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분노시대 <1> 대한민국이 끓는다

분노의 도가니, 답이 없다

2011-10-04     조기성, 이진우, 전수영 기자

“세상이 헝그리(hungry) 시대에서 앵그리(angry) 시대로 바뀌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현대차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강조하면서 한 발언이다. 이 장관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지금 비정규직만 화가 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일제히 분노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자유를 신장시키기는커녕 권위주의적 행태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남북화해와 통일은 멀어지고 있으며 국민들의 삶의 질은 점점 악화됐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참여정부 때보다 배 가까이 폭등한 살인적인 물가와 전세대란, 실업난까지 겹쳐 국민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MB정부가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고수해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면서 부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국민들은 파국적 위기 상황에 처하고 있다. 빚 압박에 자살율과 이혼율은 급등하고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은 ‘안철수 태풍’을 만들어냈다. ‘안풍’은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 속에 국민들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신물을 느낀 것이다.

다수 국민들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분노 표출뿐만 아니라 민주개혁세력, 진보진영에게까지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와 지난 4·27재보궐선거에서 국민들은 야권에 승리를 안겨줬지만, 이후 보여주는 행태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현재의 정당정치로는 답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안철수 태풍’에 정당정치가 존폐 위기에 몰리는 형국이다. 취업난, 물가불안, 양극화 등 사회적 모순 등에 기존 정당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 현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민심을 받아 안기는커녕 자신들의 영역으로 민심을 끌어당기려는데 혈안이 돼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 태풍이 단순한 정치 불신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기존 체제에 대한 결별을 뜻하는 것으로 정치, 경제, 노동 등 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획기적인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생활고, 주택난으로 ‘분노의 샘’ 솟구쳐

한국은행은 지난 29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하반기 3.3%에서 올 들어 7개월 동안 4.4%로 1.1% 포인트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신흥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2%에서 7.2%로 1% 포인트 상승한 데 반해 우리나라 상승폭이 조금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은 같은 기간 1.5%에서 2.6%로 1.1% 포인트 상승해 우리나라와 같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상승이 이를 따르지 못해 가계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2000~2010년 서울의 ‘점유 형태별 주택 현황’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 동안 서울의 전셋집은 9% 줄어든 반면 월셋집은 7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인성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월셋집 비중이 높아졌다”면서 “전셋값 폭등과 집주인들의 월세선호가 맞물려 월셋집은 당분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활고와 주택난으로 서민들의 분노가 샘처럼 솟아나고 있다. 분노의 표적은 정부와 기성 정당으로 집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다음 달 실시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야 정국을 흔들고 있다.

시민대표를 표방하는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에서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MB정부 들어 서민 뼛골 빠진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서민들의 고충은 계속해서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치솟는 물가, 실질소득 감소, 저출산 문제, 한없이 오르는 등록금 등 어디를 둘러봐도 서민들은 한숨만 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도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물가안정목표인 4%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 구멍도 없다고 아우성이다. 어렵게 집을 마련했다고 해도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이자 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어느덧 등록금은 1년에 천만 원을 넘는 시대가 돼 우골탑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돼 버렸고 이제는 ‘인골탑’으로 불리며 부모님들의 뼛골 빠지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며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듯한 현실이 됐다.

등록금의 노예가 된 학생들은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휴학을 한 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로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결국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은 이제 이상한 것이 아닐 정도로 등록금은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대출을 통해 등록금을 마련해 졸업을 한 후 취직을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되는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얘기했던 일자리 300만 개 창출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으며 얼마 남지 않은 임기 기간 동안에는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만든 일자리도 양질의 일자리이기보다는 공공사업부분 중 토건사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최저임금은 지난해 시간당 4320원에서 4580원으로 260원 오르는데 그치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서민가정에 있어서는 등록금 마련이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함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에 전념해야 할 50대 초반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이혼율과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자신들의 노년을 위한 준비도 제대로 못한 상황인데 경제활동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난달 21일 통계청과 대법원 등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혼건수는 1만5813건으로 2006년의 1729건에 34.8%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인 11만6858건의 13.5%에 달하는 수다.

이혼 사유 중 성격차이가 6679건(42.2%)으로 가장 높았지만 뒤를 이은 것은 바로 경제문제로 2259건(14.3%)에 이른다. 가정 파탄의 이유에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돈과 관련돼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보험사기와 자살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보험사기 사범은 1만29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4년 전인 2007년의 5134명의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을 수 있다면 이런 생계형 범죄는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해법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생계형 범죄의 예방책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범죄는 결국 자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자살한 사람은 총 1만5566명으로 자살률이 가장 낮았던 2006년의 1만658명에 비해 50% 증가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중 50대 남성들의 자살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베이비부머 세대가 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진행한 지난해 조사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유로 응답자의 44.9%가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게 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 심적 압박으로 인한 자살을 선택한다는 추리가 가능해진다.

국민들이 먹고살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양극화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런 양극화는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높은 등록금으로 인해 교육을 중도 포기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