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대북정책 4년 총정리

강경 일변도로 햇볕 가렸다

2011-08-02     조기성 기자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일각에서는 ‘남포대’(남북관계를 포기한 대통령), ‘안포대(안보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힐난한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컬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부른 것처럼 지난 4년 간 현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비꼰 말이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10년간 취해온 햇볕정책을 4년 동안 완전히 가려버렸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과 지난해 터진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지나면서 형성된 남북 대결국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시종일관 대북 압박정책을 폈다. 여기에는 ‘북한붕괴론’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리회담’ 이후 대화모드로 들어서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기본적인 대북관 변화 없이는 큰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정책을 내놓았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현하고 개방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으로, 북한이 남측 의도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남북대화는 물론 어떠한 지원도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의 변화’를 선결 조건으로 내건 이 제안은 지금까지도 공허한 구호로만 남아 있다. 이후 ‘그랜드바겐(일괄타결)’ 제안으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 상태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연 30만~40만t씩 제공하던 대북 식량·비료지원을 중단했다. 민간 교류도 ‘선별 승인’ 방식으로 통제했다. 2007년 정부와 민간 부문을 합쳐 2892억 원이던 대북지원 규모는 현 정부 출범 후 2008년 1163억 원, 2009년 837억 원으로 급감했다. 정부 부문만 계산하면 2007년 1983억 원에서 2009년 461억 원으로 2년 만에 76%가량 격감했다.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더욱 강경하게 대응했다. 2008년 3월 27일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의 남측 당국자 추방을 시작으로 그 해 12월엔 ‘남북간 육로통행제한’, ‘개성공단 체류인원 제한’ 등을 담은 12·1 조치를 시행했다. 2009년 1월에는 ‘전면적 대결태세 진입’을 선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2008년 7월 금강산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2009년 3~8월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 억류 등의 돌발사태가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기에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 사건과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사실상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김대중 정부는 두 차례 연평해전이 있었음에도 군사적인 문제와 남북관계를 철저하게 분리해 대처함으로써 남북관계에의 여파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두 사건(천안함, 연평도)에 대한 사과 없이는 남북관계 정상화가 없다는 일관성(?)으로 경색국면을 자초하고 있다. 더군다나 5·24 조치(천안함 사건 이후 내려진 대북 교류 제한조치)라는 압박정책으로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전술을 폈지만, 5·24 조치 이후 1년 동안 북중무역을 확대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석 연구위원은 “5·24 조치로 남북경협의 축소가 오히려 북중무역의 확대로 이어져 실제 북한이 받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대남 수출에는 타격이 있었지만 대중 수출이 크게 늘어 오히려 전체 대외 수출량이 증대했다. 대남 수출에서 대중수출로의 거래선 이전효과가 발생했다면 5·24 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희망 섞인 북한붕괴론, 남북관계 악화

이 대통령은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 기조를 마지막까지 견지할 태세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정책에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동결 상태로 남겨둘 각오가 돼 있던 것이 지난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났다.

주한 미 대사관은 2009년 1월12일 미 국무부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청와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고, “이 대통령의 보수 성향의 보좌진과 지지자들은 현재의 대치 상태가 어느 정도의 벼랑 끝 전술을 요구하는 것이더라도 북한을 몰아붙이고 더 약화되도록 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 2~3년 내에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미국, 중국 등과 향후 시나리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왔다. 지난해 2월 주한 미 대사관에 의해 작성된 전문에 따르면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 재직할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와 만나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됐으며, 김 위원장 사후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남북관계의 위기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북한붕괴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제기된 남북관계 진전의 필요성에도 불구, 이명박 정부는 북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워 남북대화를 결렬시켰다. 대화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보다 대화가 깨져도 상관없다는 고집이 더 셌던 것이다. 이는 조만간 북한이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에 근거한다. 연평도 포격 이후 북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이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언급하고 외교안보라인의 정책담당자들이 연이어 북한붕괴론을 거론한 것은 미중의 남북대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무용론과 협상무용론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근거였다. ‘어차피 곧 망할 나라와의 대화·협상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논리이자 정서였다.

