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상납 경찰 리스트 공개’ 이번엔 진짜?
장안동 성매매 업주 집단반발 내막
2008-09-10 이수영 기자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윤락가 단속과 비리경찰 색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쥘 수 있을까.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 유흥가에 유래 없는 집중단속이 한창인 가운데 발끈한 업주들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업소들로부터 성 상납을 비롯해 부적절한 로비를 받은 경찰관 명단을 공개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이로써 장안동 성매매 업주와 경찰의 전쟁은 ‘비리 경찰 명단’이 실제로 공개될지 여부가 사태의 핵심이 됐다.
성매매 업주들의 비리경찰 명단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서울 용산역 주변 성매매 업주가 ‘과잉수사 중단’을 요구하며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살생부’를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얼마 뒤 업주들은 입장을 바꿔 자신들이 공개한 실명리스트의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조무래기’ 경찰들만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업계에서는 과거의 사례를 들어 장안동 업주들 역시 명단 공개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장안동 업주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와 단속기관의 부적절한 커넥션 전말을 들여다봤다.
대책회의를 구성한 업주 40여명은 지난 4일 “경찰의 집중 단속이 계속되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며 상납 비리에 연루된 상당수 경찰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또 “‘수류탄’부터 ‘핵폭탄’까지 단계별로 대응방침을 마련했다”고 밝혀 명단 공개가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업주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거의 모든 업소가 경찰에게 단속 무마 대가로 수백만 원씩의 돈을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수시로 회식비를 제공했다”면서 “명단 규모는 업소마다 적게는 10명 남짓,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 영입해 ‘관(官)작업’
유흥업소에서 관할 경찰 지구대나 소방서 등을 관리하는 것을 이른바 ‘관작업’이라고 한다. 관작업은 대부분 업주가 직접 나서기보다 이를 담당하는 실무자를 통해 이뤄진다. 보통 업소에서 ‘실장’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관작업을 담당한다. 이들이 관리하는 곳은 단속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관할 경찰 지구대와 소방서, 구청 등이다.
주목할 것은 업소 실무자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비리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옷을 벗은 전직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유흥업소 실장급으로 스카우트된다. 유흥업소에 흡수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바로 관작업이다.
이 관계자는 “업소에 스카우트되는 전직 경찰들의 경우 나이도 젊은 편이다. 대게 30대 중반인 경찰출신 ‘실장’들은 한때 한솥밥 식구였던 현직 경찰들을 상대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인재다”고 전했다.
이들이 경찰과 공무원을 관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단순히 회식비나 용돈을 상납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 함께 포커나 화투 등을 즐기며 일부러 돈을 잃어 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기도 한다. 때에 따라 성 상납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업소가 나서는 것은 아니다.
실장들이 모든 담당 공무원을 1:1로 상대하는 일도 드물다. 소속 공무원 중 일부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뒤 목돈을 건네면 이를 받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동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업주들의 로비가 경찰 고위층까지 이어졌을까. 또 다른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이 권력실세에 버금가는 고위층과 줄이 닿아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 관계자는 “관작업을 할 때 상대하는 경찰과 공무원의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일부 인사가 승진 등으로 직위가 높아졌다 해도 경찰 조직 자체를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장안동 업주들이 ‘마지막 카드’로 들고 나온 비리경찰 명단도 일부 일선 경찰관에 국한된 ‘반쪽짜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동대문경찰의 대대적인 단속폭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소들은 특급보안을 유지한 채 비밀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장안동에 위치한 약 40여개 업소 가운데 15곳 정도가 이중출입문, 밀실 등을 이용해 은밀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집중단속 아니라 집중단속 할애비를 한대도 업소들의 비밀영업을 100% 차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눈에 보이는 간판은 꺼져있지만 이미 상당수 업소들이 비밀영업으로 모자란 매상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밥줄 끊기는 업주는 일부”
이 관계자는 또 “현재 장안동 내 업주 가운데 정말 밥줄이 끊겨 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대부분의 업주들은 장안동 뿐 아니라 강남 등 다른 곳에 위치한 업소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진 ‘재력가’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업주들에게 있어 장안동은 업주가 소유한 여러 가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뒤늦게 비싼 권리금을 주고 입주했거나 장안동에 ‘올인’하고 있는 영세 업주들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C안마 시술소 최모(48)사장도 영세 업주였다. 때문에 경찰과의 전면전이 길어질수록 장안동 업주 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립 역시 심화될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