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대 박원순 시민후보 대결되나

서울시장 보선, 보수 vs 진보 대결구도

2011-09-20     조기성 기자

한나라-민주 빠진 보수 대 진보 싸움
민, 천정배-박영선-추미애-신계륜 출사표


조기성 기자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체제에 돌입한 여야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안철수 바람’을 등에 업고 등장한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의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부각되면서 한나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설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복지 프레임이 주민투표 무산으로 붕괴된 이후 이미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던 터라 충격파는 더욱 컸다. 민주당은 또 다시 ‘제3의 인물’에 의해 고지 선점에 실패, 뒷북을 치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서울시장 자리를 둘러싼 이념 대립 현상이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선구자로 통하는 박 변호사가 진보성향의 야권 단일후보로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 속에 여권은 박 변호사 대항마로 내세울 이석연 전 법제처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념 대립으로 비화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선거전을 따라가 봤다.

정치권은 추석 이후 민심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시장 보선을 목전에 두고 ‘안풍(安風)’을 탄 ‘박원순 효과’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확산될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선은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의 민심 향방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여야가 서울시장 보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여야 모두에게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나라당은 이미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인해 ‘연대 책임론’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민주당 역시 지지층 이탈이 가시화 되는 분위기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를 넘어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정치개혁’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 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탈 정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각각 어떤 해법을 모색하고 있을까.

한나라,
이념 대리전 구도 원해


한나라당의 이번 서울시장 보선 전략 핵심은 보수 결집과 중도층 공략이다. 안철수 신드롬으로 나타난 민심이반의 중심에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체 분석을 통해 박 변호사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의 이념적 성향이 너무 강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지했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가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다는 계산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금 나경원 최고위원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나 최고위원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지원하는 등 보수적 색채가 강하지만 강력한 대중 친화적 이미지로 인해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지배적이다.

이 같은 당내 여론은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와 무관치 않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누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는 게 좋겠느냐”는 질문에 나 최고위원(30.4%)이 1위를 차지했고,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의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나 최고위원은 12.6%를 기록하며 여권 후보군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 최고위원이 유력시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풀어야할 과제는 따로 있다. 야권의 통합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박 변호사의 상승세를 어떻게 꺾어놓느냐가 그것이다. 박 변호사는 앞서 안 원장과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 직후 “서울을 재활용의 도시로 바꾸겠다”고 밝힌바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박 변호사의 급진적 정책기조에 대한 반발 심리를 역이용, 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중도층의 표심을 이끌어낼 구체적 실행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환으로 한나라당은 나 최고위원 외에 외부 인사 영입을 위한 물밑 접촉에 나선 상태다. 주호영 당 인재영입위원장은 15일 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비공개로 만나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당신이 최적이다. 대안이 없다”며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줄 것을 강권했다. 출마 결심을 한 이 전 처장은 “기성 정치로는 안 된다는 게 시민의 평가인 만큼 한나라당만으로는 안 된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경선에 나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고 입당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이 전 처장은 “한나라당과 보수·중도 세력까지 아우르는 범여권 단일후보를 내세워야 하며, 홍 대표에게도 이런 뜻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야권의 후보 선정 방식이 ‘범야권 단일화’로 확정됨에 따라, 여권 역시 시민후보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이 사람 저 사람 영입해 불쏘시개로 쓰려 한다면 나도 망하고 당도 망하고 보수·중도 세력 모두가 망한다”며 “그런 영입 제의라면 거절하겠다고 홍 대표에게 말했다. 저 쪽(야권)에서도 범야권 후보를 내세우려고 하지 않나”라고도 했다.

홍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석연 카드를 꺼내든 배경엔 박원순 맞춤형 성격이 짙다. 안철수 열풍이 다름 아닌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질타 성격이 짙은 터라 비정치성으로 대결해 보겠다는 것이다.

