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2005-07-12     이수향 
서울대 입시안을 두고 정부 여당,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서울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서자 7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고. 그의 이 말은 그야말로 정부 여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도 ‘한판승부’를 벌일 뜻이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사실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정 총장의 발언은 자리를 건 자폭성 결의나 마찬가지이다.노 대통령이 지난 4일 “나쁜 뉴스”라고 발언한 이후 열린우리당이 서울대에 대해 ‘초동진압’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면서 전면전을 선포하자 노 대통령과 정 총장이 각각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는 등 여론몰이를 위한 맞불행보까지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대통령과 대학총장이 교육정책을 두고 충돌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정운찬 총장은 누구인가.1947년 충남 공주생(공주시 탄천면)인 그는 올해 만 59세의 비교적 젊은 신세대 총장이다.

그는 1966년 서울대 경제과를 나와 미국 마이애미 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1978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한 뒤 지난 2002년 서울대에 몸담은 지 만 24년만에 총장자리에 올랐다. 23대 총장이었다.교수 재직시절 그가 펴낸 경제통계학, 금융개혁론, 경제학원론, 화폐와 금융시장, 거시경제론 등의 저서는 대학생들의 기본서로 각광을 받으며 세칭 ‘정운찬학파’를 만들어냈다. 그가 50대의 나이에 서울대 총장에 기용되자 세간에서는 젊은 서울대,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맞는 서울대로 평가했다. 정 총장이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언젠가 정권이 그를 한은총재로 영입하려 하자 이를 단호히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부나비처럼 권력의 불빛을 좇는 세태 속에서 ‘한국은행 총재’직을 물리친 그의 결연한 의지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키우는게 현장(한국은행)에서 일하는 것보다 저에겐 더 의미있는 일입니다. 후학을 키움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게 제 몫이라고 보기 때문이고, 또 하나의 욕심은 우리 사회에서 찾기 힘든 ‘건설적 비판’ 세력으로 남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적 서울에서 살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고향인 공주로 내려가 그곳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다시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창경초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지나 부친이 작고해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다.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인생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산신령’ 조순 전 총리를 만난 것이었다. 1967년 서울대 2학년 시절 조순 전 총리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온 것. 그는 조 전 총리의 매력에 반해 나중에 미국 유학행을 결행할 정도였다. 조 전 총리와는 졸업 후 그가 한국은행 외환관리부 외환과 창구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만났다. 당시 조 전 총리가 우연히 한국은행에 들렀다 창구에서 일하는 정 총장을 보고는 “한국은행에도 창구가 있구먼!” 하면서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오라”고 했다. 나중에 집으로 찾아간 그에게 조 전 총리는 “오하이오주 마이애미대의 교수가 한국 학생 한 사람 보내면 잘 키워 주겠다고 했으니 가보라”고 말했다. 그 길로 그는 유학길에 올랐다. 마이애미대에서 1년 만에 석사를 끝낸 뒤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 총장은 ‘광적’으로 야구를 좋아한다. 그는 교수로 있으면서 강의 도중 야구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일부 학생들이 “미국 제국주의 스포츠”라고 힐난하자 그는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이다. 카스트로는 쿠바 야구 대표팀과 뉴욕 양키스의 시합을 관전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상당히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까지 경기를 성사시키더라”고 했다. 이 말에 학생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정 총장은 소신이 강한 학자이다. 그런 그가 서울대 입시안을 두고 정권과 물러설 수 없는 충돌을 벌이는 것은 자신의 소신을 꺾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사건을 노 대통령과 정 총장의 정면 충돌로 보는 까닭은 여러 가지이다. 서울대 입시안을 “사실상의 본고사 부활”로 보는 정권측과 “인재확보와 대학자율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양측의 격돌은 근저에 깔린 참여정부의 특권층 없애기 정책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입시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노 대통령과 정 총장의 정면 승부가 어떤 결말을 낳을지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