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1% 제외하고는 빈곤의 악순환…연예계 부익부빈익빈
‘억’대 연봉 vs ‘억’ 소리 나는 생활고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화려할 것만 같은 연예계에서도 부의 양극화와 편중 현상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1%에 해당하는 톱스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수록 나머지 99%에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가고만 있다. 종편 출범 등으로 회당 출연료 수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받는 연기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고액 개런티를 극소수가 독점하는 식이다. 반면 연기자의 대다수가 몇 년째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승자독식의 양극화 현상은 별세계로 여겨지던 연예계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 최근 몇 년간 연예계 양극화가 눈에 띄게 심해지면서 죽음으로 도태를 택하거나 사기사건, 절도 등 범죄 행위에 연루되는 연예인의 소식들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는 과거 인기 많은 스타였으나 현재는 가요계 ‘퇴물’이 돼 버린 윤빈(김원준)의 초라한 현실이 나온다.
왕년에 수많은 소녀 팬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던 윤빈의 현실은 180도 달라졌다. 비좁은 옥탑방에 기거하고 컵라면 하나 사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화려했던 과거 영광에 머물러 있다. 자신의 비참한 현주소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던 윤빈은 ‘자신은 여전한 스타’라는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 옥탑방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낸다.
이 같은 모습은 현 연예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의 경우 이미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남들의 이목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부업이나 아르바이트 등 사회·경제 활동에 나설 경우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제약을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 연예계에서 최고 개런티를 받는 특A급 스타 숫자는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른바 ‘3000만 달러 클럽’에 들어가는 배우 숫자는 10여 명밖에 안 된다.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연예인이 사실상 ‘빈곤층’에 속한다고 연예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 활동을 하는 연예인의 경우 활동할 기회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냉정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방송 및 영화 시장이 다각화되면서 연예인의 수명도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고 인기의 기복도 크다. 선호도의 주기와 세대교체가 빨라지면서 현재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스타’라고 하더라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과거에 비해 ‘롱런형 연예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견급 연기자도 ‘생활고’
빠르게 변화하는 연예가 시스템은 중견급 연기자도 생활고의 덫에 빠지게 했다.
중견급 연기자 A(46)씨의 아내 김모(38)씨가 생활고를 이유로 세 아들을 모텔에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전국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김씨 부부는 각각 3세, 5세, 8세의 세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올해 들어 김씨의 연기 활동이 뜸해지면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최근까지 조연과 단역으로 브라운관에 꾸준히 얼굴을 비췄지만 올해 들어서는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김씨가 연예계 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김씨 가정은 생활고에 직면했다. 김씨는 친척과 지인 등 주변에 생활고를 호소하며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대의 돈까지 빌렸다. 심지어 자녀의 유치원 교사에게 까지 돈을 빌렸다.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가고 더 이상 돈 빌릴 곳이 없어지자 급기야는 사채에도 손을 댔다.
김씨는 이른바 ‘돌려막기식’으로 채무를 감당해오다 지난 4일 A씨에게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부부는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됐다. 김씨는 급기야 부부싸움 다음날 세 아들을 데리고 가출,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한 모텔 객실에 투숙했다.
채무로 전전긍긍하던 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모텔 객실에서 세 아들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차례로 살해한 것이다. 결국 김씨는 지난 10일 가출신고를 받고 수사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숨진 아들 3명은 발견 당시 객실 침대에 이불을 덮은 채 나란히 누워 있었고, 김씨는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 아이들을 살해했다”라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으로 단란한 가정이 한순간에 무너진 A씨는 “처음 소식을 접하고 넋이 나갔다. 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세상이 증오스러웠으나 이제는 용서했다. 내가 죄인이다"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내가 아이들 키우느라 내가 모르던 빚이 있었고 사채까지 쓴 줄은 몰랐다”라고 개탄했다.
범죄에 덫에 빠진 스타
한 때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연예인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원조 아이돌그룹 젝스키스 출신 강성훈의 사기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역시 동기는 ‘생활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에 H.O.T와 양대 산맥을 이루던 가요계 톱스타였던 젝스키스 메인보컬 강성훈은 사기 혐의로 구속돼 팬심을 멍들게 했다. 강씨는 2006년부터 총 3명으로부터 10억 원가량의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피소, 지난 3월부터 성동구치소에 수감됐었다.
팬들은 집단으로 ‘강성훈이 과거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금의 팬들이 있게 한 스타다’라는 내용 등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검찰은 징역 4년 형을 구형했다.
수의를 입고 나타난 강성훈은 최후 변론에서 “죄송하다”고 말문을 연 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점, 잘못했다. 이유 불문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한다”며 사죄의 뜻을 거듭 전했다. 이어 “구속 전 (변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돼 죄송하고 아쉽다”며 눈물을 보였다.
