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진영 대선전략
‘문재인-김두관 카드’
2011-08-22 조기성 기자
[조기성 기자] 내년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위한 필승카드를 찾고 있는 야권 내에서 친노 진영 인사들에 대한 주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목은 ‘문재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번에 차기 야권 대선주자 1위에 오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며 여전히 잠룡 중 1인으로 꼽히는 김두관 경남지사에게로 쏠린다.
이들은 친노 대표주자격으로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지난해 경기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데 이어 지난 4·27 김해을 재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의 패착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권후보로 거론됐던 한명숙 전 총리가 최근 민주당 당권 도전 의사를 피력함에 따라 이들은 자연스럽게 친노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됐다.
이들은 특히 고(故)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추모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까지 밀쳐내며 야권 내 가장 강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다.
친노 현주소는 분화에서 결집으로
친노 진영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이해찬 전 총리를 단일후보로 내세웠지만 패배, 폐족(廢族)의 위기까지 내몰렸다. 구심이 사라진 친노는 사분오열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후 탈당해 시민정치단체 ‘시민주권’을 만들었고, 부산팀과 청와대 참모그룹, 학자그룹의 다수는 정치권을 떠나 미래발전연구원, 노무현재단, 봉하재단 등으로 흩어졌다. 참여정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내걸고 당 외곽에 참여정부평가포럼을 결성했던 이병완과 이백만, 천호선, 이재정 등은 탈당한 유시민과 함께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영남과 수도권에 기반을 두면서, 2002년 대선을 전후해 합류한 후발 친노그룹이 중심이었다. 반면에 안희정·이광재 등 측근 비서그룹과 김원기·한명숙·이강철 등 원로그룹, 관료 출신과 청와대 386그룹의 다수는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에 남았다. “제3당은 안 된다”는 노 전 대통령의 만류 때문이었다.
민주당에 잔류한 친노 세력은 노무현 서거 1년 뒤 치러진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 단체장에 대거 당선되며 야권의 중심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반면에 참여당은 두 번의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다가 잇따라 패배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 무엇보다 김해을 패배가 뼈아팠다. 노무현의 고향에서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패배는 친노 진영 전체의 몫으로 남았다.
현재까지도 친노 인사들은 제각각 민주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 및 재야·무소속 등으로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열 구도가 오래갈 것이란 관측은 많지 않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과 참여당의 통합을 요구하는 외부압력이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합을 위한 시민사회 친노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렇듯 분화되었던 친노 세력이 최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2년 정권교체를 통해 ‘노무현의 부활’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2년 정권교체라는 화두를 내건 친노 세력 내에서 제기한 ‘문재인 대안론’이 최근 정치권 전체를 강타하면서 ‘문재인 대망론’을 만들어냈다.
한편, 친노 세력 전체의 논의구조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지도체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친노 진영은 한명숙·이해찬·문재인 등 원로 3인과 김두관·안희정·이광재 등 전·현직 지사 3인, 유시민 대표 등 ‘7인 협의체’ 구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흩어져 있는 친노 세력을 규합해 본격적으로 친노 진영의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문재인, 야권통합 선봉장으로 정치행보 본격화
친노 세력 중 최근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문 이사장은 ‘혁신과 통합’으로 다시금 이목을 모았다. 그는 이를 매개로 야권 지형 재편과 함께 정치 행보의 본격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몇 갈래로 나뉘어 있는 친노 진영은 역시 통합 바람을 통해 문 이사장을 부각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친노의 한 핵심 인사는 “특정 정치세력으로 부각되기보다 통합을 선도하는 역할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과 통합’에는 문 이사장을 비롯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두관 경남도지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등 많은 친노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재야 단체와 종교계 원로들이 원탁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결과 통합을 추진해 나갈 실무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문 이사장은 지난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통합과 혁신’ 제안자 모임에서 “그동안 많은 분들이 통합을 이야기했지만 현실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정당들이 통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래서 국민들 가운데 광범위한 세력이 한 축으로 참여하면서 그 힘으로 정당들의 통합 이끌어내는 방식의 통합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고 본격적인 통합 운동에 전념할 뜻을 밝혔다.
