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율, 손학규 앞질렀다
문재인-손학규 야권 대선후보 경쟁구도 본격화
2011-08-17 김규리 기자
[김규리 기자] 야권의 대선후보 경쟁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문 이사장의 지지율이 급부상하면서 ‘문재인 대망론’을 형성하더니 최근 실시한 야권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는 문 이사장이 손 대표를 밀쳐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손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실망한 野성향 유권자들이 문 이사장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여전히 야권통합을 위해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현실정치와 선을 긋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일선에 뛰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손 대표는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 민주당의 지지를 높이는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향후 두 사람의 본격적인 대선 행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재인, ‘손학규 대항마’ 되나
문 이사장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9.8%로 야권 1위를 차지했다. 문 이사장의 뒤를 이어 손 대표는 9.4%로 2위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이사장이 손 대표를 앞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 이사장은 최근 야권에서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면서 빠른 속도로 정치 행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6월 중순 출간한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민의 관심은 커졌고 지지율은 급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손 대표의 지지율이 4·27 재보선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비돼 두 사람은 대선주자 경쟁 구도로 이어졌다.
그의 ‘정치적 운명’은 스스로 내년 총선 승부처로 꼽은 부산·경남(PK)의 성적표에 따라 달라질 상황이다. 그가 중심이 돼 PK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아성에 균열을 낸다면 ‘문재인 대망론’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선 출마에 대해 즉답하지 않지만 친노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본인도 꺾을 수 없는 어떤 흐름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저서 ‘문재인의 운명’의 북 콘서트를 두 차례 가진데 이어 26일에 부산에서 세 번째 행사를 열 예정이다. 또 27일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일(9월 1일)을 기념해 봉하마을 음악회에 참석할 계획이다.
문 이사장 측은 “8~9월 중 통합운동을 어떻게 시작하고 10월 전후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그 결과가 국민이 문 이사장을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손 대표의 그간 행보가 진보성향 유권자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반면 문 이사장은 회고록을 내면서 주목도가 높아진 데다 유시민 대표의 지지층까지 흡수하며 지지율이 더욱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학규, 지지율 정체에 갇히나
반면, 손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문 이사장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제 1야당의 대표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듣는 등 위기에 처했다.
손 대표는 4·27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 승리 이후 지지율 10% 중반대를 형성하다가 하락했다. 이는 손 대표가 4·27 재보선 이후 유시민 대표의 상승세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유 대표의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 대표가 그동안 야권통합에 적극적이 않았던 것도 지지율이 부진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손 대표 측은 문 이사장과의 대권 구도 형성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손 대표의 핵심 측근은 “선의의 경쟁이 활성화되면 야권 전체적인 관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지난 10일 ‘희망대장정’을 마치면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 “민주세력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의 총합을 높이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 아주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야권에 대한 지지의 총량이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최근 문 이사장의 지지율 상승을 민주당에 대한 지지 확대로 평가한 것이다. 현재 지지율이 어느 때보다 높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다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한편, 최근 자신의 지지율 정체와 관련해서는 “참 어리석은 짓”이라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냥 내 길을 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 그는 결단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내가 하는 정치가 가장 옳은 정치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민과 언론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최근 지지율이 상승한 문 이사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대체적이다.
손 대표는 이어 “여러 당면한 문제, 장기적인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가다듬겠다”고 밝혔다. 이는 야권통합과 총·대선 전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지지부진한 야권통합과 관련해 “정치는 목표를 갖고 나아가야 하는데, 현실보다 목표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면서 야권통합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권 행보에 대해 묻자 “대권 행보보다도 민주당이 당면한 과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 자리에서 손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의 역할 수행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문재인-손학규, 野 대권 경쟁 가시화
손 대표는 수도권을 지지 기반으로 두고 야권 주자 가운데 중도층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야권에서의 문 이사장에 대한 높은 관심과 여권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박근혜 전 대표 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반면, 문 이사장은 부산·경남이 기반이다. 그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상승세를 보이지만 정치가로서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문 이사장은 손 대표가 지지율 하락으로 놓친 젊은 층과 호남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두고 있어 야권 대선주자로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야권의 지지자들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찾는데, 문 이사장이 손 대표보다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그의 상승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 박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때까지 자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서리서치 김미현 소장은 “문재인 효과에 야권연대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그동안 야권 취약기반이었던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내년 총선에서 문재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손 대표는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대권 행보가 지지부진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다. 반면 문 이사장은 아직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손학규 대항마’로 거듭날 수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문재인-손학규의 야권 경쟁 구도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야권 전체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향후 여당의 대표주자가 나오면 야권 대항마로 누가 유리할지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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