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함께 사라진 한대화 감독, 이것이 최선이었나?
계약기간 보장이 구단의 원칙이라더니…
[일요서울l강휘호 기자] 결국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한화의 수장이었던 ‘야왕(야구의 왕)’ 한대화는 재임기간 마지막 한 달을 버티지 못한 채 지난달 28일 씁쓸한 퇴위를 맞았다.
사실 한대화 감독의 사퇴 자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한 감독이 취임했을 당시 한화의 성적은 8위. 하지만 한 감독 체제로 바뀐 후 또 다시 8위를 거뒀다. 그나마 2011 시즌에 거둔 최고 성적마저 6위에 머물렀다.
더욱이 이번 2012 시즌에서는 박찬호와 김태균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때문에 계약이 만료된 후 재계약은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정된 수순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퇴진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구단의 태도에 있다.
앞서 한화 구단은 몇 차례에 걸쳐 한대화 감독의 경질설에 대해 “교체는 생각하지 않는다. 계약기간은 보장한다는 것이 구단의 원칙이다”라고 공표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공식적 입장과는 다르게 이미 구단 내에서 한대화 감독의 입지가 크게 줄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 구단은 5월초 팀 성적 부진을 타파하기 위해 코칭스태프 강제 개편을 단행했다. 당연히 한대화 감독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앞에서는 사퇴를 만류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뒤에서는 결국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실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화 측은 한 감독의 퇴진이 ‘자진사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 감독이 27일 단장과 면담 도중 스스로 사퇴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구단 측이 먼저 경질을 통보하고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한화가 한 감독의 뒤통수를 친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의리와 신용’은 없었다…흔들리는 한화
한 팀의 수장으로서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 명장의 덕목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한 감독의 경질 과정에서는 한화 스스로가 그들의 사훈격인 ‘의리와 신용’을 저버렸다.
지난 2009년 감독직을 수락한 후 올해까지 3년간 한화를 이끌어온 한 감독은 현 8개 구단 사령탑 중 넥센 김시진 감독에 이어 한 구단에서 가장 오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다.
그만큼 한 감독의 지휘를 받아오면서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이에는 매우 큰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존재다. 결국 한 감독의 ‘중도 해임’은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화의 전체 타선을 짊어지고 있는 김태균이 해임 당일인 28일, “(감독 경질은)선수단의 책임이다. 특히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라고 한 말은 현재 한화 선수단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대체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가 얼마나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인가. 결론적으로 ‘감독 경질’의 후폭풍이 전체 한화 선수단의 심리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수장을 떠나보냈다’는 공허함과 ‘이렇게 된 것이 결국 내 탓’이라는 자괴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한화 프런트는 한대화 감독이 물러난 뒤 ‘감독대행’의 자리를 맡게 된 한용덕 수석코치에 대한 배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감독대행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지언정 벌써부터 ‘새 감독’을 운운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구단들이 감독대행 체제 중에는 ‘차기 감독’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기피해왔다. 그게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의 노재덕 단장은 “좋은 감독을 모셔오겠다. 김성근 감독도 감당 못할 것 없다”는 경솔한 발언을 쏟아내 팀 분위기를 더욱 어수선하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말한 김성근 감독은 지난 29일 고양 원더스와의 재계약을 발표해 한화는 또 한번 스스로 정신적 붕괴 상태를 겪어야 했다.
비록 같은 날 한 감독의 퇴진 후 첫 경기인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7-6의 승리를 거두며 4연패에서 벗어났지만, 한동안 한 감독의 퇴진 여파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화 프런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누가 어떻게 했다’는 언론보도가 아니라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조용히 수습해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 것만이 유일하게 선수단과 감독대행, 나아가서는 팬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방법이다.
감독과 성적 그 특이한 상관관계
모든 스포츠 감독들은 자신이 맡은 팀의 성적과 운명을 함께 한다. 성적이 좋다면 그만한 대우가 따르고, 성적이 저조하면 비난과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팀에 녹여줄 수 있게 그 뒷받침을 해주는 것은 분명 구단의 몫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법한 스포츠 감독 알렉스 퍼거슨.
다들 알다시피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이 지난 7년간 몸담았던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다. 그는 지난 1986년 팀의 사령탑 자리에 오른 후 26년 간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수많은 선수가 오가고 수많은 구단주가 자리를 옮겨도 그의 감독 자리만은 변함없이 흘러왔다.
물론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항상 우승을 다투는 실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기는 하지만 맨체스터에는 타 구단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 한 가지가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은 맨체스터 전력의 반을 차지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감독 특유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선수가 와도, 잘나가는 스타플레이어가 없어도 언제나 자신만의 축구를 선보여 우승 다툼을 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26년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자 배경이다.
다시 한국 프로야구로 넘어와서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이 자신만의 팀 색깔을 가지고 있는 팀을 찾아보면 김응룡의 해태, 김성근의 SK 정도가 전부다. 두 감독 모두 18년과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만의 팀을 완성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한대화 감독이 팀을 이어 받은 것이 2009년, 그가 본격적으로 팀을 이끌기 시작한 지는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그 2년마저 자신의 뜻과 안목으로 팀을 운영할 수 없게 만든 구단은 대체 어떻게 감독으로서 역량을 보여주길 기대했던 것일까.
구단이 감독을 선택했다면 감독을 믿고 맡겨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입증시킬 시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팀 색깔을 입히고 실력을 발휘해내는 것이 구단도 감독도 상생하는 길이다.
또 나아가 팬들을 위한 길이 된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났다. 세계 어느 팬도 똑같은 플레이만 하는 8개 구단이 치고받는 싸움을 보며 만족하지 못한다.
지난 1985년 6월 21일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인천 롯데전)를 끝으로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인천, 그리고 경기와 강원도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팀이 있다.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다. 그들은 비록 3년 5개월 동안 120승 211패 3무(승률 .363)라는 처절한 기록을 남긴 채 길지 않은 역사를 마감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야구와 이야기가 있었기에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이처럼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이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길 원한다. 더불어 그들만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한다. 때문에 이것이 감독이 성적만큼이나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부분이며, 구단이 감독의 성적만 따져서 시간을 잘라 내버리면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