사기 등의 혐의로 구형을 받은 연예인들은 강씨뿐만이 아니다. NRG 출신 이성진이 도박과 사기 혐의로 징역 1년과 벌금 500만 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개그맨 곽한구가 외제차 절도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무명의 연예인들이 생활고 등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해 우려를 사고 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은 중견급 연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6월 신인 연기자 정아율씨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수 연습생으로 오랫동안 연예계 입성을 준비하다 연기자로 전향해 아침드라마에 출연했었던 정씨는 무명의 고충을 비관해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고 만 것. 정씨는 자살을 하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것도 위로가 안돼”라는 자살 암시글을 올려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는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자살동기는 찾지 못했지만 주변 지인들의 진술을 보면 우울증,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했으며 생활고도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환갑을 목전에 둔 중견배우 남윤정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 세간의 안타까움을 샀다. 남편과의 사별로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남씨는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체를 관리하면서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고인은 스스로 목을 매 숨졌고 딸에게 짧은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생활고 등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남씨는 다수 작품에 출연하며 최근까지 활발한 연기 활동을 계속해 왔던 터라 더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관계자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수요는 많으니 그것을 충족시켜줄 창구는 너무나 적다”며 “연예계 환경은 점점 후퇴되고 있으며 특히 급여 등은 사실상 흑백텔레비전 이전 시기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년연기자 몇몇 인물 독식
연예계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중년연기자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부모 역할을 몇몇 인물이 독식하다시피 하는 것. 때문에 특정 연기자 몇몇을 제외하고는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다.
한연노 관계자는 “외주제작이 이뤄지면서 스타PD, 스타작가, 스타 연기자 등 몇몇에게 대부분의 제작비가 쏠리다 보니 배역은 자꾸 축소되어간다”며 “방송 3사 및 케이블, 종편 등에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이모, 고모 등은 대부분 ‘돌싱’으로 나오고 작은 할아버지와 같은 배역은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작비 등을 이유로 배역이 축소되면서 조화스런 가정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한마디로 문화가 굴절되어 가는 셈이다. 앞으로는 과거 전원일기와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 중년배우 A씨도 “나이를 먹을수록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간다. 더 이상의 출연제의가 들어오지 않아 방송을 4년 이상 쉬었다. 사실상 수입이 사라진 것으로 수술비 마련도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등 생계가 어렵다”며 “일이 생기더라도 단역 배우들에게 밀리기 일쑤다. 단역배우들보다도 출연료가 몇 배 이상 많기 때문에 제작비 감축을 이유로 출연기회 조차 얻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국세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예계종사자가 2010년 17만 명을 넘어서며 전년대비 4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예인 평균 수입은 직장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연예인이 직업인 2만1817명이 한 해 동안 1인당 2499만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2008년에 비해 12.3% 줄어든 수치였다. 연예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있어 연소득 1000만 원 미만인 연예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예인 평균수입인 2499만 원도 일부 연예인에게만 해당한다.
한연노 관계자는 “연기자 중 80% 넘는 사람들이 극빈층이다. 최소생계 유지를 위해 일용직, 대리기사 등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시선들에 대한 부담으로 나서지 못한다”며 “직업 특성상 폐쇄성이 있고 개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까 속으로 끙끙 앓다가 고독사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적은 계약금액으로 출연하더라고 그게 알려질까봐 출연료가 떼여도 남한테 말하지 못하고 화병에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케이블이 생겨나고 종편 4개 채널까지 생겨났지만 오히려 양극화 현상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연노에 따르면 노조원의 80%가 최근 3년 내 출연작이 없고 75%가 연봉 1000만 원 미만이다.
한연노, KBS에 극약처방
지난 7월에는 한연노가 출연료 체불과 편성시간 준수 위반 등을 이유로 KBS 김인규사장을 서울남부지방노동청에 고소하는 초유에 사태가 벌어졌다. ‘을’의 입장이던 연기자노조가 방송사 수장을 고소하는 극약처방을 한 것.
한연노 ‘그들이 사는 세상’ ‘도망자’ ‘프레지던트’ ‘정글피쉬’등 최근 몇 년간 KBS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에서 발생한 출연료 체불액이 약 11억2000만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연노 관계자는 “단체협약 위반으로 KBS를 고발했는데 최소한의 편성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톱스타에서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임금체불이 이뤄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며 “KBS에만 한해서만 세 작품에 공교롭게도 임금체불이 돼 체불액이 2억이 넘는 중견 연기자가 있다. 햇수로는 3년째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분은 지난 3년간 가정경제적 측면에서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방송사는 외주제작사 책임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KBS 인력들이 제작에 관여했고 KBS가 이를 관리감독한다는 점에서 원청사로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연노에 따르면 출연료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연기자가 생계형 연기자다.
그러나 KBS는 이미 외주제작사에 제작비를 지급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