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태풍에 박근혜 흔들
‘대권불판’ 뒤집기1 - 민심폭발이 정치개혁 이룬다
2011-09-14 조기성 기자
조기성 기자 = ‘안철수 태풍’에 ‘박근혜 대세론’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통 큰 양보를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차기 대선 1:1 가상대결 결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앞선 후보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지난 대선 이후 차기 대권주자 ‘부동의 1위’ 자리를 내달리며 대세론을 형성했던 박 전 대표에게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안철수 변수로 인해 차기 대선 판갈이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철수 태풍’,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박근혜까지 누르다
대권 판갈이론 급부상
안 원장은 지난 6일 ‘서울시장 출마 검토’ 의사를 밝힌 지 5일 만에 박 상임이사의 지지를 선언하면서 물러났다. 안철수 블랙홀이라고 불릴 만큼 5일 동안 모든 이슈가 안 원장에게 쏠렸다. 안 원장은 물러났지만 안풍(安風, 안철수 원장이 일으킨 바람)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오히려 안 원장의 대권도전 여부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들은 제대로 된 국가사회적 리더가 부재한 상태에서 안 원장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미래에 대한 갈증을 폭발시켰다. 기존 정당정치가 갈등과 반목만 수반하는 이념 대결 구조라는 문제점에 대한 반발이었다. 기득권에 매달려 국민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갈구하는 대중들의 열망이 ‘안철수 태풍’을 만든 것이다.
안 원장은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며 ‘반한나라’를 확실히 했다. 물론 ‘비민주’임도 분명히 했지만 어디까지나 강조점은 ‘반한나라’라는 것이다. 안 원장은 한나라당을 응징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조차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안철수 태풍’을 만든 것처럼,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가 ‘박근혜 독주 체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여야 정치권 모두가 ‘새로운 대안’에 대비되는 ‘구세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안철수 돌풍은) 민심폭발이며 박근혜 대세론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이 대선주자로) 나올 것으로 본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만두지 않는다”며 “안철수 이미지가 단기간에 깨질 것으로 보지 않으며 총선ㆍ대선으로 가면 열풍이 더 분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안 교수가 대선에 나오든 안 나오든 안 교수와의 대비를 통해 박 전 대표는 ‘식상한 구태 정치인’으로 비쳐질 여지가 많다”면서 “이런 식상함은 ‘대세론 피로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거의 6년 동안 이어져온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립구도 속에서 나타난 피해자 이미지로 한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 한나라당의 주류로 본격 등장한 상태에선 기득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고, 이런 기득권적 이미지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식상함과 결합돼 대세론을 피로하게 느끼게끔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친박 내에서는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지원 등을 포함해 대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한구 의원은 “박 전 대표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올 위기라면 일찍 불거지는 게 대처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만큼 나쁘지 않다는 시각 아래에서, 조기 캠프 구성을 통한 전략 수립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 친박 인사는 “그동안 ‘벌써 대권 다 잡은거냐’는 말이 나올까봐 본격적인 전략수립도 못한 부분이 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베일을 벗고 캠프를 조기에 구성해 본격적인 전략 수립·대응에 들어갈 필요성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철수, 박근혜까지 단숨에 제쳤다
안 원장은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자연스레 올랐다. ‘통 큰 양보’를 계기로 대선주자급으로 무게감을 키웠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단일화 선언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안철수 대통령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위터에 “우월한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양보한 안 원장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판이 바뀔 조짐”이라며 “안 원장의 ‘쓰임’은 또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안 원장이 물러나는 것은 (박 전 대표처럼) 패배해서가 아니라 지지율 1위를 가지고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 풍토에서 1위를 달리는 지지율을 가지고 물러나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추켜세웠다. 경선 승복을 통해 대선후보로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었던 박 전 대표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실제 안 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6일 뉴시스-모노리서치 여론조사(전국 19세 이상 남녀 1108명 대상 RDD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2.94포인트)에 따르면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안 원장은 42.4%의 지지를 얻어 박 전 대표(40.5%)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리얼미터 조사(전국 19살 이상 남녀 700명 대상 가구전화 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7%포인트)에서도 두 사람이 양자대결을 펼칠 경우 안 원장은 43.2%, 박 전 대표는 40.6%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는데, 오차범위 안이지만 정치권에는 충격적인 결과”라며 “안 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선주자로 급부상해 유권자들의 관심도 대선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대표는 “선거의 바로미터인 40대에서 단번에 첫 조사부터 안 대표가 이긴 것은 의외”라며 “박 전 대표가 강세였던 충청권에서 안 원장이 박 전 대표보다 높게 나온 것도 예상 밖으로 ‘40대 중도층과 무당파’가 안 원장에게로 갔다. ‘박근혜 대세론’이 처음 맞는 위기”라고 말했다.
