 비봉면 반경 5㎞이내. 모두 지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있었던 태안읍에서 불과15~20㎞ 지점이었다. 특히 언론들은 첫 실종확인자인 박씨의 실종일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있었던 수요일이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한편 각 신문사와 방송사에 화성주민들의 반발이 빗발친다고 전해졌다. 아직 밝혀진 것도 없는데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 지어 연일 보도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실제 비봉면에서 만난 주부 김모(45)씨는 “이제야 숨통을 좀 트고 사나 했는데, 이번 일로 또 마을이 어수선해졌다. 밤길 다니기도 무섭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성시청의 한 직원은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실추된 화성지역의 이미지를 살리느라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치안문제 해결을 위해서 거리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2년 전부터 마을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그간 안전한 도시 구축사업에 기울인 노력이 이번 화성연쇄실종사건으로 물거품이 될까 염려스럽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