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 선진당 전당대회 부정 정황 찾아내
선진통일당 유령당원 1000여명 이인제 위기
[일요서울|오병호 프리랜서] “하이에나와 콘도르가 죽어가는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선진통일당과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비유해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선진당에 대한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최근 선진당 경선 부정 의혹과 관련, 유령당원 1000여 명이 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부정에 개입한 정황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진당은 경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대책마련에 고심 중이다. 최근 선진당은 대선을 앞두고 핵심인사들의 탈당 움직임에 내홍을 앓고 있다. 이인제 선진당 대표는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당을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당 내분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선진당에 대한 경찰수사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른 가운데 선진당의 향방은 대선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내부에서는 선진당 핵심인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인제 당 대표직 상실 위기 선진당 공중분해 현실화
선진당 경선 부장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곧 선진당 주요 관계자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인 후 사건을 검찰로 넘길 계획이다.
선진당 일부 당직자는 “당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5월 29일 전당대회가 불법적으로 치러졌다”며 이인제 대표와 박상돈 최고위원, 윤형모 윤리위원장 등을 지난 6월 경찰에 고발했다.
이치수 중앙당 전략기획위원장, 전덕생 경기도당위원장 등 고발인 측은 “전당대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중앙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자격이 없는 유령 대의원을 만든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전당대회 일주일 전인 5월 21일까지 당원 등록이 완료된 자 중에서 대의원을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규정을 어기고 21일 이후 중앙당이 입당원서를 대량으로 급조한 뒤 이들에게 대의원 자격을 줬다는 것이다.
고발인 측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인천·경기도 등 자료가 확보된 세 곳(총 대의원 수 792명)에서만 유령 대의원 수가 400명이 넘는다. 이외에도 나머지 13개 시·도당까지 포함하면 재적 대의원 2100여 명 중 1000명 안팎이 유령 대의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찰이 고발장에 첨부된 대의원 명부·입당원서 등을 근거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뚜렷하다. 대의원 자격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입당원서 제출 날짜가 대부분 누락돼 있을 뿐 아니라 자필 서명조차 없는 엉터리 입당원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인제호 좌초위기
경찰에 따르면 유령 대의원 의심을 받는 이들 중 상당수가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진술도 뚜렷하지 않고 제각각이다. 입당 날짜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식이다. 일부 대의원은 자필 서명이 없는 것에 대해 “직접 서명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또 경찰은 입당원서가 5월 21일 이후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당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 며칠 전 급하게 확보한 명단을 가지고 조직 1국에서 컴퓨터로 일괄 작업해 입당원서를 만들었다”며 “당직자들이 퇴근한 뒤부터 오전 1~2시까지 은밀하게 작업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전당대회 직후 당 고위 인사가 급조된 당원 1200~1300명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잘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주로 향우회, 계모임 같은 친목단체나 노인단체 등을 통해 명단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명단에 포함된 이들 중 상당수는 70~80대 고령자들이다.
이에 대해 이치수 전략기획위원장은 “공당(公黨)에서 당원 대표인 대의원을 급조해 선거를 치르는 행위는 과거 자유당 시대 때나 가능했던 일”이라며 “요즘같이 투명한 사회에 어떻게 이런 일을 도모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당 대표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대의원 411명 중 210명이 유령 대의원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시당의 경우 5월 초까지 새누리당 당원인 인사도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친목회 간부 권유로 회원 20여 명이 전당대회 며칠 전 선진당에 입당해 대의원이 됐고, 이 중 1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한 의혹이 있어 이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진당 측은 대의원 자격 부여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광식 대표 비서실장은 “경쟁 후보 측이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 선관위가 대의원 자격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고발인들은 특정 목적을 갖고 전당대회를 방해했고 자신들의 뜻이 이뤄지지 않자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인제 대표는 고발인 측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공정하게 치러진 경선에서 정치적으로 음해할 목적으로 뒤늦게 유령 당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을 위해서도 올바른 처사가 아닌 것 같다”며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로 당 내부가 혼란스러워진 점에 대해 대표로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고발인 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고발인 측은 경찰 수사가 검찰로 넘어가는 시점에 당 대표와 최고위원 직무정지 가처분신청도 낼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당 내분사태의 심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위기의 선진당 해법은?
선진당을 흔드는 것은 이뿐 아니다. 고발 사태 이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진당 의원에 대해 ‘공천헌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4·11 총선을 앞두고 선진통일당에서 거액의 공천헌금이 오간 정황을 포착하고 선진당 당직자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수권)는 지난 7일 선진당 송찬호 조직국장, 김광식 대표비서실장의 자택에 수사관들을 보내 각종 서류와 통장을 압수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에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송 국장과 김 실장, 김영주 선진당의원, 심상억 전 정책연구원장 등 선진통일당 관계자 4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에서 김 의원에 두고 있는 혐의는 지난 총선에서 후보자 선정과 관련해 비례대표 공천을 받는 대가로 공천심사위원인 선진당 김 실장과 심 전 원장 등에게 50억 원을 주기로 약속을 하는 등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4·11 총선에서 회계책임자이자 공천심사위원이었던 김 실장과 심 전 원장은 비례대표 공천을 조건으로 김 의원에게 50억 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고, 김 의원은 이를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 국장은 정당 정책개발비를 당직자에게 지급한 뒤 반납 받는 방식으로 1억5000만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해 운용하고, 선거홍보물 거래업체로부터 3억여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4ㆍ11 총선 지역구 후보자 3명에게 불법지원한 혐의다.
선관위에 따르면 대한전문건설협회 부산광역시회 명예회장 출신으로 선진당에서 최고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 의원은 제19대 총선의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다음 지역구 후보로는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선진당에 50억 원의 차입금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관위는 선진당 총선 지역구 후보자였던 김낙성 전 원내대표, 박상돈 최고위원, 류근찬 전 최고위원 등 3명도 당으로부터 각각 5000만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회계보고를 하지 않고 불법 지출한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공천헌금을 주고받기로 약속을 했지만 실제 돈이 오고 가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 “지난 7월 30일 대검찰청에 김 의원 등 3명을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민주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범죄로 보고, 압수수색과 관련 자료 확보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선진당이 위기에 내몰리자 정치권은 선진당의 이 대표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대표가 충청권에서 영향력이 있고 조직도 살아있는 만큼 이대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대표를 비롯한 선진당 핵심부가 검·경 수사와 관련해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쪽에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충청표가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선진당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어서다. 선진당은 당의 내분 등 안팎의 혼란을 잠재우고 대선을 준비하는 게 시급하다. 따라서 양 당과의 접촉을 통해 대선 지원 협력안과 협상안을 조율하고 있다는 소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선진당은 대선 지원 협력안을 놓고 새누리당·민주당과 조율하고 있지만 양측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선진당이 핵심인사들이 탈당의사를 보이고 있는데다 선진당 이 대표가 수사결과에 따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있어서 좀 더 두고 보자는 입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