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 7·4 한나라당 전대
그들만의 리그, 흥행은 없었다
2011-07-05 전성무 기자
[전성무 기자] = 7·4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당초 예상됐던 거물급 당권주자들이 대거 불출마하면서 시작부터 흥행요소가 반감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4·27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도부가 은근슬쩍 지도부 재입성을 노려 여론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에 더해 당권주자 7인 모두 새로운 비전제시보다는 ‘박근혜 대세론’에 편승해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와 개혁을 보여주지 못했다. 1인2표제와 여론조사 결과 30% 반영을 골자로 하는 전대 룰에도 제동이 걸려 한나라당은 초비상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한나라당 전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따져봤다.
한나라당의 이번 전대는 ▲거물급 후보의 부재 ▲출마 후보들의 ‘박근혜 마케팅’ 치중 ▲계파 갈등 재현 ▲전대 룰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 등 총체적인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민적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흥행실패 요인 1
거물급 후보 부재
한나라당 전대는 당초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 등 간판급 플레이어들의 전대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조기과열 기류가 엿보였다. 당권·대권 분리조항을 담은 당헌·당규가 현행대로 유지되면서 이들의 출마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런 이유로 당 안팎에서 이번 전대를 ‘마이너리그’라고 폄훼하는 등 시작부터 관심 밖의 리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박근혜 마케팅 현주소
“낯 뜨거워”
7·4 한나라당 전대 당권 후보들 모두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후보들은 전대 레이스 출발점부터 너나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구애작전을 펼쳤다. 부동의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대세론’에 편승하려는 의도다.
지난달 24일 첫 정견발표가 열린 대구·경북(TK) 비전발표회에서 7인의 후보자 모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를 강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유력한 미래 권력인 박 전 대표를 등에 업고 표심을 호소한 것이다. 이날 후보들은 TK 지역이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텃밭이라는 점을 의식하며 같은 지역 출신이면서 친박계인 유승민 후보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나경원 후보는 “TK가 고향인 유 후보와 손잡고 당 발전을 같이 하겠다”고 했고, 홍준표 후보도 유 후보와 함께 ‘제2의 고향’인 TK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남경필 후보도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도록 수도권의 젊은 표를 몰아주겠다”고 박근혜 마케팅에 동참했다.
이에 유 후보는 ‘지방후보 당대표론’을 강조함과 동시에 박근혜 마케팅 활용에 대한 불만감을 표출했다. 그는 “모든 후보가 박 전 대표를 잘 지키겠다는데 평소 구박하다가 선거 때가 되니 지키겠다는 것이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대전·충청권 비전발표회에서도 당권후보들은 어김없이 ‘박근혜 수호천사론’을 펼쳤다.
이렇듯 한나라당 전대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7인 후보들의 ‘백설공주를 둘러싼 일곱난쟁이’와 같은 모습만 지켜본 셈이 됐다.
흥행실패 요인 2
박근혜 마케팅 치중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는 전대 출마 후보자들의 ‘박근혜 마케팅’ 현상에 대해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이긴 것도 아니고, ‘박근혜 똘마니’를 뽑는 것도 아닌데 ‘박근혜 잘 모시겠습니다’고 아양을 떨어대는 모습이 과연 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보일 모습인가”라며 “표 때문에 구걸하는 듯한 태도들이 비굴하기 짝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기전대 개최 이유
까먹은 전 지도부
지금 한나라당은 조기전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퇴했던 전직 최고위원들이 다수 지도부 재입성을 노린다는 점도 전대 흥행 실패 요소의 한 축으로 지적받고 있다. 4·27 재보선 패배 책임론의 당사자들이 전대에 출마함에 따라 변화와 쇄신을 노리는 한나라당의 현 기류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대 흥행에 실패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줌에 따라 내년 4월 치러질 19대 총선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흥행실패 요인 3
계파 갈등 재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전대 출마자들이 따지고 보면 친박계에서는 서병수 전 최고위원에서 유 후보로, 쇄신그룹은 정두언 전 최고위원 대신 남 후보가 들어간 것 아니냐”면서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갈기갈기 찢어진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 봉합과 내년 총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사람인데 지금 후보들은 이런 대의명분에 따르기 보다는 당 대표 당선을 통해 내년 총선 공천권을 쥐려는 야심이 더 크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을 못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전 없는 후보들에
여론은 따가운 눈초리
7인의 전대 후보자들에게서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을 돌며 실시되는 후보들의 비전발표회에서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표를 의식한 제안만이 난무했다.