야권 대권후보로 급부상
안 원장의 돌풍은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모노리서치와 뉴시스가 공동으로 지난 6일 긴급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야권단일후보 지지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처음으로 대권주자에 이름을 올린 안 원장이 31.1%의 높은 지지율로 단숨에 1위로 올라서는 저력을 보였다.
차기 대통령선거에서의 야권통합 대권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안 원장은 무서운 기세로 범야권 단일후보 1순위로 부상한 문재인 이사장을 무려 14.7%p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이사장(16.4%)에 이어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11.1%로 3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6.0%,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3.0%였으며, 한명숙 전 총리와 정세균 최고위원이 각각 1.4%로 나타났다. 기타 인물이 8.5%,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1.2%였다.
안 원장은 권역별로는 경남권(41.3%)과 서울권(35.3%)에서, 연령별로는 40대(39.0%)와 30대(37.9%)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여론조사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안 원장은 지난 7일 자신의 대권 도전설에 대해 “가당치도 않다. 사실 생각해볼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 전 대표보다도 우세를 보인데 대해서는 “에이 무슨… 일시적인 거겠죠”라고 답했다.
박근혜, 대권행보 빨라진다
‘안철수 태풍’으로 인해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도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신드롬이 여의도의 기성 정치권을 강타한 데 대해 “이번 상황을 우리 정치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그만큼 안 원장의 등장에 따른 정치역학구도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ㆍ대선에서의 역할론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안철수 변수가 등장하자 이전과 같은 소극적인 대응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달 초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게 적극적인 행보의 신호탄이며 안철수 돌풍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9월 정기국회부터 정책행보를 통해 대권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친박계의 예고가 본격적으로 실행되는 셈이다. 특히 오는 19일부터 10월 8일까지 계속되는 국정감사에서 여러 정책을 풀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경선 패배 때부터 4년 여간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구상해온 정책의 ‘종합판’을 국감을 통해 펼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친박계 핵심인사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빨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원래부터 박 전 대표는 국민과 접촉면을 넓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안철수 변수’가 등장함으로써 계획이 적어도 1~2달은 앞당겨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박 전 대표가 최근의 ‘안철수 태풍’과 야권 후보 단일화에 예민하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는 안 원장의 지지율 상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병 걸렸냐, 정말 중요한 복지에 대한 질문을 해 달라”며 과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보수 결집 이뤄지나
안철수 태풍에 보수의 결집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 원장이 반한나라 전선을 명확히 그으면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보수의 결집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박 상임이사와의 단일화로 보수 대 진보라는 명확한 구도 속에 치러지게 됐다는 점도 보수가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친이-친박 간 앙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더불어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거리면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박근혜 대항마’들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여 삐걱거림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정몽준 전 대표의 박근혜 때리기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당내 친이계까지 끌어안는 통 큰 모습을 보이면서 당 바깥의 보수세력까지 함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분열의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구시대 정치인’으로 낙인 찍힐지는 지켜볼 일이다. 안철수 태풍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표의 고심이 깊어만 가고 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