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협’을 위한 ‘농협중앙회’는 없다
농민재산 강탈하고 법인세 탈세도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되면서 지역농민의 자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지역농협은 공제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중앙회의 업무에 공제사업을 추가시켰다. 이 같은 법에 따라 중앙회는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하면서 지역농협이 보유하고 있던 보험 계약을 지주회사의 NH생명·손해보험회사로 이관시켰다. 그러나 수조 원대 자산이 이전 됐음에도 지역농헙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고, 법인세마저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노조는 지주사의 이 같은 행태를 규탄하며 지주회사체제의 해체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지역농협이 시작한 공제사업…먹거리 빼앗는 중앙회
7조 원대 보험계약 아무런 대가 없이 중앙회로 이관
전국농협노조는 지난 1일 서울역 광장에서 지역농협 노동자 총궐기대회를 열고 농업협동조합법 전면 재개정과 협동조합 사수, 지주회사 해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대회에서 민경신 전국농협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협동조합을 이명박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강탈당했다”며 “협동조합이 농민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 못하고 농민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못한다고 개혁하자고 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농협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고 먹기 좋게 썰었다”고 비난했다.
전국농협노조는 이날 대회에서 8대 핵심 투쟁요구안을 발표했다. 노조는 우선 현재와 같은 농협중앙회에 대한 출자방식 대신 연합회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현재 지역농협 조합장에게만 있는 농협중앙회 회장 선출권을 농민조합원 전체로 확대해 ‘농민이 주인이 되는 농협'을 실현하라고 요구했다.
이 밖에도 △지역농협-NH생명보험이 맺고 있는 보험상품 일반판매대리점 계약 폐기 △NH농협은행의 사업 재조정 및 신규 영업점 설치 중단 △지주회사에 강제 편입된 지역농협 자산 즉각 환수 △NH금융지주 및 자회사의 농협전산망 사용 금지 △지역농협과 농민조합원을 위한 농협중앙회로 혁신 등을 주문했다.
이 중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이 ‘지역농협과 NH생명보험이 맺고 있는 보험상품 일반판매대리점 계약을 파기하라’는 요구다. 이들은 투쟁결의문을 통해 “3월 2일 NH금융지주체제 출범 직후 지주회사체제 분리에 따른 부족자본금의 대부분을 지역농협 상호금융자산 4조 원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미리 준비해놓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지역농협의 예탁금을 NH생명보험주식회사의 보험상품 판매대금으로 강탈해 간 금융주식회사의 횡포에 지역농협 노동자의 분노가 일었다”고 주장했다.
농협노조의 이 같은 주장은 농협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지역농협의 보험 계약을 농협금융지주 산하의 NH생명보험과 NH손해보험으로 이관하고도 중앙회가 지역농협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사에서 대리점으로 전락한 지역농협
농협보험의 출발은 지역농협의 공제사업에서 시작됐다. 공제사업이란 조합원으로부터 받은 출자금을 바탕으로 조합원의 갑작스러운 사고나 손실이 발생했을 때 공제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위험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험과 유사하지만 조합원만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 일반보험과의 차이점이다. 지역농협은 1961년부터 공제사업을 시작했고, 중앙회는 지역농협이 유치한 보험 계약에 재보험을 들어주는 지원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2000년 ‘회원 조합을 위한 공제사업’에서 ‘회원 조합을 위한 공제사업 등 공제사업’으로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농협 보험의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이때부터 중앙회는 산하 농협은행을 통해 직접 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역농협의 먹을거리를 조금씩 빼앗는다는 비판을 듣게 됐다. 지난해는 아예 단위농협의 ‘사업 영역’ 중 공제사업을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고, 농협중앙회의 ‘사업 영역’에 공제사업 규정을 신설하도록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했다.
이때부터 지역농협이 보유하고 있던 보험 계약이 NH생명보험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지역농협은 원수보험사업자의 지위를 잃고 위탁 판매만 하는 보험판매대리점으로 전락했고, 지원업무를 하던 농협중앙회는 원수보험사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농협중앙회는 막대한 자산을 지역농협으로부터 이관해 오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 농민들의 자산을 수탈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수천억 원대 법인세 탈루 의혹도 제기돼
농협중앙회는 또 농민들의 자산을 가로챈 데 이어 법인세까지 탈루했다는 의혹도 불거지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까지 별도 법인이었던 지역농협과 NH생명보험 간에 자산 이동이 이뤄졌음에도 증여세 등의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은 것이다.
지역농협이 보유하고 있다가 NH생명보험으로 이관된 보험 계약의 규모는 7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규모의 보험 계약 가치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보수적으로 산정해도 1조 원은 넘어서리라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증여세의 세율이 22%인 점을 감안하면 농협중앙회는 최소한 2200억 원 이상의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농협중앙회는 세금을 납부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NH생명보험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지역농협이 원수보험사업자로 돼 있었지만 사실상 중앙회에서 상품개발 및 보험금지급 심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보험회사 역할을 했고, 지역농협은 보험의 판매 등만 전담하는 전속대리점의 역할을 했다”며 “따라서 지역농협이 가지고 있던 보험 계약은 원래 중앙회의 자산이고, 자산의 이동이 있었다고 볼 수 없어 증여세 등의 법인세를 납부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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