각 후보들이 지역 현안 조속추진을 강조하며 표심을 호소하지만 여론의 눈초리는 따갑다. 정치 전문가인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는 “당권 주자들이 제시한 비전에 실효성이 전혀 없다”면서 “표를 위한 표퓰리즘, 즉 당권을 잡기위한 표퓰리즘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당권 유력 4인방을 예로 들자면 홍 후보는 뭔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다. 원 후보는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지만 히든카드 치고는 너무 수가 보이는 얄팍한 수다. 나 후보는 타 후보와 차별화 되는 컨텐츠 있는 공약 내지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겉도는 좋은 얘기만 하고 있다. 여자라는 강점을 내세우는데 요즘은 컨텐츠가 없으면 국민과 당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유 후보는 최고위원의 역량을 갖추지도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친박계 대표주자라는 것 하나만 강조 한다”고 꼬집었다.
친이계 주류로 재등극하나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와 쇄신파 연합세력이 친이계를 구주류로 밀어내고 신주류로 등극했지만, 이후 ‘새로운 한나라’ 모임도 시들해지고 각자도생의 길로 다시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전대에서는 친이재오계와 친이상득계가 힘을 합쳐 다시 주류로의 등극을 꾀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상황이다.
홍 후보는 “특정 계파가 의원 등에게 특정후보 지지를 강요하며 반협박을 하고 있다”며 친이 구주류의 ‘원희룡 지원설’을 공격했다. 그는 ‘공작정치’의 주체나 특정계파가 미는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홍 후보의 측근 인사는 “이재오 특임장관을 중심으로 한 구주류가 내년 후보 공천권을 가지고 강요 또는 협박하고 있다”며 사실상 ‘이재오-원희룡 연대설’을 제기했다. 이 장관의 핵심 측근 인사는 이에 대해 “우리는 절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강력 부인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후보는 “홍 의원이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으면서 공작정치와 불공정한 개입이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며 “당당히 근거를 제시하라”고 즉각 반박했다.
흥행실패 요인 4
전대 룰 둘러싼 갈등
홍 후보의 폭로는 최근 원 후보의 약진에 따른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핵심 당직자는 “최근까지 홍준표·나경원 양강구도가 예상됐으나 대안 없는 친이계에서 원 후보쪽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자 다른 후보들이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위 효력정지에 ‘당황’
이런 가운데 전대를 수 일 앞두고 당 대표 선출 규정을 둘러싼 신·구주류 간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한나라당은 망신살을 뻗치기도 했다.
서울 남부지법이 지난달 28일 한나라당 전국위원회의 당헌 개정 의결 절차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구주류인 친이계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당권 주자 7명은 결국 정의화 비상대책위원장과 논의를 통해 현행 규정대로 전대를 치르기로 합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초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30% 반영하는 조항은 삭제하고, 선거인당 1인2표제를 1인1표제로 바꾸자는 것을 골자로 한 ‘비대위 원안’은 지난달 7일 열렸던 전국위에서 부결됐다. 친이계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원 후보가 대중성이 있는 홍 후보와 나 후보에게 밀린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여론조사와 관련된 조항에 민감하게 반응 했다.
한나라당의 전대 룰에 대해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이끈 사람은 현재 한나라당 중앙위 지도위원단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혜진(60)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언론에 “그날(지난달 7일) 친이, 친박, 소장파는 전부 비겁했다. 당이 민주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분통이 터져 마지막 방법으로 법원을 찾았다”고 밝혔다.
친이계는 그동안 선거인단을 당원 및 대의원을 포함해 21만 명으로 늘릴 경우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친이계를 주축으로 구성된 비대위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어론조사 반영을 없애는 당헌 개정안을 전국위에 제출했지만 친박계인 이해봉 의장이 전국위에 불참한 266명의 위임장을 내세우며 의결정족수를 채웠다고 판단, 비대위안을 부결 시켰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30일 진통 끝에 상임전국위원회의를 열고 비대위가 제안한 당헌 개정 심의안건과 전대 1인2표제 유지, 여론조사 30% 반영 등을 담은 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전대 이후 이에 대한 내부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