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 전성시대 “그녀를 조심하세요”
섹시한 그녀와 잠자리 후 시작된 ‘악몽’
[일요서울|최은서 기자]사람 마음을 두고 저울질 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등 사기를 치는 ‘꽃뱀’이 활개치고 있다. 꽃뱀은 판사·의사·교수 등 전문직부터 대학생까지 노리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잇달아 벌어진 꽃뱀 사건만 보더라도 꽃뱀의 활동영역은 식당·레스토랑·병원·지하철·나이트 등 손꼽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꽃뱀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셈이다. 꽃뱀은 특히 사랑에 목마른 중장년 남성들을 유혹해 그들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린다. 꽃뱀의 그럴듯한 ‘포장’에 ‘꽃뱀’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더라도 “그 여자가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못하는 피해자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커플즈’에서는 ‘꽃뱀’이 등장한다. 찻집 주인 유석은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가진 나리에게 푹 빠져 사귀게 된다. 그는 나리가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자신의 전 재산에 빚까지 얻어 같이 살 집까지 구한다. 유석이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안 나리는 도망가지만 유석은 그녀를 잊지 못한다.
이처럼 꽃뱀은 피해 남성들의 ‘순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피해 남성들은 믿었던 그녀가 자신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금전적 피해보다는 지워지지 않는 배신감에 괴로워한다. 또 ‘하룻밤 쾌락’에 눈멀어 꽃뱀과 잠자리를 가진 남성에게는 가족이나 지인, 직장에 ‘원조교제’, ‘불륜’, ‘성매매’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룻밤 쾌락의 대가로 사회적 망신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 아내에게도 외도사실까지 들통 나게 생기자 ‘입막음용’으로 합의금을 건네는 피해남성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도 이런 꽃뱀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재력가 노린 꽃뱀
호감을 가지게 된 미모의 여성이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린 술자리에서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 따라나서지 않을 남성이 있을까? 또 알고 보니 이 여성이 유부녀였고 성관계 현장을 남편이 급습한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러다 패가망신하겠다’는 생각에 신속한 합의를 위해 부르는 금액을 곧바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남성들의 심리를 이용해 재력가 남성의 등을 친 꽃뱀공갈단의 꼬리가 밟혔다.
이 꽃뱀 공달단의 총책인 공갈 6범의 전과자 박모(61)씨는 꽃뱀을 고용한 뒤 재력가 남성을 유인해 성관계를 갖게 했다. 성관계를 빌미로 돈을 갈취할 심산이었다. 꽃뱀 공갈단의 인원은 모두 16명으로 모집책·남편·연결책·자금세탁·해결사·꽃뱀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들 중 무려 13명이 전과자였다.
먹잇감을 물색하던 이들 일당의 레이더망에 사업가 A씨가 포착됐다. 일당 중 한명이었던 횟집 사장 박모(여·40)씨는 넉넉한 인심의 여주인으로 접근, A씨를 단골로 만들었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고 판단한 일당은 곧 ‘꽃뱀’과 ‘바람잡이’를 투입시켰다. 횟집에서 A씨와 술을 마시던 박씨는 가게 안으로 이 두 여성이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합석시켰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또 다른 바람잡이 홍모(여·44)씨도 횟집에 들어서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A씨와 꽃뱀의 ‘목격자’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였다. 밤이 깊어가자 꽃뱀은 A씨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유혹’에 나섰다. 꽃뱀의 노골적인 유혹에 넘어간 A씨는 횟집 인근 모텔에서 꽃뱀과 거사를 치렀다.
그런데 갑자기 꽃뱀의 남편이라는 최모(50)씨가 모텔방에 들이닥쳤다.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최씨는 “내 아내와 무슨 짓을 했느냐” “가정파괴범이다”라는 말과 욕설을 쏟아냈고 A씨는 혼비백산했다. 또 최씨 곁에 선 바람잡이 홍씨는 “두 사람이 횟집에서부터 진한 애정행각을 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가세했다. 세 사람의 감쪽같은 연기에 A씨는 최씨가 요구하는 합의금 5000만 원을 순순히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곧장 다음 먹잇감 탐색에 나섰다. 일당 중 이모(54)씨는 사업이 승승장구 중이던 30년 지기인 초등학교 동창 B씨를 타깃으로 삼았다. 순박한 성격의 B씨는 꽃뱀의 농도 짙은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어느 정도 사전작업이 마무리 됐다고 판단한 꽃뱀은 ‘오늘따라 헤어지기 싫다’며 한 모텔로 B씨를 데려갔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꽃뱀 남편으로 위장한 최씨가 들이닥쳐 ‘지금 대체 내 아내와 무슨 짓이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당황한 B씨는 1000만 원을 마련해 최씨에게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B씨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이를 수상히 여긴 B씨의 친구가 경찰에 제보를 하면서 이들의 정체가 발각됐다.
경찰 수사결과 이들이 꽃뱀 일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와 B씨는 인심 좋던 단골 식당의 주인이, 어린 시절부터 3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특히 꽃뱀에게 사기를 당한 것도 모자라 30년 지기에게 배신까지 당한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진화하는 수법
꽃뱀의 사건은 이 뿐 아니다.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유부남이나 중년 남성을 꼬셔 성관계를 가진 뒤 금품을 갈취하는 것은 고전 중에 고전이다.
최근에는 나이트나 클럽에서 즉석만남을 가진 남자를 유인해 술집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나이트 꽃뱀’,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차를 가진 남성만 유인해 만취하게 한 뒤 근처 노래방으로 옮기자며 음주운전을 유도, 교통사고를 내게 해 돈을 뜯어내는 ‘음주 꽃뱀’, 유명한 사우나를 돌며 성추행을 유도해 합의금을 뜯어내는 ‘사우나 꽃뱀’등 수법도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관가에서는 ‘세종시 꽃뱀 주의보’가 돌고 있다. 세종시 이전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외톨이 공무원이 많아졌는데 이들이 외로움 때문에 유혹에 흔들릴 소지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1998년 대전 둔산동으로 이전한 관세청·조달청·중소기업청 등 대전청사 공무원들이 꽃뱀들의 집중 타깃이 됐고 일부 간부들이 꽃뱀의 유혹에 넘어가 협박을 받은 선례도 있다. 이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꽃뱀 퇴치요령’까지 떠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