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회장 귀국 손꼽아 기다렸나

2005-06-07     정혜연 
김 전회장-신회장의 특별한 관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자 정재계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의 귀국 이후에 불어 닥칠 핵 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재계에서 이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김 전 회장의 귀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이다. 얼핏 보아서는 신 회장과 김 전 회장이 딱히 인연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신 회장이 이끄는 교보생명은 보험회사이고, 김 전 회장이 과거에 일군 대우그룹은 보험 업계에는 손을 뻗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신 회장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모습이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김 전 회장과 신 회장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의 올해 정기 주주총회가 평소보다 늦은(교보생명은 3월 결산법인이기 때문에 5월말에서 6월초에 주총을 연다) 오는 6월27일로 예정된 것도,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교보생명의 주주 구성을 보면 신창재 회장이 전체의 37.25%(689만2,765주), (주)대우인터내셔널 24%(444만주), 김우중(개인) 11%(203만5,000주)를 가지고 있다.

김 전회장, 교보생명 의결권 가져

김우중 전 회장은 개인으로서는 신 회장에 이어 교보생명의 2대 주주다. 대우의 부실채권을 관리하는 자산관리공사가 (주)대우와 김우중 전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에 대해서 일찌감치 질권을 설정한 상태지만, 교보생명의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아직까지 김 전 회장이 가지고 있다. 신 회장이 회사 오너 자격으로 김 전 회장의 귀국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교보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 김 전 회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회사경영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의결권을 가진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대체 무슨 얘기일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요즘 최대 고민은 자본 확충이다. 교보생명은 비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증권 시장을 통해서는 자본을 조달할 수가 없다. 결국 회사의 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대주주들이 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여기에서 입장 차이가 있다. 신창재 회장은 증자를 하겠다는 것이고, 또 다른 주주인 캠코((주)대우의 지분을 위탁관리하고 있다)는 증자를 할 수 없다는 입장. 이렇다보니 결국 교보생명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제 3자를 통해 증자를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회사의 정관상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정관을 변경해야 증자가 가능하다”며 “회사정관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어차피 개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 정관 변경여부 관심사

회사 정관은 이사회 멤버 3분의 2 이상이 동의를 할 때 이뤄진다. 문제는 캠코가 위탁관리하고 있는 지분이 (주)대우 24%와 김우중 11% 등 35%나 된다는 점이다. 결국 캠코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이 점이 바로 신창재 회장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 회장은 묘안을 짜내게 된다. 캠코가 관리하고 있는 지분 중에서 김 전 회장의 지분이 11%나 되니, 김 전 회장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것. 회사의 내부 관계자는 “회사의 중요 결정사항을 캠코나 김 전 회장을 설득해서 처리해야하는 상황이 돼 회사 측에서 김 전 회장의 대리인인 석진강 변호사에게 몇 차례 의사를 타진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에 있지도 않았던 김 전 회장이 보험업계 서열 2위 교보생명의 숨통을 조일 수도, 풀 수도 있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신 회장의 고민이 극에 달할 즈음에 터져 나온 것이 김 전 회장의 귀국설이다. 김 전 회장이 6월 초순에 귀국한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 것.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의 주총 일정이 늦춰진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공식적으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교보생명과 25년 인연
대우건설, 교보본사 사옥 대금으로 주식 받았다는 얘기 ‘솔솔’


업계의 관심 중 하나는 김 전 회장이 왜 교보생명의 주식을 200만주 이상 갖게 됐느냐는 부분이다. 교보생명측의 공식적 입장은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교보생명 홍보실 관계자는 “워낙 오래전에 이뤄진 일이어서, 김 전 회장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게 된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과 교보생명의 인연은 무려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은 교보생명이 본사 건물을 준공한 때다. 교보생명 본사 시공사는 대우건설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본사 사옥을 지었지만, 회사 사정으로 인해 대금을 지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결국 공사 대금 대신에 회사의 주식 중 일부가 대우건설과 김 전 회장 개인 명의로 넘어갔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 이같은 사실에 따르면 회사가 건설 대금으로 받아야 했던 금액 중 일부가 김 전 회장 개인 포켓으로 넘어간 주먹구구식 경영이 있었던 것이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3년 강남 사옥을 완공했는데, 이 건물의 시공사 역시 대우건설이었다. 김 전 회장과 교보생명의 25년전 이뤄진 이면계약이 결국 문제로 불거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