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근혜 ‘수재민 전략’ 노림수
‘수재민’ 박근혜, 피해자가 되고 싶었나
2011-08-02 조기성 기자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자신의 집에 물이 새는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저희 집도 물이 새서 한참 난리를 치렀습니다”라면서 “엄청난 물폭탄을 퍼붓는 하늘을 보고 또 보며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루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지난 27일 집중 호우로 자택 지붕에 물이 새, 거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고 집기가 물에 젖었다”며 “곳곳에 양동이를 대고 비를 받았으며, 박 전 대표가 직접 걸레를 들고 집기들을 닦았다”고 증언하고 나섰다.
차기 대선주자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자신도 수재민이라고 밝히면서 ‘가해자’ 아닌 ‘피해자’임을 부각시킨 셈이다. 피해를 입은 서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수해는 천재(天災)가 아니다. 4대강 사업 등 토목사업에만 올인한 이명박 정부에 의한 인재(人災)”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작 이명박 정부와의 공동·연대책임이 있는 박 전 대표는 이러한 ‘책임론’에서 피해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군다나 이러한 박 전 대표의 모습은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텃밭인 강남이 큰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과는 상반된다.
‘박근혜 대항마’를 꿈꾸는 정몽준 전 대표가 박 전 대표가 트위터에 글을 올린 지난달 28일 방배동 산사태 현장을 방문했고, 29일엔 홍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방배동 전원마을을 찾아 민심 수습에 나섰다. 이번 수해 피해가 막대한 만큼 어느 정도 피해 복구가 이뤄지면 본격적인 정치공세와 함께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서울 강남지역의 피해를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해방지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결과로 나타난 ‘오세훈 인재’”라고 공세를 퍼부으면서 이를 8월에 치러질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와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월 24일 투표를 강행하더라도 수해 복구 와중에 주민투표 성립의 최소 요건인 33.3%의 투표율을 달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특히 지지율이 높은 강남 지역에 이번 폭우 피해가 집중된 것도 오 시장 측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투표율 33.3%를 채우지 못한 채 끝난다면 오 시장은 수해 책임론에 이어 ‘무리한 투표 진행에 따른 혈세 낭비’라는 또 다른 정치적 책임론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의 ‘수재민 전략’은 피해 복구 작업이 본격화하기도 전부터 일고 있는 오 시장과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려는 노림수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트위터에 “기상이변이 계속되고 있지만, 계속되는 이변은 더는 이변이 아닐 것”이라며 “이제 과거와 다른 기준으로 선제로 예방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니만큼 거기에 모든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번 물폭탄 사태를 ‘인재’로 꼬집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이명박 정부가 재난 불감증에 걸렸다”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말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박 전 대표는 ‘수재민’임을 부각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동책임론에서 비켜서고, 나아가 이 정부를 비판하면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차별화된 대권플랜’까지 밝힌 셈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