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물폭탄’ 이후…주민들 만나보니
104년 만의 폭우… 강남 민심 바꾸나
2011-08-08 김규리 기자
“분명한 인재, 민주당도 똑같다”
“재해 방지 노력 없었다”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강남·서초 일대가 104년 만의 폭우를 당해내지 못했다. 특히 우면산 인근 아파트는 이번 수해로 사망자가 속출했고 현재까지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오세훈 책임론’이 거세게 일자 민주당은 오 시장이 수방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디자인 행정 등을 중시해왔기 때문이라며 청문회를 요구했고, 한나라당과 서울시는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우면산 산사태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서초구청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강남·서초 일대 주민들을 만나 이번 수해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수해 방지대책 외면한 ‘인재’
이번 수해를 두고 ‘인재냐 천재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피해가 컸던 우면산 사태를 두고 우면산 난개발로 인한 분명한 ‘인재’라는 목소리가 크다. 당초 서울시의 우면산 생태공원 조성 문제로 인한 ‘미리 예고된 결과’라는 것이 주민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실제 피해지역 주민들은 서울시와 서초구청에 대한 반발에 나섰다. 당초 우면산은 서초구청에서 ‘산사태 위험등급 1등급 지역’으로 분류했지만 그에 맞는 방지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실제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앞 부동산 관계자는 “우면산을 공원화 하면서 자연이 훼손됐다”며 서울시와 구청이 이번 산사태에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박모(29)씨도 “생태공원이다 뭐다 등산로 길을 만든다고 곳곳에 나무들을 잘라낸 결과”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와 관련, 우면산 피해지역 주민들의 집단 소송에 나섰다.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자치회는 지난 1일 지자체의 과실로 인한 산사태로 보고 서초구청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한다고 밝힌 상태고, 6명이 숨진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들도 지자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자체가 재해 방지를 위해 적절한 예방조치를 했는지를 놓고 주민들과 지자체 사이에 법정 공방이 전개될 전망이다. 이에 더해 구청이 산림청이 보낸 산사태 경고 문자메세지를 외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주민들은 이와 관련, 구청이 산림청의 경고를 무시했기에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산사태를 맞았다고 주장한다.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까지 큰 재난을 당한 건 예상된 일이었는데도 대비하지 못한 탓”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강남역 일대 주민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역 근처 진흥아파트는 물론 몇몇 빌딩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은 방지대책에 소홀한 시와 구청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일부 주민은 구청에 가서 “구청장이 물러나야 한다”며 언성을 높이고 항의 전화도 수차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오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이 이번 사태의 혼란을 키웠다며 비판하는 주민들이 상당했다.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 보여주기식 사업에만 몰두한 결과 정작 필요한 수해방지 대책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 김모(여·49)씨는 “오 시장은 겉멋에만 신경 쓰고 내실이 중요한 것을 모른다. 디자인 서울에만 치중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며 오 시장을 비판했다.
‘한나라당 텃밭’ 유지될까
오 시장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의 몰표 덕에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이례적인 폭우의 진원지는 강남·서초 일대다. 이번 수해로 수많은 피해를 입은 가운데 서울시의 대책이 논란이 되고 여론도 악화된 상황이다.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강남 일대에 이러한 큰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강남의 민심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되고 있다.
피해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번 수해만을 두고는 지지율에 크게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해와 관련해 단기적으로는 피해주민의 반발이 거세지만 내년 총선·대선까지 미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워낙 강남은 ‘한나라당의 텃밭’인데다 이번 수해를 두고 집값 하락과 연관돼있기 때문에 쉬쉬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는 것.
이와 관련,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앞 부동산 관계자 황모(40· 여)씨는 “강남·서초 사람들이 이번 일로 성질이 났지만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 사람만 그렇다. 그 일부가 총선, 대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로 끄떡도 안할 것이다. 이 쪽 사람한테 이로운건 한나라당”이라며 지지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대치동 주민 최모(여·52)씨도 “생각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총선·대선에 대해 떠드는 사람 없다. 강남 쪽은 뻔하기 때문이다. 강남 사람들은 보수가 많아 이번 사태로 큰 영향을 미치거나 기존의 지지가 흔들리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민주당이 이번 피해 관련 책임을 두고 오 시장과 서울시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주장하고 나선 것에 대해 내년 총선·대선 행보를 위한 ‘정치적 악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번 수해가 서울시와 서초구의 수해 방지대책 미비로 발생한 인재라는 입장에 동조를 하면서도 이 같은 반응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대치동 진흥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총선, 대선을 위한 한 표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피해대책을 똑바로 해서 민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 고모(38)씨 역시 “민주당이 이때다 싶어 악용을 하는 것 같다. 여태 손 놓고 있다가 일 터지니까 저러는 것 봐라.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 것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수해로 인해 24일 치러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강남역 근처 회사에 근무하는 박모(33)씨는 “주민투표에 쏟아 부을 돈이 있으면 수해복구에나 더 힘써 달라”며 “그렇게나 많은 예산을 들여 쓸데없는 곳에 쓰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여론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이 지금보다 부정적으로 확산된다면 오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그의 행보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규리 기자] oymoo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