북한붕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맹신(?)은 최근 중동발 자스민 혁명과 결부돼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는 무바라크에 이어 카다피까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 붕괴를 더욱 확신하는 한편, 남북대화 무용론과 북미협상 무용론을 미국에 설득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력 보수언론이 연일 북한 내부 소요설을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희망과 다르다. 자스민 혁명의 바람은 중국과 북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통일세’ 역시 ‘압박정책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통일세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현 정부가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면, 남북관계는 20년 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동해와 서해상에서 그리고 육상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미군과 함께 혹은 한국군 단독으로 끊임없이 군사훈련을 실시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미국·일본과 함께 경제제재를 가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북한과의 모든 경제적인 연계를 끊어버렸으며 인도적인 지원도 사실상 중단했다. 정부는 보수우파단체들의 ‘삐라’ 살포를 묵인·방조하고 있으며, 군에서는 북한 지도자의 초상을 과녁으로 삼아 사격연습을 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현 정부는 적대적인 대결정책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은 대화의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해 보였다.


발리회담, 대화무드 형성

이를 절감했는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될 상황이 되면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올해 신년연설에서 “대화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고 했고, 3·1절 기념사에서는 “우리는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5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내년 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50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제15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며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사과 없이는 대화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3년 만에 만난 데 이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비공식 접촉을 가졌다.

발리회담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6자회담 재개흐름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꽉 막혔던 남북관계에 전환점이 마련됐음에도 본격적인 대화로 나가기까지 여러 변수들이 남아 있다. 이번 회담은 본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라 남북이 마지못해 마주 앉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북한은 북미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남쪽과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필요했고, 한국 역시 미국의 남북대화 압박에 못 이겨 억지로 북한과 사진을 찍은 정도라는 것이다. 얼마 전 남북의 비공개 접촉까지 폭로하고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도 않겠다는 북한이었기에 발리 ARF 회담장에 갑자기 리용호 부상이 나타난 것은 전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 남북대화 재개 및 남북관계 개선에의 의지 표명은 결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연초부터 북한의 대화 제의를 계속 거부했고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한다는 3단계 프로세스마저 천안함 사과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는 소극적 입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발리회담은 전적으로 미국의 압박과 권유에 의한 것이지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경고성 최후통첩에 따라, 내키지는 않지만 발리 남북회담에 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이번 발리회담이 교착 국면의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청신호를 보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곧바로 남북관계 개선이나 남북대화 재개로 연결될 것이라 보는 건 시기상조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는 발리 남북회담 직후 북미협상이 시작되면서 일단은 추동력을 갖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외무장관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입북을 북에 요구했다. 그런데 우라늄 농축 중단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고 사찰단 입북은 이미 지난해 12월 빌 리처드슨 주지사 방북시 북한이 합의사항으로 제시한 것이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뉴욕 방문으로 당장 북미간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하겠지만 본격적인 북미협상을 앞두고 상대방의 요구와 의사를 타진하고 조율하는 예비접촉으로서는 나름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남북관계다. 본래 북핵 문제가 진전되면 그와 연동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또 남북관계 진전은 북미협상을 추동함으로써 다시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따라서 북핵 협상이 어렵사리 시작된 지금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다시 ‘천안함 사과’라는 실현 불가능한 전제 조건에 얽매여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를 놓친다면 향후 북미협상 진전과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는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외교적 실패로 북핵 협상에서 소외되고 어깨 너머로만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했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강경 대북라인 교체로 대화 의지 전달해야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8·15 광복절을 전후해 대북 강경파 참모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청와대의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4명 모두 ‘남북관계 원칙론자’ 내지 ‘매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들의 교체는 곧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변화의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결국 선택은 이 대통령의 손에 달린 상황이다. 8·15를 전후한 대북라인 교체 여부는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폭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