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이름값 못하는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AP’, 더 이상 통하지 않나
- 일부 브랜드만 ‘고가스타일’로 선전…나머지는 고전 중
- 서경배 사장, 부진한 고가브랜드 AP 껴안기 논란까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아모레퍼시픽(사장 서경배)의 성적표가 뒤죽박죽이다. 설화수와 같은 일부 고가브랜드들은 약진하고 있으나 마몽드 등 중저가브랜드들은 대부분 경쟁사에 밀려나 맥을 못 추고 있다. 게다가 화장품 외에 야심차게 투자한 녹차 등 음료사업도 적자를 기록했다가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우려 섞인 목소리가 크다. 그 현황을 들여다봤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언제 업계 정상 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성장률은 경쟁사인 LG생활건강(부회장 차석용)의 성장률보다 훨씬 둔화돼 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화장품 부문 이외에 음료와 생활용품 부문의 매출은 일부를 제외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때문에 대대적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1ㆍ2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1위임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특히 고가브랜드들과 중저가브랜드들의 간극이 큰 것이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설화수 등 몇몇 고가 인기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들은 점차 부진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초기에 자리를 잡지 못했던 에뛰드와 이니스프리 등 브랜드숍은 제자리를 찾으며 성장하는 추세지만 나머지 중저가브랜드들은 전과 달리 고전 중이다.
사실상 중저가브랜드들의 부진은 아모레퍼시픽이 판매채널을 좁힌 탓이 크다. 기존에는 중저가브랜드들이 자사 화장품매장만이 아닌 타사 화장품매장에도 폭 넓게 유통됐지만 지금은 자사의 멀티브랜드숍인 아리따움과 홈쇼핑, 마트 등을 통해서만 유통된다. 유통망을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기존의 유통망을 끊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아리따움의 매출이 저하되면서 폐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에 따르면 지난해 폐점한 아리따움 매장은 77곳이다. 같은 기간 개점한 곳은 137곳으로 신규로 2곳이 생기면 동시에 기존의 1곳이 문을 닫는 셈이다.
방문판매도 점점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태평양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방판은 핵심적인 화장품 유통채널로서 자리를 굳건히 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이후 방판 실적은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이면서 경쟁사들에게 시장점유율을 내어 주고 있다. 200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의 방판 시장점유율은 50%가 넘었으나 지금은 33%에 그치는 형국이다.
게다가 음료와 생활용품 등 비화장품 부문의 실적은 화장품 부문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사인 LG생활건강이 화장품 부문 못지 않게 비화장품 부문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준의 실적을 거두는 것과 대비된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뒤늦게 지난 6월 제주도에 녹차 생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 사장, 오너경영인의 자존심 구겼다
흔히 아모레퍼시픽의 라이벌로 비견되는 LG생활건강의 수장이 차석용 부회장이다. 전문경영인인 차 부회장은 오너경영인인 서 사장과 미국 코넬대 동문으로 경쟁사인 LG생활건강에 부임해 눈길을 끌었다.
차 부회장은 적극적인 M&A로 몸집을 불리면서 LG생활건강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지난 2분기에는 화장품 부문은 물론 생활용품과 음료 부문 모두 1조 원대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으며, 부임한 지 5년 만에 주가를 15배나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말에는 원래의 사장 직급에서 부회장 직급으로 승진하면서 타사지만 오너인 서 사장보다 도리어 한 단계 높은 직급을 갖게 됐다.
그와 비견되는 서 사장은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의 아들로 2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인 차 부회장이 승진하면서 주목받던 때에도 서 사장은 부진한 실적으로 머리를 싸안아야 했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의 실망스러운 실적들은 아모레퍼시픽의 구조조정설 등 설왕설래의 배경이 됐다.
일각에서는 서 사장이 고가임에도 힘을 잃은 글로벌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AP)’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AP는 해외 매출이 제자리걸음하는 것은 물론 국내 매출까지도 갈수록 저하돼 지금은 네임밸류만 있는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대내외에서 AP에 대한 우려가 늘어가고 해외시장 철수설이 나돌아도 서 사장의 ‘AP 싸고돌기’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 사장이 특정브랜드만 감싸 안는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LG생활건강과 라이벌로 비견되는 시각 역시 두 기업의 성장그림이 다르기 때문에 라이벌로 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