‘혁신과 통합’은 오는 9월 6일 창립대회를 열고 운영위원회와 실행위원회를 꾸리는 등 전국 단위 조직화에 나선다. 정치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신’이자 ‘보완재’ 역할에 머물며 현실정치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던 문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야권통합의 중심에 선 문 이사장은 이제 친노 대표주자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차기 대선 야권 대표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 대선 주자 2주 연속 1위 ‘기염’
실제 문 이사장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정기조사(8월 8~12일)에서 처음으로 지지율 두 자릿수(11.7%)를 기록하며 손 대표(9.9%)를 제치고 2주 연속 야권 대선후보 1위를 차지, 이 기세를 몰아 정치행보 속도를 한층 더 높이는 모습이다.
문 이사장은 지난 16일 한국기자협회가 현역기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가장 지지하는 차기 대통령’ 결과에서도 17.9%의 지지를 얻어 19.4%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지난 15일 “문 이사장의 현 지지율 10%는 절대 사상누각이 아니다”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초창기 때 지지율이 2∼3%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문 이사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는 달리 영·호남을 포함해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고, 젊은층 지지자가 대부분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는 달리 20대부터 6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표의 확장성 측면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문 이사장의 정치 참여 의지다. 문 이사장은 그동안 현실 정치 참여에 줄곧 부정적이었다. 2009년 양산 재보궐 선거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문 이사장의 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컸지만 문 이사장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문재인이 진정 권력의지가 있다면, 이제는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망론의 거품을 걷어내고 후보 문재인의 경쟁력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들어오려면 더 빨리 들어와야지 좌고우면하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문 이사장은 문재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서거 정국 이후 노무현의 부활을 구현하는 상징자적 성격이 있고, 어쩌면 (문 이사장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재로선 문 이사장이 ‘반MB 정서’와 ‘훌륭한 인품’ 말고 뭐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반면,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오히려 권력의지가 없고, 대선 후보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문 이사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치 혐오증이 팽배한 요즘은 권력의지가 강하지 않다고 비춰지는 게 약점이 아니라 장점인 시대”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야권 후보인데 부산 출신인 점, 친노계인데도 영남에서 거부감이 없는 점 등이 향후 지역주의 역할자로서의 그의 주가를 더욱 높여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문 이사장 역시 최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이제는 현실 정치 참여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이 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두 달 만에 15만부 이상 팔려나갔고 여의도 정치권에서 필독서가 된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두관, 권력의지 있다”
최근 야권에서는 문 이사장 외에도 김두관 경남지사를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근래 문 이사장이 급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권력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선수(차기 주자)로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고성국 박사는 “문재인은 권력의지가 없어 보이고, 김두관에겐 (권력의지가) 있다”면서 “선거 공학적으로 보면 김두관과 문재인의 나머지 조건은 거의 비슷하다. 당당하기로 김두관이 문재인보다 못하지 않고, 헌신성도 마찬가지다. 권력의지가 있는 김두관이 훨씬 가능성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위관계자도 “야권 단일후보로 김두관 경남지사가 나오면 우리가 힘들어진다. 손학규, 유시민 등은 크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김두관은 경남에서 48%의 득표력을 보였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의 변수로 “지역 변수, 그중에서도 영남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PK(부산·경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의 확장성 면에선 손 대표보다 문재인, 김두관 이들이 더 경쟁력 있다. ‘박근혜 대 김두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에서 야권의 승리 가능성을 무시 못한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도 두 사람의 대안론을 본격화할 조짐이다. 대권행보를 걷고 있는 정세균 최고위원은 두 사람의 참여를 이미 종용한 바 있다.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김두관도 있다”면서 야권의 유력주자로 손 대표, 문 이사장과 함께 김 지사를 꼽았다. 그는 “중앙에선 크게 주목하진 않지만 경남에서 도지사가 됐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며 “마을이장에서부터 군수, 장관,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와 내공을 갖췄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지역주의의 장벽을 허물고 사실상 50년 만의 지역 정권교체를 이뤄낸 것에 대한 의미 부여와 함께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치적 역정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김 지사의 차기 도전이 무난하지만은 않다. 대선 출마를 위해서는 지사직을 중도 사퇴하고 내년 총선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당선 2년도 안 돼서 자신을 선출해준 지역을 버리고 총선으로 가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 때문이다.
김 지사는 아직 젊기 때문에 차라리 차차기를 겨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지사는 “도정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년 대선에 출마한다, 안 한다 이런 얘기가, 더더군다나 차기, 차차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 어떻게 2017년을 얘기할 수 있겠나. 당장 오늘내일도 모르는 판국에”라고 차기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친노 진영은 19대 총선에서 부산·경남 출마를 노리고 상당한 인사들이 준비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구심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 이사장과 김 지사의 대권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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