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꿈을 일깨우는 공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이미 연극·영화·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도 없이 다뤄왔던 돈키호테를 또 다른 해석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이미 다양한 장르에서 다소 엉뚱하면서도 용맹한 돈키호테의 일화를 다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다른 돈키호테를 선보인 것. 연출자 데일 와써맨은 돈키호테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색다른 매력을 이끌어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데일은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작가 세르반테스를 연구했다. 결국 그는 돈키호테가 곧 세르반테스 자신의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쓴 소설을 감옥 안 죄수들에게 극중극 형식으로 들려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시도는 대 성공이었다. ‘맨오브라만차’는 수십 년에 걸쳐 브로드웨이에서 5번이나 리바이벌 공연 되었으며 명실상부한 브로드웨이의 걸작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어릴 적의 꿈과 환상을 되새겨주기에 충분했다.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가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이며 시작되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한 탓에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고 착각한 엉뚱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풍차를 괴물이라 착각하고 달려들거나 여관을 성으로 생각해 하녀 알돈자에게 청혼하는 등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아 웃음을 전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잊고 살았던 꿈을 발견한다. 힘든 일상에 지쳐 희망의 끈을 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소 엉뚱하지만 순수한 돈키호테의 내면은 삶의 희망과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로 국내에 초연된 후 2007년과 2008년, 2010년까지 세 번이나 재공연 됐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품고 2012년 다시 돌아왔다. 다섯 번째 국내 공연인 만큼 그 반응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대표 신춘수)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높은 좌석 점유율과 함께 이전의 공연들을 훨씬 뛰어넘는 흥행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제작사는 지난 6월 첫 공연 이후부터 식지 않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바탕으로 오는 12월 31일까지 연장 공연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재 관람 문의가 잇따랐고 끊임없는 연장 요청이 들어왔다”면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를 향한 관객들의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고자 연장 공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갈수록 힘들어지는 우리 사회 안팎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 공연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많은 관객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장 공연에는 원조 돈키호테 배우 류정한이 전격 합류해 그 열기를 더욱 이어나갈 예정이다. 초연 멤버로 돈키호테의 감동을 전했던 만큼 수많은 러브콜을 뒤로한 채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 다시 한번 참여를 결정한 류정한. 그는 지난달 17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차한 황정민의 자리를 대신해 3인 3색의 매력에 박차를 가한다. 제작진은 “류정한은 초연 멤버로서 ‘맨오브라만차’에 세 번이나 참여했던 배우”라며 “2012년 캐스트들의 새로운 작품 해석과 더불어 류정한 만의 해석이 더해져 더욱 안정적인 공연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이 아닐까 싶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곡은 이미 뮤지컬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곡 중 하나다. 공연 후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해 엘비스 프레슬리와 앤디 윌리엄즈, 페리 코모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한 이 곡은 유명한 스탠더드 팝송으로 기억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자리매김했다. 2012년 황정민과 서범석, 홍광호, 류정한이 선보인 ‘이룰 수 없는 꿈’은 극중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냐”는 알돈자의 비난성 질문에도 당당히 꿈을 말할 수 있는 돈키호테의 자신감이 한껏 녹아내렸다는 평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번 공연의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조연 배우들의 열연이 아닐 까 싶다. 돈키호테와 함께 환상의 모험을 떠나는 산초를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는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공연 내용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조금 더 밝게 표현한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산초 역을 연기한 배우 이훈진과 이창용 외에도 많은 조연 배우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에 이번 공연이 이토록 뜨거운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전 공연과는 달리 ‘맨오브라만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편하게 전달한 2012년의 공연은 그동안 제작진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정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극중 세르반테스는 인생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 표현한다. 전쟁의 아픔과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악행에 관해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왜 죽는지’가 아닌 ‘왜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심어준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단순히 어릴 적 읽던 동화에서 벗어나 성인이 된 관객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깨달음을 선사한다. 지금껏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꿈과 희망을 느끼고 싶다면 올해가 끝나기 전 돈키호테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공연은 다음달 31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관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