또한 홍 대표가 이미 당내 유력주자인 나경원 최고위원을 ‘탤런트 정치인’이자 ‘오세훈의 아류’로 치부한 상황에서 상처투성이의 선수를 링 위로 올릴 순 없지 않느냐는 거부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최고위원은 “홍 대표로서는 ‘강재섭의 악몽’을 떠올릴 수 있다”며 “생채기 낸 상황에서 나 최고위원을 출전시키기엔 여러 모로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내에서 지지도 1위를 고수하며 유일하게 경쟁력이 검증된 나 최고위원을 배제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패배의 멍에를 홍 대표가 홀로 안고 책임론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때문에 전략공천보다는 ‘나경원 대 이석연’ 빅매치 경선을 통해 흥행을 유도하는 한편, 이 전 처장의 단점인 인지도를 끌어올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전 처장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보수 성향의 단체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및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반면, 박 변호사는 경남 창녕 출신으로 진보 단체로 알려진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박 변호사의 이력과 배치되는 이 전 처장 영입에 나섰다는 것은 곧 선거를 이념 대리전으로 몰고 가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한나라당은 현재 서울시장 후보 선정에 있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한 가지 희망은 가지고 있다. 박 변호사의 이념적인 성향을 물고 늘어진다면 한번 해 볼만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석연, 한나라 입당 거부
박원순, 민주 입당 거부


한나라당이 이념 대리전으로 차별화에 나선 반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패닉상태다. 박 변호사가 부각되면서 민주당 지지층 상당수를 흡수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내세웠던 복지 이슈는 박 변호사로 인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주당에서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최고위원과 신계륜 전 의원, 당내 경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5일 출마를 선언한 박영선 정책위의장과 추미애 의원 등 4명이 경선을 벌인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은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위기다. 박 의장이 고심 끝에 막판 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판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당초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다가 최근 불출마 의사를 밝힘에 따라 흥행 요소가 사라졌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민주당은 고육지책으로 박 변호사를 향해 수차례 영입을 위한 러브콜을 보냈으나 거부당한 상태다. 박 변호사가 기존 정당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대안 정치인으로 떠오르는 것만이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셈법을 정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후보 등록이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2회 이상의 TV토론 등 토론회를 통해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후보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후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2차례의 여론조사와 25일 서울시의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현장 투표를 50대 50으로 합산해 서울시장 후보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선을 통해 결정된 민주당 후보는 박 변호사와 다른 야권 후보들과 함께 단일화 경선을 다시 치르게 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없이는 서울시장 선거 승리도 없다”면서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당 후보가 박 변호사를 상대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진영,
전원책 변호사까지 거론


여야의 총체적인 난국 속에 주목되는 것은 박 변호사의 최근 행보다. 그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책마련에 고군분투하는 사이 진보진영을 두루 살피며 지지세 결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박 변호사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이른바 진보, 민주 정당과 시민세력이 힘을 모으고 함께 연대해서 좋은 결과를 맺자”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가 하고자 하는 것들 중에 정말 좋은 것들, 좋은 가치들이 정말 많은데, 현실 정치나 현실 사회에서 충분히 아직 반영이 안 된 점이 정말 아쉽다”면서 “저도 어떻든지 간에 이른바 넓게 보면 정치무대에 섰는데, 앞으로 그런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는 데에 동지적인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동안 활동하면서 시민의 폭넓은 참여와 소통이 이뤄지게 해 많은 것들을 일구어 오셨다”면서 “앞으로 이렇게 박 변호사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더 훌륭하게 더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는 민노당 등 진보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진보진영의 조직적 지원을 이끌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변호사를 선봉장으로 진보진영의 결집이 가시화되자 보수진영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보수의 대표적 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추천한 전원책 변호사가 박 변호사의 대항마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전 변호사가 박 변호사의 실질적 대항마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의 뚜렷한 이념적 성향, 그리고 여야의 인물 부재 등 현재의 서울시장 선거 구도를 종합하면 여권이 서울시장 보선의 해법으로 이념 양극화를 방점으로 설정할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