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이코패스'(푸른수염 이야기), 13개의 에피소드 사이코패스는 누구...

간만에 제대로 등장한 19세 이상 관람가 작품

2012-09-10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는 2012 시즌 다섯 번째 작품으로 공동제작 ‘사이코패스-푸른수염 이야기’를 오는 22일부터 다음날 7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2008년 ‘진과 준’이후 박상현 연출이 오랜만에 창작희곡을 쓰고 연출하는 ‘사이코패스-푸른수염 이야기-’는 파격적인 주제만큼이나 연극 미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소년 ‘명보’가 고아원 원장에게 성폭행 당하는 누나를 목격한 후 차례차례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한 사이코패스가 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묻는다. 과연 사이코패스는 ‘명보’ 한 사람일까.
 
사이코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정의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며 책임감 없고, 지배적이고, 착취적이고, 거짓말을 잘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내려진다. 이런 장애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섬뜩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면서 연극 ‘사이코패스’는 흥미를 더한다.
 
모두 1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사이코패스>는 관객을 극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연쇄살인범 ‘명보’를 포함하여 그를 둘러싼 증인들을 연기하는 16명 배우들의 엇갈리는 증언은 마치 나열된 퍼즐조각처럼 펼쳐져 있다. 관객은 140분간 이 퍼즐조각을 맞춰가며 사건의 진실을 파악한다. 작가는 연쇄살인이라는 잔혹성과 변태성을 조직폭력배, 검찰, 재벌 경영진, 정부 홍보담당관들 등 사건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2012년 대한민국의 정치사회를 풍자하고 조롱하면서 어느새 코미디로 버무려내는 능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작품의 부제 ‘푸른수염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사이코패스’에는 샤를페로에 의해 지어진 ‘푸른수염’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류사 최악의 연쇄살인범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질 드레 백작이 소녀 300여 명을 죽인 전설을 그린 이 작품은 이후 그림형제, 피나 바우쉬의 무용, 바르톡의 오페라로 변주될 만큼 잔혹동화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푸른수염’ 동화를 극 중 에피소드로 넣으면서 동화를 바탕으로 한 비현실성을 주된 분위기로 제시하고 있다.
 
 
 
 
사이코패스인 명보로 인한 연쇄살인사건들은 변태적 자학성, 섹슈얼 코드들을 담고 있는 한편 명보를 둘러 싼 증인들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한국 정치사회를 일견 풍자한다. 단란주점 ‘블루하우스’에서는 출세를 꿈꾸는 검사들의 밀담이 은밀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지하벙커에 모인 재벌기업 자녀들은 긴급회의를 통해 동네치킨, 동네피자 진출방안을 넘어 폐지수집대행업을 모색한다. 명보가 죽인 희생자의 가족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명보의 유품으로 연쇄살인범 박물관 건설 공모계획을 두고 지역경제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위로금을 협상하고 있다. 강간과 연쇄살인이라는 하드코어는 이처럼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와 정치사회 풍자 코미디로 버무려졌다.
 
연극 ‘사이코패스’는 희대의 살인마 제프리 다머에게서 영감을 얻어 씌어졌다. 박상현 연출은 수년 전 오늘의 기사를 더듬는 작은 박스에서 우연히 제프리 다머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역사상 최악의 시리얼 킬러(serial-killer, 연쇄살인마)로 회자되는 제프리 다머는 동성애자였는데 10대부터 30대까지 남성들을 17명이나 살해 했으며 잘라낸 머리를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 법정에서는 인육을 먹은 사실까지 인정했다. 결국 그는 감옥에 함께 수감되었던 흑인 죄수에게 맞아서 죽었다. “왜 죽이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그의 말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다머가 죽은 후, 다머의 고향사람들 및 피해자들은 다머가 남긴 재산이나 소유품을 수집 및 압류하여 사이코패스 박물관을 세우겠다며 나선다.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은 이런 이상한 박물관이 세워지면 집값이 떨어지고 마을의 이미지만 안 좋아진다고 막아선다. 양자가 대립하다가 결국 지역사업가들이 어마어마한 돈으로 다머가 남긴 모든 유품들을 사들여 소각해 폐기해버린다.
 
연극 ‘사이코패스’는 제프리 다머의 살인행위나 죽음보다도 그가 죽은 이후 주변인들의 행각에 집중하게 되면서 구상하게 되었다.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하는 명보가 극악하게 살해하고 체포된 뒤 그가 살던 마을주민과 지역상공인들이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고 사업적으로 달려드는 장면을 삽입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그린피그의 두 번째 공동제작 작업인 이번 ‘사이코패스’는 2011년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에서 밴드 ‘얄개들’과 함께 콘서트와 드라마가 합쳐진 ‘콘써라마’로 새로운 장르 실험을 했던 윤한솔이 연출로 참여하고 있다.
 
 
 
 
*사이코패스란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에 속하는 하위 범주로서,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얕은 감정, 자기중심성, 남을 잘 속임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정서, 대인관계에서는 공감 능력 부족, 죄의식, 양심의 가책 결여를 특징으로 하고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피상적이고 불안정하다. 대인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이고, 과대 망상적, 지배적, 착취적이며, 거짓말과 교묘한 조종에 능하다. 행동 내지 생활양식은 충동적이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며, 행동제어가 서투르고, 자극을 추구하며, 책임감이 없고, 사회규범을 쉽게 위반한다. 이러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망상, 비합리적 사고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병(psychosis)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치료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시: 9월 22일 ~ 10월 7일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등급: 대학생 이상 관람가
주관: 서울문화재단, 극단 그린피그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