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업노조 후원금 수사 잠잠한 내막
중앙지검 수사 우선순위서 배제…“수사 강도 높일 경우 역풍 우려”
2011-07-11 전성무 기자
후원금 수사 기소독점권 유지 위한 카드로
정자법 개정안 처리 여부 눈치작전 폈나
전성무 기자 =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기업노조의 입법로비(불법 쪼개기 후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숨고르기에 나섰다. 당사자 격인 정치권은 일단 급한 불은 껐다면서 쉬쉬하는 분위기다. [일요서울] 보도를 통해 알려진 기업노조의 쪼개기 후원금 사건은 그동안 주요 언론사에서 경쟁적으로 보도해 왔다. 하지만 정국을 뒤엎을 것 같던 파장은 최근 한 달 전부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한전 노조의 후원금 규모는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보다 약 5배 많은 13억 원에 이른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기업노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잠잠해진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처리하려다 무산된 정치자금법 개정안과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기업 노조의 입법로비 의혹은 지난 5월 “선관위가 한전 노조에 대한 불법 쪼개기 후원금 조사에 착수했다”는 [일요서울] 보도 이후 같은 달 선관위가 한전 노조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국내 주요언론사들은 취재경쟁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한전 노조 외에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기업 노조가 LIG손해보험·KDB 생명 등 100여 곳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업 노조의 입법로비 의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서 터져 나왔다.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각 노조에는 비상이 걸렸다. 민주노총은 검찰의 압수 수색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각종 정보가 담긴 노조 홈페이지 서버를 폐쇄하고 교체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한전 노조의 경우 후원대상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집중됐다. 앞서 본지가 정치권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리스트’에 따르면 한전 노조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금을 전달받아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은 한나라당 51명, 민주당 35명, 기타 19명 등 총 10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검찰 수사대상자는 한나라당 9명, 민주당 7명, 자유선진당 1명, 무소속 1명 등 모두 1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 대상자들은 1명(환경노동위원회)을 제외하곤 모두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쪼개기 후원금 의혹
정국 이슈서 배제
하지만 노조의 입법로비 의혹은 최근 정국 이슈에서 배제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정치권 차원에서 ‘민감한’ 부분을 터뜨리지 않기로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번 사건이 경우에 따라 특정 정당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여야 모두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핵폭탄 급 사안이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수사에 착수한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한 채 답보상태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아예 노조의 입법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수사 우선순위에서 배제시켜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주춤하는 사이 국회는 지난 3월 처리하려다 무산 된 정치자금법 개정안 기습 처리를 시도하려다 망신을 당했다. 지난 6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긴급 상정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인해 처리가 무산된 것이다.
이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지난달 국회의 최대 이슈는 검경의 수사권 조정 문제였다. 국민의 관심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 여부로 쏠리자 이 틈을 노려 정자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하려 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6월 국회에서 처리하려던 정자법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 특정 단체가 소속 회원의 이름을 빌려 후원금을 기부해도 처벌할 수 없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 VS 정치권 신경전 왜?
검찰은 그동안 정치권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국회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가 논의될 당시 중수부는 저축은행 부실운영 수사를 일시 중단했다. 일종의 ‘시위’ 차원이었다.
중앙지검이 기업 노조에 대한 수사를 수사 우선순위에서 배제시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회가 검경의 수사권 조정 문제로 첨예한 의견 대립을 벌일 당시 검찰은 기업 노조의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하면서 정치권을 압박했다. 하지만 정치권도 물밑에서 정자법 개정안 처리를 준비하면서 나름의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정자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할 경우 검찰이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행위시법이 아닌 현재시법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개정 이전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정치권을 상대로 자신들의 기소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놓을 카드가 없어지게 된다. 수사 강도를 높일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업 노조에 대한 수사를 뒤로 제쳐놓고 숨고르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 노조 후원금 관련 수사대상자 가운데 아직 기소한 인물은 없다”면서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되면 그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노조에 대한 수사가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답변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